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 국가 배상 책임 첫 인정…"정부, 항소 말아달라"(종합)

법원,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에 146억원 위자료 지급 명령
"재판부, 국가가 저지른 과실이자 범죄행위 판단…큰 의미"

박종호(왼쪽부터), 이채식 씨를 비롯한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21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재판을 마친 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3.12.21/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서울=뉴스1) 정윤미 기자 =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감금·강제노역·암매장 등 인권을 유린당한 피해자들이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법원 판결과 관련해 "국가가 항소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9부(부장판사 한정석)는 21일 오후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하모씨 등 26명이 제기한 국가 손해배상 소송에서 처음으로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피해자들이 청구한 203억원 가운데 145억8000만원을 인정하고 정부에게 각 개인에 대한 위자료 지급을 명령했다.

◇피해자들 "잊힐까 걱정…국가 항소 말아달라"

피해자 이모씨는 선고를 마치고 "사실 이렇게 판결이 나올지 생각도 못 했다"며 "또다시 원점으로 가지 않을까란 생각을 많이 했는데 국가에서 이렇게 인정을 해주니까 고맙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형제복지원 사건이 처음 세상에 알려진 1987년 박종철 사건이 터졌고 2015년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다뤘을 때는 세월호 사건이 있었다"면서 "그때도 잊혔는데 이번에도 또 잊히지 않을까 우려했었다"고 했다.

아울러 국가가 1심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최근 국가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 패소 시 항소한 바가 거의 없는 거로 안다"며 "그때마다 법무부 장관한테 기자분들이 찾아가서 인터뷰 하면 '인권 문제에 있어서 진영 논리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답변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형제복지원 사건은 근현대사상 최악의 인권 유린 사건"이라며 "이 판결에 대해 항소는 피해자들이 하면 모를까 국가에서는 안 했으면 좋겠다. 피해자들은 빨리 끝내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피해자 박모씨는 "이 사건 소송을 제기해 오늘 처음 법원 판결을 받았다"며 "국가가 저지른 과실이자 범죄행위라고 재판부가 명시했다는데 가장 큰 의미를 주고 싶다"고 밝혔다.

대표적 인권유린 사례인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의 한 피해자가 20일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오열하고 있다. 2021.5.20/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국가 책임 인정 첫 법원 판결…위자료만 146억원

형제복지원은 1975년 당시 박정희 정부가 대대적인 부랑아 단속을 시행하면서 내무부 훈령을 바탕으로 운영된 전국 최대 규모 부랑인 수용시설이다.

1975~1987년 형제복지원에서는 납치된 일반인들을 불법감금·강제노역·성폭행·암매장 등 반인륜적 범죄 행위가 벌어졌으나 철저히 은폐됐다. 1987년 3월22일 직원들 구타로 원생 1명이 숨지고 35명이 집단 탈출하면서 마침내 그 실체가 처음 드러났다.

피해자들은 지난해 8월 형제복지원 사건을 '국가에 의한 총체적 인권침해'라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결정을 바탕으로 제각기 국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이날 첫 판결이 나온 것이다.

재판부는 이날 선고에 앞서 "형제복지원 사건으로 강제 수용돼 그 기간의 고통과 또 아주 어려운 시간을 보내신 원고분들께 위로 말씀을 재판부로써 먼저 드리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가 부랑인 단속 및 강제수용 등 실시를 근거로 한 내무부 훈령은 위헌·위법해 무효하다"며 "이에 따른 피고 공무원들의 부랑인 단속과 강제수용, 형제복지원 부랑인 강제수용과 가혹행위 등에 대한 묵인·방조는 원고들의 신체 자유,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등을 침해해 위법하다"며 위자료 지급을 명령했다.

형제복지원 사건 당시와 위자료 산정 기준이 되는 변론종결 시점 사이에 국내 경제 상황과 화폐가치가 상당히 변화한 점을 고려해 위자료 액수는 수용 기간 1년당 8000만원으로 정해졌다.

그 결과 피해자들은 한명당 최소 8000만원에서 최대 11억2000만원의 위자료를 받게 됐다.

피고 측의 손해배상 관련 소멸시효 주장에 대해 "이 사건은 중대한 인권침해에 해당한다"며 "그 법리에 따르면 원고 손해배상 청구권은 10년 또는 5년이라는 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younm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