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우리 소속 어디인가요"…일하는데 수당 못 받는 '이곳' 노동자

[이주노동자의 눈물]①농장 소속이라는데 "농장 가본 적도 없다"
'꼼수 임금 체불 의혹'에 A유통 측 "우린 작업장만 제공" 반박

편집자주 ...새해가 되면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의 활짝 웃는 사진이 언론에 실립니다. 그들은 '다문화'의 상징으로 소개됩니다. 그러나 임금을 받지 못한 이주 노동자들은 남몰래 눈물을 흘립니다. 2023년 기준 한국 이주노동자의 체불임금액 추정치는 1300억원에 달합니다. 은 이주노동자의 임금 체불 실태와 현장의 구조적인 문제를 추적했습니다.

경기도 이천 소재 A유통 사업장에서 일하는 캄보디아 이주 노동자들이 숙식을 해결하는 기숙사.ⓒ 뉴스1

(서울=뉴스1) 원태성 기자 = 겨울비가 내린 지난 15일 경기 이천시 소재 A유통 작업장에서는 캄보디아 이주 노동자 18명이 파란색 작업복을 입은 채 채소를 포장하고 있었다. 이들은 낮 12시가 되자 삼삼오오 작업장에서 나와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맞은편 기숙사로 향했다.

조립식 컨테이너를 개조한 기숙사에는 '외부인 출입 금지' 팻말이 붙어 있었다.

언뜻 보면 '이주 노동자들의 평범한 작업 현장' 같다. 그러나 좀 더 들여다보면 이들의 처지가 복잡하고 기구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내부인'인가' '외부인'인가

이들은 A유통이 아니라 5인 미만 사업장인 농장의 농장주에게 고용돼 있다. A유통은 이를 이유로 연차수당, 휴일노동수당, 주휴수당, 퇴직금 등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주 노동자들은 "A유통의 지시를 받아 근무하고 있다"며 "농장에 고용됐다고 하는데 우리는 농장을 가본 적 없다"고 말한다.

이들보다 앞서 A유통에서 일했던 캄보디아 노동자 6명도 수당 등을 받지 못했다며 A유통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냈다. '2020년 미지급 임금'을 달라는 취지였다.

2020년 A유통에서 일하던 캄보디아 이주 노동자 6명의 체불 임금 청구 금액.ⓒ 뉴스1

이들 6명의 체불 임금 청구 총액은 2억4193만640원이다. 추가노동시간 임금, 연차휴가·수당, 퇴직금 미지급분이 포함된다. 이 금액은 A유통 소속일 때 받을 수 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5인 미만 사업장은 주 52시간이 적용되지 않아 연장근로, 야간근로, 휴일근로 등의 가산수당과 연차휴가 및 연차수당 등을 받을 수 없다.

소송을 제기한 이주 노동자 측에 따르면 이들 6명은 계약 당시 일일 근무시간을 8시간으로 정했지만 1~3년 근무하는 동안 하루 평균 9.5시간 일했다고 한다. 한 달 휴일은 이틀에 불과했다고 한다.

A유통이 실질적으로 모든 업무를 지시하고 월급을 주면서도 고용주가 아니라는 이유로 이만큼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게 이주 노동자 측의 주장이다.

소송을 대리한 최정규 변호사는 "이들이 실제 같은 곳에서 같은 업무를 했으며 임금을 지급한 주체는 A유통"이라면서 "심지어 계약서에 명시된 농장주 중 한 명이 A유통 소속이라는 사실도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판을 맡은 수원지법은 지난 8월23일 이들의 체불 임금을 대부분 인정하지 않았다. 이들이 A유통 소속이라는 근거를 찾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법원은 "영세 농장주들이 마련한 별도의 공동 작업장에서 노동자들이 일한다고 해서 근로계약에 어긋난 것은 아니다"라며 A유통의 손을 들어줬다.

이들은 현재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상태다.

◇변한 건 없었다

지난 15일 A유통에서 만난 노동자들은 이런 소송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업무를 하고 있었다. 인근 농장과 계약한 캄보디아 이주 노동자 18명이 여전히 A유통이 제공한 기숙사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채소를 포장하고 있었다.

A유통이 5인 미만 쪼개기 방식으로 이주 노동자의 임금을 체불한다는 의혹은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A유통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이주 노동자들은) 농장에 고용된 노동자가 맞는다"며 "농장이 채소를 직접 유통하기 어렵기 때문에 여기서 포장 업무만 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우리는 이들에게 작업장만 제공해 줬을 뿐"이라며 "농장주들을 위해 이주 노동자들에게 기숙사를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그러나 실제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농장에서 일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A유통 소속'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기숙사에서 점심을 먹던 캄보디아 출신 B씨(30)는 "매일 (A유통으로) 출근해 포장 업무를 하고 있다"며 "기숙사 비용도 매달 20만원씩 내고 있다"고 말했다.

A유통이 제공한 기숙사는 조립식 컨테이너와 비닐하우스다. 소송을 낸 이주 노동자 6명과 마찬가지로 이들 또한 한 달에 이틀 쉬고 하루 9.5시간 일한다. 변한 건 없었다. 이들은 A유통의 '내부인'일까, '외부인'일까?

kha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