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공매도 사건 수사 착수…'여의도 저승사자' 남부지검에 이목 쏠리는 이유

금융위 외국계 IB 560억원대 불법 공매도 고발 사건, 금조 2부 배당
남부지검, 특사경 1개팀 규모 인력 파견받아…지난해 이어 존재감 드러내

서울남부지방검찰청. 2022.4.12/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서울=뉴스1) 서상혁 기자 = 서울남부지검이 새해 외국계 투자은행(IB)의 560억원대 불법 공매도 사건 담당 수사부서를 정하고, 금융감독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 1개 팀 규모의 인력까지 파견 받는 등 수사에 본격 착수했다.

이번 사건은 금융위원회의 불법 공매도 관련 첫 고발 사건인데다 정부가 불법 공매도 문제를 '민생 침해 금융' 범죄로 규정한 상황이어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 사건의 수사 성패에 따라 윤석열 정부가 내세운 '공정한 자본시장'의 앞날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남부지검은 지난해 '에디슨EV 주가조작 사건' 'SG증권발(發) 주가 폭락 사태' 등을 수사하면서 존재감을 높인데 이어 불법 공매도 사건까지 맡게 되면서 '여의도 저승사자'의 존재감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는 평가다.

◇증선위 첫 고발 '무차입 공매도' 사건 금융조사2부 배당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부장검사 박건영)는 최근 BNP파리바 홍콩법인, HSBC 홍콩법인의 무차입 공매도 고발 사건을 배당받고 수사에 착수했다. 지난 연말 금융위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이들 2개사를 자본시장법상 공매도 제한 위반으로 고발한 데 따른 것이다.

앞서 지난해 12월 김철 변호사(법무법인 이강)와 박상흠 변호사(법무법인 우리들)도 같은 사건으로 남부지검에 고발장을 제출한 바 있다.

2개사는 총 560억원 규모의 무차입 공매도 주문을 제출한 혐의를 받는다. 공매도란 주식을 빌려 매도한 후, 주가가 떨어지면 해당 주식을 매입해 빌린 만큼 되갚는 투자 전략을 말한다. 무차입 공매도는 주식을 빌리지 않고 매도하는 행위로 자본시장법에 의해 금지된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BNP파리바 홍콩법인은 지난 2021년 9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101개 주식 종목에 대해 400억원 상당의 무차입 공매도 주문을 냈다. 법인 내 A부서가 B부서로 주식 50주를 빌려줬지만, 대여 내역을 입력하지 않음으로써 무차입 공매도를 일으켰다.

HSBC 홍콩법인의 경우 2021년 8월부터 그해 12월까지 9개 종목에 대해 160억원 상당의 무차입 공매도 주문을 넣었다. 이들은 공매도 후 주식을 빌리는 '사후 차입'을 했는데, 이 역시 자본시장법에서 규정하는 무차입 공매도라는 게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결제 불이행만 없다면 주문 이후에 차입이 이뤄져도 문제를 삼지 않는 국가가 일부 있으나, 국내 자본시장법에서는 공매도 주문 이전에 반드시 주식을 차입하도록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47회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2023.11.14/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정부, '불법 공매도' 근절 의지…첫 사건 중요한 이유

금융당국이 불법 공매도로 고발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자본시장법에 제443조에 따라 무차입 공매도는 1년 이상의 징역이나 이익의 최대 5배에 해당하는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으나, 당국은 그간 과징금 처분에 그쳐왔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기간이 길고 규모도 크다"며 "위법의 여지가 있음에도 고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불법 공매도를 근절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로도 풀이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국무회의에서 "불법 공매도 문제를 방치하는 건 공정한 가격 형성을 어렵게 한다"며 근절 대책을 주문한 바 있다.

정부의 의지는 남부지검에 파견한 특사경 인력에서도 드러난다. 남부지검은 올해 초 금융감독원 특사경으로부터 총 7명의 인력을 파견받았다. 그중 불법 공매도 수사 지원 인력은 3명이다. 금감원 1개 팀이 팀장 포함 4~5명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1개팀이 불법 공매도 수사에 투입된 셈이다.

남부지검이 맡을 불법 공매도 사건도 점차 늘어날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최근 또 다른 해외 투자은행의 수백억원 규모의 공매도 정황을 적발해 조사 중이다. 고의성이 인정될 경우, 추가 고발에 나설 방침이다.

검찰 입장에서는 이번 첫 사건의 신속한 수사에 사활을 걸고 임할 수밖에 없다. 첫 수사가 지지부진하고, 별다른 수사 성과를 내지 못하고 헛물을 켤 경우 4월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국민이 정부의 불법 공매도 근절 방침을 자칫 '공수표'처럼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정부의 추가 고발 예고로 불법 공매도 사건들이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데, 다른 사건들이 계속 쌓이기만 한다면 수사에 대한 피로감만 높아질 수 있다.

반면 첫 수사를 신속하면서도 수사 성과를 낸다면 오는 6월까지 공매도 전면 금지 등 정부의 강경 조치에도 힘이 실릴 전망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불법 공매도 세력에게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인식을 주어 유사 사례를 양산할 여지가 있다"며 "남부지검이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남부지검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굵직한 사건을 맡으면서 존재감을 굳히는 모습이다. 지난해 '에디슨EV 주가조작 사건' 'SG증권발(發) 주가 폭락 사태' 수사에 이어 '3대 펀드(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 사기 사건' 재수사도 진행했다. 지난 연말부터는 카카오의 SM엔터테인먼트 주가조작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hyu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