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반 끈 '대화록 유출' 수사…'봐주기' 비판

정문헌 의원 1명 약식기소…김무성 의원 등 무혐의
'대통령기록물법' 아닌 '공공기록물법' 적용도 논란
'찌라시' 정체·누설된 비밀 수준도 파악 못해

(서울=뉴스1) 김수완 기자 =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해 11월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유출 의혹' 사건과 관련해 피고발인 신분으로 검찰조사를 마친 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을 나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News1 박세연 기자

</figure>지난 2012년 대선 과정에서 불거진 여당 측 인사들의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유출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1년7개월에 가까운 수사를 벌였지만 결과는 정문헌(48) 새누리당 의원 1명만 벌금 500만원에 약식기소하는 데 그쳤다.

검찰의 이같은 처분에 대해 사실상 '정권 눈치보기' 혹은 '여당 봐주기' 수사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국정원 보관 문건은 공공기록물?…대통령기록물로 보면 처벌 대상 넓어져

"국가정보원이 보관하고 있는 기록물은 '대통령기록물'이 아닌 '공공기록물'"이라는 검찰의 판단에서부터 '첫단추부터 잘못 끼운 수사'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여당 측 인사들이 유출한 대화록은 대통령기록물이 아니라 공공기록물이라는 논리는 검찰의 수사 결과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전제다.

검찰은 이 논리를 토대로 김무성(63) 새누리당 의원 등 대부분 인사에 대해 '혐의없음' 처분했다.

즉 이번 사건에는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 아니라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 적용되며 공공기록물관리법상 비밀누설죄는 '비밀기록물 관리업무를 담당했던 사람'만이 저지를 수 있는 죄로 규정돼 있어 청와대 통일비서관을 역임했던 정 의원 외에는 처벌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현행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은 대통령의 보좌기관·자문기관·경호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이 생산하는 기록물만 대통령기록물로 본다는 명문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논리는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을 형식적으로 해석한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즉 처음부터 '대통령기록물'의 범위를 정해놓고 수사를 시작해 여당 측 인사들에게 면죄부를 안겨주려 했던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국정원 보관 대화록과 대통령기록관 보관 대화록은 같은 내용을 담은 문서지만 (생성기관과) '보관처'라는 형식적 기준에 따라 법 적용을 완전히 달리했기 때문이다.

대화록을 '공공기록물'이 아닌 '대통령기록물'로 볼 경우 국정원 대화록 발췌본을 열람했지만 무혐의 처분을 받았던 서상기(68) 의원 등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여당 의원들에 대한 판단이 달라지는 등 처벌 가능 범위는 크게 넓어질 수 있다.

검찰은 대화록을 국정원이 보관하는 정보로 보고 이같은 열람 행위를 소속 상임위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관례'로 봤지만 대통령기록물로 볼 경우 판단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또 이를 정치적 목적으로 여당 의원에게 누출한 남재준(70) 전 국정원장 등에게도 국정원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수 있게 된다.

◇'찌라시' 정체·누설된 비밀 수준도 파악 못해…관련자 대부분 서면조사

유출 사건 내내 문제가 됐던 김 의원의 '찌라시' 발언에 대해서도 검찰은 명쾌하게 해명하지 못했다.

김 의원은 지난 대선 당시 회의록 문구를 '토씨 하나' 다르지 않도록 읽어 정 의원을 통해 대화록이 유출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김 의원은 "찌라시를 보고 읽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검찰은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김 의원은 당 내외 선거관리 동향 문건을 '찌라시'로 지칭했다고 해명했다"고 설명해 새누리당 내 '실제 대화록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문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암시하기도 했지만 김 의원이 언급한 '찌라시'의 구체적인 정체는 여전히 밝히지 못했다.

또 정 의원이 김 의원, 권영세(55) 주중대사 등에게 어느 정도까지 비밀을 누설했는지에 대해서도 "쉽게 자백을 해주면 확인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며 사실상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음을 털어놓았다.

검찰은 이번 수사과정에서 김 의원의 경우 한차례 소환조사했을 뿐이고 권 대사와 남 전 원장에 대해서도 겨우 한차례 서면으로 조사하는 데에 그쳤다.

또 김 의원, 권 대사 등이 정 의원으로부터 대화록을 이어받아 유출했다는 의혹을 받았던 부분에 대해서도 "김 의원 등은 단순히 비밀을 들었을 뿐"이라고 선을 그었고 새누리당 내에서 대선을 위해 관련정보를 서로 주고받으며 대책을 마련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은 해소하지 못했다.

다만 검찰은 김 의원 등이 비밀누설죄의 공범으로 처벌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대법원 판례상 공무상비밀누설 관련법리에 따르면 비밀누설죄의 공범도 신분이 있는 경우에만 성립한다"며 "이 판례를 적용하면 신분이 없는 김 의원 등에게는 공범이 성립될 여지가 없다"고 해명했다.

◇중요 비밀 유출했는데 고작 벌금 500만원?

유일하게 사법처리 대상에 속한 정 의원의 경우에도 사법처리의 '수위'가 도마에 올랐다.

검찰은 정 의원을 벌금 500만원에 약식기소한 이유에 대해 "국민들의 알 권리를 고려해야 한다는 여당 측의 의견을 감안해 사법처리 수위를 정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행 공공기록물관리법은 비밀누설 범행을 저지른 자에 대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검찰이 지나치게 가볍게 처분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대화록 유출 사건의 경우 양국 정상의 발언이 공개돼 외교적인 문제로 비화되고 국제적으로 많은 비판까지 받은 만큼 처벌수위는 더 높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박주민 변호사는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에 대해 "대화록의 성격에 대한 편파적인 법 해석과 관계자들의 정보유출 관여에 대한 부실수사의 결과물"이라며 "정 의원도 고작 벌금 5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는 것은 앞으로 이런 문제가 생기면 처벌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abilitykl@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