"형이면 돈이라도 내든가"…죽음 부른 와인동호회[사건의재구성]

무시한다는 생각에 주먹질…머리 부딪혀 못 일어나
"자진 출석해놓고 범행 일부 부인…자수 인정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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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박혜연 기자 = "난 이런 방에서 자본 적이 없어."

예약한 호텔방이 너무 저렴하다는 뜻이었다.

A씨(43·남)는 그 말에 B씨(45·남)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꼈다.

와인동호회에서 처음 만난 B씨는 고작 두 살 더 많다고 자신을 형이라 부르라면서 룸서비스로 샴페인까지 주문하려 들었다. A씨가 말리자 B씨는 "샴페인이 얼마나 한다고, 내가 살게"라며 선심 쓰듯 뱉었다. 만취한 A씨는 화를 참지 못하고 B씨에게 달려들었다.

"네가 돈이 많으면 얼마나 많아, 배워도 내가 너보다 더 많이 배웠다."

"너 그렇게 돈이 많아? 형이라면 돈이라도 내든가."

"힘도 없는 XXXX"

A씨는 급기야 주먹으로 B씨 얼굴을 때렸다. 갑자기 벌어진 소동에 다른 회원들이 놀라 달려왔다. A씨는 말리는 회원들을 뿌리치며 B씨를 연신 가격했다. B씨도 대응하면서 엎치락뒤치락 몸싸움이 벌어졌다.

호텔 보안요원이 달려와 간신히 제지했지만 객실 앞 복도에서 다시 몸싸움이 벌어졌다.

B씨는 결국 턱 부위를 맞고 넘어져 바닥에 머리를 세게 부딪혔다. 그리고 일어나지 못했다. 2023년 7월16일 새벽 2시45분부터 3시9분까지, 채 30분도 되지 않은 짧은 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쓰러진 직후만 해도 의식이 있었던 B씨는 119구급대와 함께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CT 촬영이 세 시간 가량 지연되면서 상태가 급격히 악화됐다.

뇌출혈 진단을 받은 B씨는 경기도의 대학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지만 그날 오후 4시11분 사망 판정을 받았다. 사인은 외상성 경막하 출혈에 의한 뇌연수마비였다.

A씨는 B씨의 사망 사실을 다른 회원으로부터 전해 듣고 같은 날 오후 9시30분쯤 광진경찰서에 자진 출석했다.

A씨는 폭행 사실은 인정했지만 "술에 취해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B씨가 폭행 때문에 사망한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B씨가 넘어지며 머리를 부딪힌 모습을 보고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A씨를 상해치사 혐의로 기소하며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재판을 맡은 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김병철)는 "A씨가 주먹으로 가격하면서 싸움이 발생한 점은 명백하고 설령 B씨가 재력을 과시하면서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은연중에 했더라도 범행이 정당화할 수 없다"며 징역 8년을 선고했다.

A씨는 자수한 점을 참작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재판부는 "자진해 경찰에 출석했지만 조사 당시에 범행을 일부 부인한 것으로 보인다"며 자수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호텔 직원들이 두 사람을 완전히 분리하지 않아 비극적 결과가 초래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며 "피해자 유족이 엄벌을 탄원하는 데다 피고인이 유족을 위해 아무런 피해 회복의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hypar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