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 비자금 증여·은닉 수법 다양

2004년 차남 재용씨 조세포탈 사건 주목
'전두환 추징법'으로 추징절차 수월

검찰이 16일 오후 경기 연천군에 위치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씨가 운영하는 허브빌리지의 압수수색을 마친 후 불상을 옮기고 있다. © News1 유승관 기자

</figure>검찰이 1672억원에 달하는 미납 추징금을 환수하기 위해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의 재산에 대한 광범위한 추적에 나선 가운데 2004년 불거진 차남 재용씨의 조세포탈 사건이 관심을 끌고 있다.

당시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전 전 대통령으로부터 비자금의 일부를 증여받은 재용씨가 이를 숨기기 위해 동원한 수법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대검 중수부는 2004년 2월11일 재용씨를 전격 구속했다.

검찰은 2000년 12월 말께 전 전 대통령으로부터 액면가 167억500만원에 달하는 국민주택 채권 2771매를 증여받고도 세금을 납부하지 않은 혐의(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조세포탈)로 재용씨를 재판에 넘겼다.

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재용씨는 증여사실을 숨기기 위해 자신과 함께 C&K밸류매니지먼트를 운영하던 강모씨 명의의 신한은행 대여금고와 한스매디텍 명의의 하나은행 삼성동지점 대여금고에 채권을 각각 보관했다.

재용씨는 2001년 9월 노숙자 김모씨 명의로 이트레이드 증권에 차명계좌를 계설하고 이 계좌를 통해 액면금 137억500만원 상당의 채권을 판매한 뒤 이 돈을 사채업자 장모씨, 김모씨 등이 운영하는 차명계좌 7곳에 분산예치했다.

재용씨는 이 계좌들을 이용해 기업어음을 사들이고 되팔아 차익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또 변모씨 등 타인 명의로 미국에 약 10만달러를 송금하고 류모씨 명의로 빌라 분양대금을 납부하는데 사용했다.

재용씨는 2002년 6월 신원을 감춘 채 이트레이드 증권사 직원 이모씨를 통해 사채업자 김모씨에게 나머지 액면금 30억원 상당의 채권을 판매한 후 새로 발행된 국민주택채권을 반복적으로 사들였다.

재용씨는 사들인 국민주택채권을 청와대 재무관을 지낸 장모씨가 관리하도록 했다.

장씨는 전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전씨 일가의 차명계좌를 관리해온 인물로 알려졌다.

재용씨는 재판과정에서 이들 채권을 증여받은 것이 아니라 1987년 12월께 외조부 이규동씨가 보관하던 자신의 결혼축의금 18억원을 운용해 얻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1988년 1월11일께 재용씨가 외국으로 유학을 가면서 외조부 이씨에게 그 돈의 관리를 맡겼고 이씨가 2억원을 보태 증식시킨 뒤 2000년 12월께 돌려줬다는 것이 재용씨 측 주장이었다.

법원은 재용씨가 받은 국민주택채권 2771매 중 1013매(액면가 73억5500만원)는 전 전 대통령이 소유·관리하던 자금으로 매입된 채권이라고 판단했다.

나머지 1758매는 매입자금 추적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전 전 대통령으로부터 증여받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법원은 재용씨가 결혼하기 전에 전 전 대통령이 관리하던 계좌에서 출금된 자금이 국민주택채권의 자금원으로 사용됐고 전 전 대통령이 구속돼 있는 동안에는 전혀 거래가 없다가 석방된 뒤부터 다시 거래가 이뤄지는 등 관련 증거에 비춰볼 때 재용씨의 주장을 인정할 수 없다고 결론내렸다.

또 국민주택채권 매입 등 자금관리에 전직 청와대 재무관 장씨와 또다른 재무관 손모씨, 김모씨 등이 관여한 것으로 보아 전 전 대통령 자금으로 채권이 매입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재용씨에게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 벌금 28억원 등을 선고했다.

한편 검찰은 재용씨의 형이 확정된 후에 사해행위 취소소송 등 채권액 회수를 위한 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전 전 대통령이 추징대상인 자금을 채권증여를 통해 재용씨에게 넘겼기 때문에 소유권을 전 전 대통령에게 돌려놓은 뒤 추징절차를 밟았어야 하지만 검찰은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일명 '전두환 추징법'으로 불리는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사해행위 취소소송을 하지 않고 곧바로 추징할 수 있게 됐다.

특례법은 '범인 이외의 자가 그 정황을 알면서 취득한 불법재산과 그로부터 유래한 재산에 대해 범인 이외의 자를 상대로 집행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검찰 관계자는 "추징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 것"이라며 "전에는 소송을 해서 소유권을 범인에게 옮겨놓은 다음 추징해야 했는데 그런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어 수월해졌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2004년 당시 불거진 채권과 관련한 금액도 추징대상이 될 전망이다.

ys27@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