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속 심야 사고 낸 고교생…"낮 수업·밤 배달에 피로 누적 가능성"

'중대과실' 병원비 지급했다 환수 고지…법원 "위법"

수도권에 강한 비가 내리자 서울 충무로역 인근에서 오토바이를 탄 배달원이 비닐로 손을 감싸고 있다. 2023.8.29(사진은 기사와 무관)/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서울=뉴스1) 황두현 기자 = 폭우가 내린 심야시간대 오토바이 배달 사고를 낸 고교생에게 병원비를 지급해 놓고 환수하려 한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의 처분이 부당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건보공단은 해당 교통사고가 '중과실'에 해당해 보험금 지급 제한 대상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기상 여건과 업무 피로도를 고려해 받아들이지 않았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부장판사 이주영)는 A씨가 건보공단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환수 고지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경기 안양 일대에서 배달 업무를 하던 A씨(사고 당시 18)는 2022년 6월30일 밤 12시가 넘어 오토바이를 운전하다 신호를 위반하고 사고를 냈다. 골절상을 입은 A씨는 5개월여간 병원 치료를 받았다.

건보공단은 A씨 병원비(요양급여비) 2600만원을 지급하면서 신호위반 사고를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중대과실로 보고 A씨에게 부당이득 환수를 고지했다. 국민건강보험법상 고의 또는 중대과실에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A씨는 사고 당시 우천으로 기상 여건이 좋지 않았고 야간 아르바이트에 따른 과로가 사고 발생에 영향을 미쳤으니 '중과실'로 볼 수 없다며 소송을 냈다. 기상청은 지난해 6월29~30일 안양시 등 경기 전 지역에 집중호우가 쏟아지자 호우특보를 발령한 바 있다.

법원은 판례를 근거로 보험금 환수 처분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건강보험 수급자의 중과실을 판단할 때는 사고 발생 경위와 양상, 운전자의 사고 방지 노력 등을 종합 고려해야 한다.

재판부는 "사고 당시 순간적인 집중력 저하나 판단 착오로 신호를 위반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중대 과실로 발생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속임수나 부정한 방법으로 보험금을 받았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폐쇄회로(CC)TV와 블랙박스를 통해 사고 발생에 고의성이 없고 폭우로 운전자의 시야 확보가 어려웠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낮에 학교에 다니고 저녁·야간에 배달업무를 하는 상황에서 피로가 상당히 누적됐을 가능성이 높다"며 "음주나 과속이 없는 상황에서 신호위반만으로 주의를 결여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건보공단 측이 항소하지 않으면서 판결은 확정됐다.

ausur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