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 이른 '재판 지연'…조국·선거개입 등 1심만 3~4년[2023법조결산]①
주요 사건 기본 3년…피고인 지위 다 누려
사건 감소해도 처리기간·상소율 모두 증가
- 이세현 기자
(서울=뉴스1) 이세현 기자 = 2023년 한 해 사법부를 관통한 주요 키워드는 불명예스럽게도 '재판 지연'이었다.
법원 접수 사건이 수 년째 감소하는 데도 처리 기간은 더 길어졌다. 서서히 쌓이던 미제 사건을 이제 외면하기 힘든 수준에 이르렀다.
법원 바깥에서는 지연된 정의에 비판이 쏟아졌고 안에서는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재판 지연의 원인으로 구조적·제도적 문제가 제기됐지만 사법부가 '신속한 재판'에 실패했다는 것만큼은 이견이 없다는 평이다.
◇ 청와대 선거개입, 조국, 윤미향 사건까지…기본이 3년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은 2020년 1월29일 법원에 접수돼 11월29일 1심 결론이 날때까지 3년10개월이 걸렸다.
특정 후보의 당선을 돕기 위해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전대미문의 사건이었지만 공판 준비에만 1년이 걸릴 정도로 진행이 더뎠다.
그사이 사건의 당사자였던 송철호 전 울산시장은 2022년 6월 임기 4년을 마쳤다.
청탁을 받고 상대 후보를 수사한 혐의로 기소된 황운하 당시 울산경찰청장은 2020년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황 의원의 임기가 내년 5월까지인데 그 안에 2심을 거쳐 대법원 판결까지 나올 리 만무하다.
재판부는 1심 판결에서 "공직자의 본분을 망각한 범죄"라고 비판했지만 피고인들은 '선거개입'으로 얻은 지위를 다 누렸다.
자녀 입시비리 및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 무마 혐의로 기소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재판도 3년 넘게 진행 중이다.
2020년 1월 시작된 조 전 장관의 뇌물수수 등 혐의 재판은 3년이 지나 올해 2월 1심 선고가 내려졌다. 2심 선고는 해를 넘긴 내년 2월로 예정돼 있다.
조 전 장관의 아들에게 허위 인턴증명서를 발급해 준 혐의로 2020년 1월 재판에 넘겨진 최강욱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년8개월만인 지난 9월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내년 총선을 약 7개월 앞둔 시점인데 최 전 의원은 임기 상당 기간을 채웠다. 최 전 의원은 피고인 신분으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정의기억연대의 후원금을 횡령한 혐의로 2020년 재판에 넘겨진 윤미향 무소속 의원의 재판도 진행 중이다.
사건이 대법원에 계류돼 있지만 선고기일도 지정되지 않은 상태다. 윤 의원 역시 남은 임기를 채울 확률이 높다.
◇ 사건 줄었는데 처리기간·상소율은↑…'양과 질' 다 놓쳤다
올해 9월 나온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법원에 접수된 민사·형사·가사 소송사건은 616만7312건으로 2020년 667만9233건, 2021년 629만1467건에서 3년 연속 내림세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민사본안사건의 1심 접수는 74만4123건으로 전년 대비 8.66% 감소했고 항소심 접수도 5만7490건으로 6.74% 감소했다.
민사사건 상고심은 2만8284건이 접수돼 73.53% 증가했으나 동일인에 의한 과다 소송 사건을 제외하면 1만1667건으로 줄어든다.
지난해 1심 접수 형사재판은 21만9908건으로 전년 대비 2.84% 감소했고 항소심 접수도 7만1167건으로 2.89% 줄었다. 상고심 또한 1만9179건이 접수돼 3.76% 감소했다.
사건은 줄었지만 처리기간은 도리어 길어졌다.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민사 본안사건 1심 합의부의 평균 처리 기간은 420.1일로 전년 364.1일 대비 두 달 가까이 늘었다. 2심 역시 고법은 332.7일, 지법은 324.2일로 전년 대비 각각 29일, 24일 늘었다.
사법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사건 평균 처리 기간은 민사 본안(1심 합의)이 2013년 245.3일에서 2022년 420.1일로 약 175일, 형사공판(1심 합의 불구속)이 같은 기간 158.1일에서 223.7일로 약 66일 길어졌다.
문제는 상소율도 더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민사 본안사건 상소율은 1심 10.8%로 전년 대비 0.8% 포인트 늘었다. 2심 상고율 역시 26.6%로 0.9%p 늘었다. 특히 민사 1심 합의 사건은 상소율이 45.3%로 전년 41.7%보다 3.6%p 늘었다.
재판의 양과 질이 현저히 악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수장 바뀐 사법부 해법 찾을까…조희대 "재판 지연 해소 최우선"
조희대 대법원장은 11일 취임식에서 "국민이 절실하게 바라는 목소리를 헤아려 보면 재판 지연 문제를 해소해 분쟁이 신속하게 해결되도록 하는 게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조 대법원장은 취임 후 처음 이뤄지는 내년 법관정기인사 때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시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법원장 후보 추천제란 법원 소속 판사들로부터 후보자를 추천받아 법원장을 임명하는 제도로, 법원장 보임에 수평적·민주적 요소를 확대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그러나 투표제로 법원장 리더십이 상실돼 신속재판을 어렵게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조 대법원장이 인사청문회에서 "법원장에게 최우선으로 장기미제 사건의 재판을 담당하게 할 예정"이라고 밝힌 것도 신속재판의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조 대법원장은 15일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서 재판 지연을 '사법부 최대 난제'로 규정하고 이를 해결 위한 방안을 찾겠다고 거듭 약속했다. 그러면서 신속 재판을 위한 법원장의 적극적인 노력을 주문했다.
조 대법원장의 임기는 정년(70세) 규정에 따라 2027년 6월5일까지다. 이에 조 대법원장이 각종 문제 해결에 더 속도를 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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