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포아파트 '60억', 부동산 초양극화 서막일까?[박원갑의 집과 삶]
슈퍼리치 축장심리, 초고가 강남 아파트값 유발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 = 부자들은 버는 만큼 돈을 쓸까? 그렇지 않다. 부자일수록 한계소비성향(소득이 1단위 추가로 증가할 때 소비지출의 크기)이 낮다. 소득은 증가해도 먹고 입는 데 지출하는 돈은 그만큼 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득이 곱절 늘어도 하루에 세 끼인 밥을 여섯 끼로 늘리지 않으니 말이다. 부자들은 그 대신 ‘남아도는 소득을 어디에 저장할까’에 관심을 쏟는다. 부자들이 골몰하는 것은 프랑스 철학자 질 들레즈의 표현처럼 입고 쓰는 데 필요한 ‘향유자본’보다는 부를 늘리는 ‘투자자본’이다.
부즉다사(富卽多事)라고 했던가. 돈이나 재물이 많으면 일도 많은 법이다. 부자들은 티 내지 않고 부를 저장하고 싶어 한다. 저장한 재산은 나중에 뜻깊은 데 사용할 수도 있고, 자녀에게 물려줄 수도 있다. 여기에서 축장(蓄藏·hoarding)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돈을 콘크리트 건물에 저장하는 것은 대표적인 축장 행위다. 다람쥐가 도토리를 경쟁자 몰래 땅속에 저장하듯이 말이다. 건물은 태풍이 불어도 날아갈 일이 없다.
아파트는 굳이 자신이 소유자라는 것을 밝히지 않는 한 누구 것인지 잘 모른다. 작정하고 남의 등기부 등본을 뒤질 일은 흔치 않다. 하지만 승용차나 옷, 시계 등을 보면 금세 부자인지 아닌지 눈치챌 수 있다. 이러니 강남 아파트는 부자들에게 돈을 잘 드러내지 않고 안전하게 축장할 수 있는 1차 ‘머니 저장창고’인 셈이다. 축장은 실거주를 위한 ‘똘똘한 한 채’ 매입이나 갭투자 등의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성공적인 축장을 위해서는 나중에 되팔 때의 환금성을 고려해야 한다. 아파트는 금고 안에 넣어둔 5만 원짜리 지폐보다는 못 하지만 다른 부동산에 비해서 돈으로 바꾸기 쉽다. 아파트는 전체 주택의 64.6%(2023년 기준)를 차지할 정도로 물량이 많고, 다른 부동산에 비해 거래 회전율도 높다. 아파트는 금융위기나 거래절벽 사태 같은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곤 원할 때 언제든지 돈으로 바꿀 수 있는 현금성 자산이다. 다시 말해 아파트는 가치를 저장하고 있다가 언제든지 캐시로 만들 수 있는 실물 화폐이자 현금인출기(ATM)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물론 마음 편히 돈을 묻어두려면 고만고만한 물건을 고르지는 않을 것이다. 곡식을 저장할 때 썩을 가능성이 있는 것은 빼고 저장하듯이 말이다. 안전자산으로 이미 검증된 강남 아파트를 손쉬운 가치저장 공간으로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생각이 굳어진 데는 ‘묻어두기만 하면 돈이 되더라’는 경험치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슈퍼리치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런 축장 행위는 타인에 대한 과시라기보다는 자기 만족감의 일환이라는 측면이 강할 것이다. 집에 황금을 묻어두고 있으면 왠지 뿌듯한 것과 같다. 요즘 서울의 초고가 아파트 아파트의 등장은 ‘축장 자산’이라는 개념이 아니고선 이해하기 힘들다. 서초구 반포 일대의 국민주택규모(전용면적 84㎥) 아파트값이 60억 원에 거래됐다.
어지간한 꼬마 빌딩값이다. 축장 행위로서 집을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하이엔드 아파트값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싸질 수 있다. 부동산 시장 초양극화의 단면이다. 어찌 보면 ‘극과 극 사회’의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늘도 존재한다. 부동산을 둘러싼 계급 갈등과 사회적 위화감이 커질 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과 젊은 층에 심한 좌절을 안겨줄 수 있다. 무엇보다 자본의 가치에 의해 땀 흘리는 노동의 가치가 폄훼당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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