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재구성] 은혜를 원수로…나가란 말에 은인 살해한 지명수배자

장애인강간 등 혐의로 수사받다 도주…암자에 숨겨준 은인에 범행
법원, 징역15년 선고…"범행 수법 매우 잔인, 자수한 점 참작"

ⓒ News1 DB

(서울=뉴스1) 김규빈 기자 = "여기서 당장 나가."

B씨가 암자에서 숨어지내게 해달라는 A씨의 부탁을 모질게 거절했더라면 이날의 참극은 벌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술자리에서 벌어진 작은 다툼은 결국 살인으로 번졌다.

사건은 약 10년 전인 지난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A씨는 같은 해 11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장애인강간)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됐고, 처벌이 두려웠던 A씨는 도주행각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평소에 알고 지내던 B씨에게 "숨겨달라"고 도움을 요청했고, B씨는 A씨를 거둬줬다. 이때부터 A씨는 B씨가 거주하는 강원도 횡성군 소재 암자에서 함께 살게됐다.

이후 이들은 3년간 함께 지냈다. 하지만 A씨에게는 한 가지 불만이 있었다. B씨가 기억을 못 할 정도로 술에 취할 때마다 자신을 때리고, 이튿날 깨어나면 모른 척 잡아떼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명수배자 신세였던 A씨는 B씨에게 불만을 말을 하지 못했고, 감정의 골은 점점 깊어만 갔다.

사건이 벌어진 것은 2015년 9월 중순 오후 9시 무렵이었다. A씨는 평소와 다름없이 B씨와 술자리를 갖게 됐다.

이 자리에서 만취한 A씨는 B씨에게 "왜 (술에 취하면) 사람을 때리나"라고 따지며, 사과를 요구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B씨는 A씨의 옷, 이불, 가방 등을 암자 앞마당으로 꺼내면서 "여기서 당장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순간 A씨는 당황했다. 또 암자에서 쫓겨나면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B씨가 미웠고, 자신에게 사과를 하기는커녕 성내는 B씨의 태도에 화가났다. 이에 A씨는 주방에 들어가 흉기를 들고 와 A씨의 복부, 가슴, 옆구리 등을 수 십차례 찔렀다. B씨는 그 자리에서 숨졌다.

A씨의 범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혈흔이 묻은 옷가지를 태워버리는 등 범행을 은폐했다. 또 암자 거실에 놓인 바구니, 책장 등에 있는 B씨의 현금 18만원을 훔친 뒤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던 B씨의 차를 훔쳐 도주했다.

하지만 A씨는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수사기관에 찾아가 자수했다. A씨는 결국 살인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피해자는 도주 중이던 피고인을 도와 함께 살던 중 이 사건 범행을 당하게 됐다"며 "이 사건 범행 수법이 잔혹한 점을 볼 때 피고인의 죄질은 매우 무겁다"고 판시했다.

이어 "피고인은 피해자의 유족으로부터 용서받지 못했다"며 "다만 피고인은 이 사건 범행 후 수사기관에 자수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1심은 A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판결에 불복한 A씨와 검찰은 모두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도 1심이 옳다고 봤다.

rnk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