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법정]⑧대형마트 의무휴업 논란…대법·헌재 판단은?

대법 "경제적 자유, 상생과 같은 가치"
유통환경 변화에 폐지 목소리…노동자 건강권 등 반대 의견

편집자주 ...판결은 시대정신이다.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옳다고 믿는 가치와 때론 나아 가야할 방향을 담고 있어서다. 우리 사회는 짧은 기간 압축적으로 성장하면서 여러 차례 격변기를 거쳤다. 이 때문에 1년 전에는 옳다고 믿었던 시대정신이 오늘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역사의 변곡점에서 과거와 정반대의 판결이 많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건의 판례를 통해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짚어봤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뉴스1 ⓒ News1) 2022.9.7/뉴스1

(서울=뉴스1) 박주평 기자 = 대형 마트의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매달 의무휴업일을 도입하는 내용의 '유통산업발전법'이 지난 2012년 시행됐다. 이 기간 구글에서 '이마트'와 관련해 가장 많이 검색된 단어는 '이마트 휴무일'이다. 그만큼 주말에 장을 보기 전 대형마트 휴무 여부를 확인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됐다.

대형마트의 영업을 규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소상공인과 전통시장 살리기'다. 대형마트들은 저렴한 가격과 쾌적한 쇼핑 환경, 편리한 주차장 등을 앞세워 유통시장을 빠르게 장악했던 것이 사실이다. 반대로 전통시장을 찾는 이들은 그만큼 줄었고 시장상인들도 하나둘 떠났다.

하지만 최근에는 유통시장의 주도권이 '온라인'으로 급격히 넘어간 만큼 대형마트 영업규제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마트가 문을 닫는다고 해서 소비자가 전통시장을 찾지 않는데다 오히려 온라인을 규제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대형마트 의무휴업은 '근로자 복지'라는 이유가 더해졌다. 의무휴업이 폐지되면 마트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 제대로 쉴 수 없게 된다는 논리다.

의무휴업 폐지와 유지 모두 타당한 측면이 있다. 2015년 대법원 판결과 2018년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을 통해 의무휴업을 둘러싼 쟁점들을 되짚어 봤다.

◇대형마트 급성장에 전통시장 아우성…영업규제 도입

10일 법조계와 유통업계 등에 따르면 대형마트 영업시간 규제는 대형마트의 급속한 성장이 생존을 위협한다는 중소상공인들의 아우성에 국회가 응답한 결과다. 전통시장 매출액은 2006년 29조8000억원으로 대형마트(25조700억원)보다 많았지만 4년 만인 2010년엔 24조원으로 줄어 대형마트 매출액(33조7000억원)에 역전당했다.

2010년 전통시장 주변에 대형마트 입점을 금지하는 등록규제가 시행됐고 2012년 1월17일 공포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에는 영업규제가 도입됐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중소점포와 상생 발전, 노동자 건강권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대형점포의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의무휴일을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법안이 공포되자 각 지자체는 조례를 제정해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의무휴일을 지정했다. 롯데쇼핑, 이마트, 홈플러스 등 6개사는 서울 동대문구 등 지자체 단체장을 상대로 행정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에 나섰다.

◇"이마트, 대형마트 아니다"…1심과 달랐던 2심 판결

1심 재판부는 조례가 위법하다는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법률 조항이 영업시간 제한 범위를 오전 0시부터 8시까지, 의무휴업일을 매달 1일 이상 2일 이내로 정함에 따라 지자체가 재량을 행사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적이고 기업들이 처분의 시행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 기업들은 당시 네덜란드 법인이 소유했던 홈플러스 등에 대한 영업시간 제한은 서비스 영업의 총량 제한을 금지한 'WTO 서비스 교역에 관한 일반협정'(GATS) 16조2항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규제를 시행할 수 있는 예외 사유에 입법 목적의 하나인 '건강권 보호'가 있고, 조례의 모법인 법률조항과 조약조항 사이에는 법률조항이 우선한다고 봤다.

하지만 2심의 판단은 달랐다. 2심은 우선 대형마트를 '매장 면적이 3000㎡ 이상으로 점원 도움 없이 소매하는 점포 집단'이라고 규정한 유통산업발전법 시행령을 들어 이마트 등에 입점한 임대매장은 주로 점원의 도움 아래 소비자 구매가 이뤄지기에 대형마트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규제처분 대상이 잘못됐기 때문에 다른 법리는 따질 필요가 없다는 취지다.

아울러 재판부는 영업제한에 따른 전통시장의 이익보다 대형마트의 피해가 더 크다고 판단했다. 이와 관련해 사회 진출이 활발해진 여성들이 편리하게 장을 보기 위해 야간 또는 주말 대형마트 영업이 필요하고, 대규모 점포는 해외자본으로부터 국내 시장의 잠식을 방어하는 역할을 해 왔다고도 평가했다.

◇경제규제 입법 재량권·공익적 입법취지 인정한 대법원

1심과 2심 판결이 엇갈린 상황에서 대법원은 지난 2015년 11월 기업들의 패소 취지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대형마트가 규제 대상이 아니라는 원심 판결은 법리를 오해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규제 취지는 대규모점포 일체를 대상으로 삼는 것인데 형식적인 논리로 대규모점포를 구성하는 개별 점포가 대형마트 요건에 부합하는지를 살폈다는 것이다.

특히 대법원은 경제규제 입법의 헌법적 정당성을 판단할 규범적 기준을 제시했다. 대법원은 헌법상 경제질서는 헌법 제119조 제1항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의 존중'이라는 기본원칙과 제2항 '경제의 민주화 등 헌법이 직접 규정하는 특정 목적을 위한 국가의 규제와 조정의 허용'이라는 실천원리로 구성되고, 어느 한쪽이 우월한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기존 다수 학설은 제1항과 제2항을 '원칙'과 '예외'의 관계로 이해해 경제활동을 제약하는 입법에 예외적으로 특별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두 조항을 대등한 가치를 지닌 원리로 파악함으로써 경제규제 입법에서 광범위한 입법재량을 인정했다(이원우·최유경(2017)).

그러면서 대법원은 △건전한 유통질서 확립 △근로자의 건강권 보호 △중·소유통업과 상생발전 등 규제 처분으로 달성하려는 공익이 중대하고 보호할 필요성도 큰 반면 처분으로 인해 영업의 자유나 소비자 선택권의 본질적 내용이 침해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헌법재판소도 2018년 6월 기업들이 유통산업발전법 12조의2가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8(합헌)대 1(위헌)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헌재는 "형식적 자유시장 논리에 따라 방임하면 시장지배력을 확장해 온 대형마트만이 시장을 장악해 유통시장을 독과점하고, 전통시장과 중소유통업자들은 위축되거나 도태될 개연성이 매우 높다"며 "(이 경우)중소상인들이 생존의 위협을 받아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 등 경제영역에서의 사회정의가 훼손될 수 있다. 이런 결과는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사회적 시장경제질서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다만 조용호 재판관은 "국가의 개입은 시장의 불공정성을 제거하는데 그쳐야 하고 경쟁 자체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며 위헌 의견을 냈다.

◇10년새 급변한 유통 환경…다시 사회적 의제로

대법원 판결과 헌재 결정에도 불구하고 최근 마트 규제에 대한 찬반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기업들은 온라인 상거래가 활성화되고 오프라인 유통에서도 편의점, 식자재 마트 등이 성장하며 대형마트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주장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유통업체 매출 중 오프라인 비중은 68.2%에서 51.7%로 줄고, 온라인 비중은 31.8%에서 48.3%로 늘었다. 같은 기간 대형마트의 매출 비중은 24.7%에서 15.7%로 하락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예전엔 대형마트가 대표 소매산업으로 승승장구하면서 견제할 유인이 있었지만, 지금은 온라인, 편의점에 밀린다"며 "법을 일몰시키고 중소상인과 전통시장은 재교육이나 인프라 지원 등으로 상생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반면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이 시민단체 등과 함께 지난달 발족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자영업자들의 생존권,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위해 대형유통업 규제를 복합쇼핑몰 등까지 오히려 확대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정하나 서비스연맹 정책국장은 "주 52시간 노동이 지켜지더라도 노동자 전체의 공동 휴식이 중요하다"며 "소속 노동자가 아닌 입점업체,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휴식까지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경제계의 목소리에 호응해 대형마트 영업규제를 규제심판회의 1호 안건으로 올렸지만 노동계, 중소상공인 등의 반발로 논의를 잠정 중단한 상황이다. 양측의 주장이 첨예히 대립하는 사안인 만큼 규제의 입법 취지와 변화한 경제환경 등을 고려한 종합적 해결 방안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jup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