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수치 입력하니 형량 '뚝딱'…AI 판사·변호사 시대 언제쯤?[미래on]

리걸테크 열풍 사법부로…법원 '차세대전자소송시스템' 내년 도입
AI 신중론…변호사단체 "공공성 지켜야" vs 리걸테크 "시대적 흐름"

ⓒ News1 DB

(서울=뉴스1) 황두현 정윤미 구진욱 기자 = #. 서울 서초역 사거리 인근, 혈중알코올농도 0.09% 음주운전 적발, 운행거리 500m, 대리운전 미이용, 전과 없음, 범행 자백.

지난 5일 저녁 서울 서초구에 거주하는 A씨가 경찰의 음주단속에 적발된 상황을 가정하고 법률플랫폼의 '인공지능(AI) 사건분석'에 상담을 의뢰했다. AI는 다음과 같은 분석을 내놨다.

"이용자님의 사건은 음주운전 1회에 해당합니다. 유사한 사건들의 평균 형량은 벌금 600만원입니다. 평균 재판 기간은 음주운전 단속일로부터 약 3.9개월입니다."

벌금형 이상 전과와 음주운전 인정, 대리운전 이용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다. AI는 벌금액뿐만 아니라 유사한 사건 결과와 징역형 집행유예와 같은 중형을 받은 사례도 제시했다. 사회경험, 결혼 유무 등 재판에서 참작될 양형 요소도 설명했다.

플랫폼 운영사 로이어드 컴퍼니 손수혁 대표는 "1만건 이상의 판결을 머신러닝 기법으로 분석해 사건 변수에 따라 이용자가 입력한 사항과 가장 유사한 판결문을 제시한다"고 설명했다. 미래 전망에 기반한 '예측'이 아닌 판결이 선고된 '판례'를 추천해 준다는 얘기다.

◇ 리걸테크 열풍 사법부로…법원 '차세대전자소송시스템' 내년 도입

법조계에 불어든 리걸테크(법률서비스와 기술 간 결합) 바람은 '스마트법원'을 지향하는 사법부도 예외는 아니다.

6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법원행정처는 약 3000억원을 들여 내년 상반기 도입을 목표로 차세대전자소소송시스템(차세대시스템) 구축사업을 진행 중이다. 차세대시스템 법원 내 90여개로 흩어진 각종 시스템과 노후화된 재판업무체계를 한데 모아 종합적으로 재개발하는 사업이다.

핵심 서비스 중 하나는 사법부 내에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이다. 데이터를 수집·저장·처리·분석하고 이를 시각화하는 AI 분석모델을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민·형사와 가사·행정·특허사건에 대해 재판부에서 심리 중인 사건과 유사한 사례를 찾아 재판에 참고할 수 있도록 하는 AI분석모델도 내놓을 방침이다. 민원인에 소송 절차를 설명해 주는 안내봇과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지능형 챗봇도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대법은 나아가 머신러닝 기술을 활용해 민사사건의 조정·화해를 예측할 수 있는 모델, 사건 쟁점을 추천하는 모델, 당사자 제출 문서를 요약해 주는 모델 등 재판 진행에 도움을 주는 AI 분석모델 개발을 검토하고 있다.

법원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인공지능 학습을 위해서는 자료가 많아야 하는데 법원에는 각종 준비서면과 판결문 등 방대한 기록이 있다"며 "활용할 방향은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모습.2022.7.24/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 AI 활용 신중론…변호사 단체 "공공성 지켜야" vs 리걸테크 "시대적 흐름"

법조계에 AI 활용이 늘어나는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가장 먼저 제기되는 것이 '정보독점' 문제다. 공개된 판결과 소송·조사기록이 제한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인공지능 도입에 따른 혜택을 소수만 누리거나 극히 제한적인 경우에만 활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공판중심주의' 구현을 위해 법정 내에서 이뤄지는 심리가 판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AI가 비언어적 행위를 판별하기 어렵다는 진단도 있다. 사건 핵심 증인이 진술할 때 말투나 눈빛, 피고인의 최후 변론 때 행동이나 손짓 등은 AI가 알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피고인이나 증인의 법정 내 행동거지가 의외로 심리에 영향을 주는 경우가 있다"며 "대면 상황을 파악할 수 없는 인공지능이 내리는 판결은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조계는 금융·의료분야처럼 공공성이 보장돼야 하는 만큼 AI 확대 흐름을 단순히 산업의 관점에서 볼 수 없다는 시각도 있다. 핀테크 기업 위주의 '사설 법률플랫폼'이 소비자에게 사건 상담 등을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변호사 중개 서비스를 통해 수익 사업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변협은 앞서 플랫폼 가입 변호사들이 플랫폼 '로톡'에 가입해 광고 규정을 어겼다며 징계를 내렸다. 징계받은 변호사들은 법무부에 이의를 신청했고, 이르면 이달 중 법무부의 판단이 나온다.

변협은 "사설 플랫폼은 궁극적으로 변호사 중개를 통해 광고 수익을 벌기 위한 수단"이라며 "플랫폼이 침투한 배달 시장에서 소비자들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높은 이용료를 내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입장이다.

반면 플랫폼 측은 변호사단체가 기득권을 사수하기 위해 소비자들의 법률서비스 접근권을 박탈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최근 리걸테크 기업 로앤굿은 "변호사단체는 시대적 흐름을 인정하고 변화를 수용해 법률시장 파이를 키워야 한다"는 입장문을 내기도 했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전경. 2018.6.17/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 '사건 적체' 누적…전문가들 "보조 수단 활용 필요"

전문가들은 법조계가 시대적 흐름에 맞서기보다는 AI를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법원 내 '사건 적체'가 심각한 만큼 사실관계 정리 등 단순 업무는 AI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발간된 '2022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1년 전국 18개 지방법원에 접수된 사건은 11만4109건으로 2012년 9만3153건보다 22.5% 늘었다. 같은 기간 사건 처리율은 98%에서 93%까지 떨어졌다.

반면 같은 기간 법관 수는 2858명에서 3228명으로 13% 늘어나는 데 그쳤다. 법관 1명이 맡아야 하는 사건이 늘면서 심리가 지연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대법원은 사건 심리를 보조하는 재판연구관을 늘려 이같은 문제를 해소하고 있지만 한계는 분명하다.

리걸테크 기업 엘박스 이진 대표는 지난달 대법원 주최 심포지엄에서 "재판연구관 증원은 미봉책에 불과하며 근본 문제 해결을 위해 기술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AI 기술을 법관 업무에 적극적으로 도입한다면 모든 법관의 코트넷(법원 내부망)에 'AI 재판연구원'이 생기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판사가 맡은 사건과 관련된 하급심 판결문 검색이나 기록을 검토할 때 '보조자'의 역할로 활용하자는 주장이다.

법률전문가들도 평가도 이 대표의 제언과 유사한 맥락이다. 현직 판사를 대체하는 'AI판사'를 도입하기보다 재판 지원 업무에 활용하자는 의미다.

정형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AI를 도입하면 자료 정리, 기존 판례 분석, 유사 사례 검색 등을 통해 국민들에게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제공할 수 있다"며 "데이터를 통일된 처리 기준에 따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다만 "헌법은 국민들이 법관에 의해 재판받을 권리를 부여하지만 사람이 아닌 법관, 즉 AI가 판결하는 것은 다른 영역"이라며 "컴퓨터를 활용하듯이 AI는 보조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ausur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