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이태원 특별법에 담긴 공수처 씁쓸한 단면
구속영장 '전패'·유죄 판결 '0건'…막 내리는 1기 공수처
법안 '비리수사처' 명시, 정치권도 혼동…수사력 입증해야
- 황두현 기자
(서울=뉴스1) 황두현 기자 =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처장에게 (중략) 영장을 청구할 것을 의뢰할 수 있다"
지난 9일 국회를 통과한 '이태원 참사 특별법'(수정안)은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꾸려진 조사위원회가 관할 검사장 외에도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장에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그러나 법안이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 없이 제정되더라도 조사위는 검사장에게만 영장을 청구할 수 있다. 법안에 명시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는 존재하지 않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고위공직자 범죄 수사 기관의 정식 명칭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다. 법안에 범죄 대신 비리가 잘못 들어간 셈이다. 이같은 오기는 입법 과정상 이따금 벌어지는 해프닝이라는 게 정치권과 법조계의 후문이다.
공교롭게도 공수처는 비리수사처가 될 뻔했다. 2010년 처음 발의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운영법'은 19·20대 국회에서도 제안됐으나 모두 폐기됐다. 2017년 법무부 주도로 공수처 설치를 추진하면서 정식 명칭을 '범죄수사처'로 정했다. 수사와 공소를 담당하는 기관임을 분명히 하려는 취지였다.
출범 목적대로 공수처는 고위공직자에 대한 수사·공소 목적을 잘 수행했을까. 요즘 공수처에 따라 붙는 꼬리표는 '5전 5패', '실적 제로', '빈손' 등 대개 부정적인 뉘앙스다. 2021년 출범 후 청구한 다섯 번의 구속영장을 한 번도 발부받지 못했고 직접 기소 사건 역시 유죄 판결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
공수처가 출범 3년째에 접어들었고 공수처 설립을 추진한 야당 의원들마저도 정식 명칭을 혼동하고 있다는 것은 공수처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공수처라는 약칭으로 불리다보니 헷갈릴 수는 있다"면서도 "그만큼 출법 이후 3년간 존재가치를 증명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지난 10일 국회에서는 공수처 출범 3년을 맞아 과거를 평가하고 미래를 모색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수사 범위를 넓혀야 한다", "수사 사안을 선택과 집중해야 한다"는 대안이 두루 제시됐다. 공수처의 존재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수사력 부재' 우려를 해소해야 한다는 취지일 터다.
심리학자 존 플라벨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메타인지' 능력이 뛰어날수록 발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다행히도 공수처는 줄곧 지적받은 수사력 부재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지난달 공소부를 폐지해 수사팀을 확충했고 최근 수사기획관의 수사 참여 근거를 명확히 하는 내용을 담은 입법예고도 마쳤다.
공수처는 늦어도 3월이면 새 수장이 공수처를 이끌게 된다. 2기 공수처는 '범죄 수사' 기관임을 스스로 증명해 내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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