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학자 20명 중 19명 "대통령도 수사대상"
- 윤진희 기자
(서울=뉴스1) 윤진희 기자 = 대한민국 헌법학자 다수는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를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로 규정한다. 68년 헌정사에 남아있는 헌법 유린의 궤적을 돌아다봐도 독재와 집권연장 그리고 권력독점을 위한 헌법위반 사례만 있었을 뿐 한 민간인이 국정에 깊숙이 관여해 정책 등을 좌지우지 했던 사례는 없기 때문이다.
헌법입안자들과 오랫동안 헌법을 연구해온 헌법학자들은 물론 국민들도 생각조차 못했던 신종 ‘헌법유린’ 사태가 벌어진 셈이다.
김현웅 법무부장관과 최순실 사건 특별수사본부 본부장을 맡고 있는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의 헌법 84조에 대한 해석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법무부장관과 특별수사본부장은 대통령은 수사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뉴스1이 인터뷰한 헌법학자 다수는 대통령이 헌법정신과 가치를 훼손했음을 지적했으며 헌법 84조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 규정이 대통령이 수사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해석할 수 없다는 의견을 냈다.
◇ "대통령은 수사대상 아니다"라는 법무장관에 헌법학자들은…
지난달 27일 김현웅 법무부장관은 제4차 법제사법위원회 정기회에 출석해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박 대통령이 검찰 수사대상이 되는지를 묻는 야당의원의 질의에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에 수사도 포함되는지에 대한 여러 견해가 있을 수 있지만 다수설은 수사대상도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하지만 헌법 84조 대통령 재직 중 형사불소추 조항의 '소추'에 '수사'가 포함된다는 것이 학계 다수설이라는 김 장관의 주장은 사실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이 확인됐다. 현재 시중에 발간된 헌법학 교과서 가운데 새누리당 정종섭 의원이 학자시절 집필한 <헌법학원론> 외에는 관련 내용을 다루는 교과서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헌법학자들은 교과서조차 대통령의 수사대상 여부를 다루지 않고, 학계에서 활발한 논의가 없었던 이유로 현 상황이 헌법학자들도 예견하지 못한 ‘사상 초유의 사태’ 때문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사실상 헌법학계에서도 대통령의 형사 불소추 특권에 대한 논의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뉴스1이 헌법학회 소속 헌법학자 20명에게 헌법 84조에 따른 대통령의 수사가능 여부에 대해 질문했다. 전체 응답자 20명 가운데 19명은 “헌법 84조는 재직 중 ‘소추’ 즉 ‘소송의 제기와 진행’만을 금지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에 ”대통령 역시 수사대상이 된다“는 의견을 냈다.
응답자 20명은 각각 서울 소재 법학전문대학원 또는 법과대학 교수 10명과 그 밖에 경기 3명, 충남 2명 기타 전북, 제주, 경북, 충북, 경남지역에서 법학전문대학원 또는 법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에 있다.
헌법 84조가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않는다”고 정하고 있는 만큼 5명의 형법학자들에게도 해당 조항에 대한 해석을 의뢰했다.
서울 소재 법학전문대학원에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형법학자 다섯명은 모두 ‘소추’는 ‘공소의 제기와 진행’으로 해석해 수사는 ‘소추’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즉 대통령 재직 중에는 검찰에 의해 기소되지 않을 뿐 대통령 재직 중에도 ‘수사’는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 최순실 게이트 본질은 … 대통령 '헌법위반'
헌법학자들은 '최순실 게이트'는 한 개인의 권력형비리나 국정농단이 아닌 대통령과 관련자들의 헌법위반행위가 본질이라고 평가했다.
국민들은 국가 기본법인 헌법상 공식화된 민주적 절차인 ‘선거’를 거쳐 대통령을 선출한다. 대통령은 국민들이 대통령으로 선출함에 따라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정운영을 할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이 때문에 헌법학자들은 ‘최순실 게이트’로 명명되는 최씨의 일련의 행위들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법적은 물론 정치적으로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비선출권력’인 최씨가 국정을 농단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인사·외교·안보 등과 관련된 대통령의 권한은 국민이 권한을 부여함에 따라 정당화되는데, 아무런 민주적 정당성도 없는 말 그래도 ‘비선’에 불과한 한 개인이 대통령의 정치적 법적 결정을 대신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헌법학자들은 이를 우리 헌법이 지니고 있는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로 판단한다. 지방소재 법학전문대학원의 A 교수는 “군부독재와 유신으로 얼룩진 대한민국 68년 헌정사의 궤적 속에서도 국민이 수권한 헌법과 법률에 따른 권한을 통째로 다른 누군가에게 사실상 ‘이양’하는 방식으로 헌법정신을 훼손한 사례는 존재한 사실이 없다”고 설명했다.
A 교수는 “헌정사에서 볼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헌정질서 문란행위와 헌법파괴 행위 등이 있었지만 ‘최순실 게이트’ 같은 사례는 수십 년 군부독재 시절에도 없었던 ‘사상 초유의 사태’”라고 일갈했다.
서울 소재 법학전문대학원의 B 교수는 “최씨가 검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되고 같은날 오후 11시 57분 검찰이 최씨를 긴급체포함에 따라 언론과 국민들의 관심이 온통 최씨가 저지른 위법·불법행위로 쏠려있다”며 “최씨가 저지른 위법·불법행위보다 더 중한 것은 현직 대통령의 헌법위반행위”라고 말했다.
그는 “최씨가 저지른 위법·불법행위보다 현직 대통령의 헌법위반 행위가 ‘최순실 게이트’의 근본원이며, 대통령과 청와대 관계자 등이 최씨에게 국민이 헌법수호를 위해 사용하도록 내어준 권력을 최씨가 농단하도록 만든 게 ‘최순실 게이트’의 본질”이라고 지적했다.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대통령이 구체적으로 어떤 헌법위반 행위를 했는지에 대해 다수 전문가들은 ‘헌법수호의무’조항인 헌법 66조 2항을 꼽았다.
우리 헌법이 담고있는 다양한 민주적 가치는 물론 헌법의 기본원리에 위반되는 행위를 해 헌정질서를 문란케 했다는 의견이다.
C 교수는 "'최순실 게이트'는 헌법 정신을 유린하고 헌법조문을 깡그리 무시한 채 국민이 잠시 내어준 헌법과 법률상의 권한을 ‘사유화’해 아무런 정치적 책임도지지 않는 비선출권력이 제 멋대로 휘두르게 한 사안"이고 분석했다.
C 교수는 "현행 헌법에 따라 대통령 취임 시 '헌법수호 선서'를 하도록 돼 있고 현 대통령도 헌법을 수호하겠다는 선서를 했음에도, 헌법 수호는커녕 헌법이 권력 오남용을 방지하고 국정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촘촘하게 설계해 놓은 대통령제에 관한 규정들을 내팽개친 것과 다름없다"고 개탄스러워했다.
학자들은 또 헌법을 유린한 당사자인 행정부 소속 김현웅 법무부장관 등이 헌법 84조에 따라 대통령은 수사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헌법을 위반하고 헌법정신을 훼손했음에도 방어 논리로 헌법조문을 방패삼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지방 소재 대학의 D 교수는 "헌법상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은 말 그대로 대통령직 수행을 위해 인정하는 ‘특별한 권리’”라며 “그런데 대통령직 수행 과정에서 헌법을 위반하고 헌법정신을 훼손한 뒤에 다시 헌법조항을 근거로 특권을 주장하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법조전문기자·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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