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출사고에 "대피하라" 작업중지권 행사했다 정직 2개월…대법 "부당"

1·2심 원고 패소 "작업중지권 행사 부적법…징계 타당"
대법 "산업재해 발생할 급박한 위험 있다고 인식해"

(서울=뉴스1) 박승주 기자 = 누출사고 피해를 우려해 '작업중지권'을 행사했는데도 무단이탈 등을 이유로 징계처분을 한 것은 부당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9일 콘티넨탈오토모티브일렉트로닉스 근로자 A씨가 회사를 상대로 낸 정직처분 무효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

2016년 7월26일 오전 7시56분쯤 세종 부강산업단지 KOC솔루션 공장에서 화학물질인 '티오비스' 약 300ℓ가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티오비스는 상온에 노출될 경우 분해되면서 유독성 기체인 황화수소를 발생시킨다.

소방본부는 지역주민들에게 반경 50m 거리까지 대피하라고 방송했다. 산업단지 관리사무소장도 통제선 내에 있는 6개 공장 근로자들의 대피를 유도했지만 누출사고 지점으로부터 반경 200m 정도 거리에 있는 콘티넨탈 측은 대피 조치를 하지 않았다.

지회장을 맡고 있던 A씨는 오전 9시쯤 사고 소식을 듣고 회사에 대피명령을 내리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회사가 조치를 하지 않자 A씨는 작업장을 떠나면서 조합원 28명에게도 작업을 중단하고 대피하라고 했다. 이틀 뒤 A씨는 회사가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기자회견문도 발표했다.

이에 사측은 징계위원회를 열고 정직 2개월의 징계처분을 했다. A씨가 조합원들과 함께 작업장을 무단이탈했고 기자회견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해 회사를 비방했다는 이유였다. A씨는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 이어 2심도 징계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A씨가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만한 급박한 위험이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A씨는 재난지휘통제소를 방문해 객관적으로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상황인지 파악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을 거부했다"며 "작업중지권 행사는 적법하지 않다"고 밝혔다.

또 "기자회견으로 '회사가 누출사고를 인지했는데도 직원들에게 알리지 않았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허위사실을 적시해 회사와 임직원들의 명예를 중대하게 훼손했다"고 판단했다.

반면 대법원은 징계가 부당하다는 취지로 판단하고 사건을 하급심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황화수소 피해 범위를 명확하게 예측하기 어려웠고 상당한 거리까지 유해물질이 퍼져나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며 "실제 누출사고 지점으로부터 200m 이상 떨어진 공장에서도 오심, 구토, 두통을 호소하는 피해자들이 발생했던 사정 등을 보면 콘티넨탈 회사 작업장이 유해물질로부터 안전한 위치에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A씨는 근로자이자 노조 대표자로서 '인체에 유해한 화학물질이 누출됐고 이미 대피명령을 했다'는 취지의 소방본부 설명과 대피를 권유하는 근로감독관의 발언을 토대로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존재한다고 인식하고 대피하면서 다른 근로자들에게도 대피를 권유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parks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