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vs 날리면' 논란…법원은 왜 정부 손 들어줬을까

"감정 불가" 음성 감정 결과, 정정보도 여부에 결정적
재판부 "이 사건 보도는 허위라고 봄이 타당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바이든·날리면' 비속어 논란과 관련해 법원이 MBC에 정정보도를 명령했다. 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12부(부장판사 성지호)는 12일 오전 10시30분 외교부가 MBC를 상대로 제기한 정정보도청구 소송의 선고기일을 열고 이같이 판결했다. 지난 2022년 9월 MBC는 윤 대통령의 뉴욕 순방 발언을 보도하며 "(미국)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는 내용의 자막을 달았다. 보도 직후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 했다고 주장했고, 외교부는 보도와 관련해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 절차를 밟았다. 사진은 이날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건물. 2024.1.12/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서울=뉴스1) 이기범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의 '바이든·날리면' 비속어 논란과 관련해 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결과는 정정보도청구 소송을 제기한 외교부의 승소. 판결이 확정되면 MBC는 '뉴스데스크' 첫머리에 진행자가 정정보도문을 낭독해야 한다. 정정보도 여부를 판가름한 것은 '음성 감정 결과'였다.

◇전문가들도 "尹 발언 명확하지 않아…'바이든' 발언 확인 불가"

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12부(부장판사 성지호)는 12일 오전 10시30분 외교부가 MBC를 상대로 제기한 정정보도청구 소송의 선고기일을 열고 "'뉴스데스크' 첫머리에 진행자가 정정보도문을 1회 낭독하게 하고 낭독하는 동안 정정보도문을 통상의 자막과 같이 표시하라"고 판결했다.

또 MBC가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이행할 때까지 하루 100만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하고 소송 비용도 MBC가 내게 했다.

가장 큰 쟁점은 해당 보도가 허위인지 여부였다. 언론중재법 제14조에 따르면 정정보도 청구 요건은 '언론 보도가 진실하지 않아 피해를 입을 경우'이다. 또 같은 법 제15조 4항 2호에 따르면 '청구된 정정보도 내용이 명백히 사실과 다른 경우' 언론사는 정정보도를 거부할 수 있다.

소송을 제기한 외교부 측은 윤 대통령이 △'국회'라고 발언했을 뿐 '미국 국회'라고 발언한 사실이 없고 △'날리면'이라고 발언했을 뿐 '바이든은'이라고 발언한 사실이 없다며 MBC가 허위 사실을 적시했다며 언론중재법 제14조에 따라 정정보도 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MBC 측은 △순방에 동행한 풀 기자단 상호 확인 △국내에서 반복적 검증 △문제 발언에 대한 대통령실 해명 등을 통해 윤 대통령이 미국 의회와 바이든 대통령을 향해 욕설과 비속어를 사용한 것이 사실임을 확인한 후 보도를 했다고 맞받았다. 또 148개 국내 언론사가 자체 확인을 거쳐 같은 취지의 보도를 했다는 점을 들었다.

법원은 불분명한 윤 대통령의 발언을 MBC가 왜곡해 허위 보도한 것으로 판단했다.

앞서 재판부는 보도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문제 발언의 감정을 외교부와 MBC 측에 요구해 양측이 모두 수용하고 외부 전문가가 음성을 감정했다. 하지만 감정인이 "감정 불가" 의견을 내면서 발언의 진위를 가리지 못했다.

재판부는 이 같은 감정 결과를 들어 "감정 결과에서 윤 대통령이 '바이든은'이라고 발언했는지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다"며 "자막을 추가하지 않은 채 음성 원본만을 들려주거나 자막을 추가해도 논란이 되는 발언 부분을 공란으로 처리했으면 시청자가 발언의 내용을 각자 판단할 수 있었는데 진위 여부가 불분명한 '바이든은'을 자막에 넣어 정보 전달에 왜곡이 생기게 했다"고 설명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감정인은 "위 각 영상에는 배경음악, 주변 인물들의 웅성거리는 말소리, 그 밖에 잡음 등이 섞여 있어서 윤석열 대통령의 발화 소리만 변별해서 성문 분석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고, 발화 소리 자체도 미약하거나 불량·부실해 합리적인 의심 없이 예측되는 신호로 최종 감정 의견을 제시할 수준이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감정 불가 의견을 냈다.

또 재판부는 △감정 결과 이외에도 국내 언론사나 음성전문가 등 사이에서도 문제 발언에 대한 과학적·기술적 판단 여부에 논란이 있었다는 점 △외교부와 MBC 모두 소송 과정에서 해당 발언 부분이 명확히 들리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 특별히 다투지 않았다는 점 등을 들어 윤 대통령이 어떤 발언을 한 것인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도운 홍보수석이 12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외교부가 MBC를 상대로 낸 정정보도 청구 소송 판결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바이든·날리면' 비속어 논란과 관련해 법원이 MBC에 정정보도하라며 외교부의 손을 들어준 가운데 이 수석은 "공영이라고 주장하는 방송이 과학적이고 객관적 확인 절차도 없이 자막을 조작하며 국익에 중대한 영향 미치는 허위 보도를 낸 것은 대단히 무책임한 일"이라고 말했다. 2024.1.12/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허위 보도로 판정한 1심…항소심으로 간다면

특히 재판부는 "이 사건 보도는 허위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결문에 명시했다.

재판부는 단순히 단정적인 보도를 했다거나 진위 여부가 불명 상태라는 점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만으로 허위 보도 여부를 판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MBC가 여기서 나아가 "보도된 사실이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라는 의미를 전달하는 정도에 이르렀다"고 짚었다.

또 다른 쟁점은 대통령 발언에 대해 외교부가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제기할 청구권이 있는지 당사자 적격성에 대한 문제다.

언론중재법 제14조에 명시된 정정보도 청구 요건에 따르면 국가 기관이나 단체의 장은 해당 업무에 대해 기관을 대표해 정정보도를 청구할 수 있다. 또 당사자 능력이 없는 기관이라도 보도 내용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을 때 기관 대표자가 정정보도를 청구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해당 보도 내용과 외교부의 연관성이 인정된다고 봤다. 윤 대통령이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는 것뿐만 아니라 MBC가 윤 대통령의 외교 활동을 제대로 보좌하지 못해 한미 정상회담이 불발됐을 뿐만 아니라 발언 논란까지 이어지게 했다는 취지로 보도했다고 봤다. 해당 보도가 외교부를 직접적으로 지명하지 않고 있더라도 보도 내용과 연관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MBC는 즉각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가의 피해자 적격을 폭넓게 인정할 경우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역할이 제한적일 수 있다(2011년)'는 판례, '공권력의 행사자인 국가나 지자체가 명예훼손죄나 모욕죄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단(2016년)과 배치되는 판결이어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유감을 표했다.

전문가들은 항소심에서도 음성 감정 결과가 바뀌지 않는다면 재판 결과가 바뀌지 않을 거로 내다봤다.

이창현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는 "문제 발언에 대한 감정 결과가 판단 불가하다는 것인데 이 부분이 바뀌지 않으면 추측성 보도로 시청자를 오도했다는 점에서 항소해도 결과가 달라지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Ktige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