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첫 선고 기준은 '고의성'…법조계 "실형 어렵다" 왜?

참사 396일 만에 '첫 선고'…해밀톤호텔 대표 '벌금 800만원'
참사 등 사고 예측하고도 고의 설치한 게 아니라고 판단한 듯

이태원 참사 발생 골목에 불법 가벽을 증축해 피해를 키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해밀톤 호텔 대표 이모씨가 29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1심 선고공판을 마치고 청사를 나서고 있다. 2023.11.29/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서울=뉴스1) 장성희 기자 = 이태원 참사 첫 선고의 주요 기준은 '고의성이 있느냐'였다. 선고 결과는 '벌금 800만원'이었다. 법원은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골목에 불법 철제 가벽(담장)을 증축해 피해를 키운 혐의를 받는 해밀톤호텔 대표이사 이모(76)씨에게 이같이 판결했다.

시민들의 예상보다 형량이 낮다. 요컨대 법원이 "고의성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골목에 있는 가벽을 두고 해밀톤호텔 측이 참사 등 사고를 예측하고도 고의로 설치한 것은 아닌 것으로 해석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참사의 예측 가능성을 따지기 어려우므로 건축법 위반으로 실형이 나오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번 선고에 관심이 집중된 이유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서부지법 형사4단독 정금영 판사는 건축법 및 도로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씨에게 전날 벌금 800만원을 선고했다. 호텔 별관 라운지바 임차인 안모씨(40)와 라운지바 프로스트 대표 박모씨(43)에게는 각각 벌금 500만원, 100만원이 선고됐다.

이번 판결은 이태원 참사 발생 396일 만에 나온 것이다. 지난해 10월29일 이태원 참사로 159명이 숨졌다. 이태원 참사 직전 골목에서 넘어진 인파가 10m에 걸쳐 겹겹이 쌓이면서 대형 참사로 이어진 정황이 경찰 수사 결과 확인됐다.

이태원 참사 관련 법원의 첫 판단이자 해밀톤호텔의 철제 가벽이 피해 규모를 늘린 원인으로 지목돼 이번 선고에 관심이 집중됐다.

해밀톤호텔은 2018년 에어컨 실외기를 가리기 위한 목적으로 골목에 최고 높이 약 2.8m, 최고 너비 6m의 철제 담장을 세웠다. 철제 가벽은 건축선의 수직선을 약 20cm 침범했다. 호텔 옆 참사가 발생한 내리막길의 폭은 3~4m다. 성인 5~6명이 들어가면 꽉 차는 정도다.

검찰은 가벽이 골목 내리막길의 폭을 더 줄여 결과적으로 피해를 키운 것으로 판단해 해밀톤호텔 대표 이씨를 재판에 넘겼다.

1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해밀톤 호텔 이태원 압사 참사 사건 현장에 해밀톤 호텔 측 분홍 철제 가벽이 설치돼 있다. 2022.11.1/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이씨는 재판에서 건축법 및 도로법 위반 혐의는 인정하면서도 철제 가벽은 건축법상 담장에 해당하지 않고 도로 침범 여부가 명확하지 않다며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해 왔다.

재판부는 사실상 이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철제 가벽은 외부 침입 차단이나 호텔 내부 보호를 위해 지은 것이어서 담장에 해당하며 해당 담장이 도로를 침범하는 것도 인정한다"면서도 "담장이 호텔 벽면을 따라 일직선으로 지어졌고 건축선을 넘은 정도도 크지 않아 검사가 제출한 자료만으로 이씨의 고의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짚었다.

이어 "(가벽 설치로) 6m 이상이던 도로 폭이 3.6m가량으로 줄어 도로를 지나는 교통에 상당한 지장이 초래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해당 담장(가벽)이 건축선을 침범하는지 몰랐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가 '고의성이 없다'고 판단한 사정은 △측량하는 사람에 따라 오차가 발생할 가능성 △건축선을 넘은 정도가 20cm에 불과하다는 점 △2010년부터 사건 담장과 유사한 형태의 가벽이 있었을 가능성 △해당 담장이 기존에 있던 가벽 자리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점 △과거 측량에서도 도로 침범 여부가 문제 되지 않은 점이다.

다만 호텔 본관 뒷면의 테라스 등에는 도로 변형 등의 죄가 있다고 판단해 재판부는 이씨에게 벌금형을 선고했다.

◇법조계 "참사 예측 가능성 판단 어려워"

시민들은 “이태원 참사의 피해를 생각하면 형량이 너무 낮다”며 비판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159명 젊은이들이 서울 한복판에서 숨졌는데 고작 벌금 800만원이라니" "이해하기 어렵다" "검찰이 구형한 징역 1년도 세 보이지 않는다" 등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반면 법조계에서는 '예상된 결과'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 애초 참사의 '예측 가능성'을 따지기 어려웠던 사안이기 때문이다.

양태정 법무법인 광야 변호사는 "(실형이 나오려면) 건축물에 기둥이 5개 들어가야 하는데 3개만 넣는 것처럼 참사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며 "(해당 사건은)사망이라는 결과가 일어날 거라고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에 고의가 없었다고 판결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상흠 법무법인 우리들 변호사는 가벽이 오래 전에 설치된 점에 주목했다. 박 변호사는 "(참사 발생 당일) 핼로윈이 있기 전부터 담장이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예측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재판부가) 건축물이 있든 없든 간에 통행에 문제가 되지 않은 것으로 보았다"고 설명했다.

grow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