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지만 다르다? 울퉁불퉁 '아파트시장' 작은 차이 살펴야[박원갑의 집과 삶]
박원갑 KB국민은행부동산수석전문위원 = 해마다 피는 꽂은 멀리서 보면 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다르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도 지난해와 비슷해 보이지만 눈 결정체에서 차이가 난다. 이는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의 ‘차이의 반복’ 개념이다. 반복은 하되 동일한 게 아니라 작은 차이를 동반한다는 뜻이다.
‘차이의 반복’ 개념은 부동산시장에도 대입할 수 있다. 상승과 하락을 반복해 비슷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과거 그대로 재현하지 않고 차이를 만들어낸다. 요즘 부동산시장에서 ‘어게인 2023년’이라는 말이 회자한다. 시장 흐름이 지난해 이맘때와 닮은 꼴이 아니냐는 것이다. 정부의 대출 규제로 가을 들어 아파트값 상승세에 제동이 걸린 점을 보면 충분히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지난해의 복사판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일단 대출 규제에선 비슷하다. 지난해 9월 특례보금자리 대출 일반형과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상품 판매가 중단됐다. 1년이 지난 올 9월에는 2단계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이 도입되었다. 대출 규제는 주택시장으로 흘러 들어가는 돈줄을 조이는 효과가 있다. 서울은 집값이 비싸 대출 민감도가 높다. 그런 만큼 대출 문턱을 높이면 주택 수요가 줄어 당장 거래량 감소로 이어진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아파트 거래량 정점은 8월, 실거래가지수 고점은 한 달 뒤인 9월이었다. 그리곤 10월부터 연말까지 3개월간 거래 급감속에 급격한 조정을 겪었다. 지난해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는 1월부터 9월까지 13%가량 상승했으나 4분기에 3% 하락하면서 상승분을 일부 반납했다. 올해 역시 거래량 꼭지는 7월(8916건)이 될 가능성이 크다.
8월 들어선 2단계 스트레스 DSR 도입을 앞두고 6180건으로 크게 줄었다. 거래량은 수요자의 심리를 보여주는 지표다. 거래량이 감소했다는 것은 내 집 마련 수요자들이 관망세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래 둔화로 아파트값 오름세도 주춤한 양상이다. 서울 아파트 주간 단위 가격 상승률도 9월 초 0.2%대에 달했으나 10월 초에는 0.1%대 이하로 낮아졌다.
올 4분기에도 지난해처럼 거래 위축 흐름은 비슷할 가능성은 있으나 가격 조정폭은 심하지 않을 것 같다. 정부가 대출 규제에 나서는 것은 지난해와 유사하지만, 금융시장 여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에는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장중 연 5%를 돌파할 만큼 채권시장에서 발작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채권시장은 안정국면이다. 미국 연방준비위원회가 9월에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낮추는 '빅컷'에 나선 데 이어 한국은행도 10월 0.25% 포인트 인하했다. 금리를 낮춘다는 것은 유동성을 시장에 공급한다는 의미다. 9월 한국은행의 소비자동향조사 결과 주택가격전망지수가 119로 약 3년 만에 최고치라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9월에는 110으로 올 9월보다 낮았다.
이들 변수를 종합해 볼 때 서울 아파트값이 연말쯤 약세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으나 지난해처럼 큰 조정을 받지는 않을 것 같다. 이보다는 약한 조정(약보합세) 정도로 내다본다. 물론 이런 예측은 거시경제에서 돌출악재가 터지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다.
여러 학술논문을 살펴보면 상대적으로 집값이 저렴한 지방은 대출 규제보다 기준금리 인하 효과가 큰 편이다. 따라서 이번 금리 인하로 숨통이 트이는 모습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방 아파트는 실거래가 기준으로 7월 전달대비 0.2% 오르면서 두 달 연속 상승세다. 다만 미분양이 전국의 80%에 달하는 데다 핵심수요층인 젊은 인구 유출 등으로 본격 회복하기는 어렵다. 당분간 매물 소화 과정 속 바닥을 다지는 양상이 이어질 것이다. 지역별로 울퉁불퉁한 양상이므로 지역밀착형 돋보기를 통해 시장을 고찰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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