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F부실에 주택시장 흔들? '두루뭉술' 위기설 경계해야[박원갑의 집과 삶]
주택 공급자의 위기, 소비자로 전이되는 경우 극히 드물어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 주식이나 부동산을 비롯한 자산시장에서는 위기설이 수시로 나돈다. 그런 우려가 현실로 이어지기도 하고, 불발로 그치기도 한다. 하지만 위기설은 그 자체만으로 우리의 편도체를 자극해 걱정을 유발하고 때로는 공포를 안겨준다. 걱정이나 공포에 사로잡히면 균형적 사고를 하기 어려워진다. 아마도 긍정적인 변수보다 부정적인 변수가 더 강력하고 지배적으로 우리 감정을 지배하는 ‘부정성 편향’ 때문이리라.
위기설은 실제 위기로 이어질지 항상 예의주시해야 한다. 하지만 위기설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두루뭉술하게 바라보니 문제다.
대표적인 예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사태로 집값이 급락할 것이라는 위기설이다. 부동산시장에서는 지난 4월 총선 이후 PF 부실이 터져 집값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는 ‘4월 위기설’이 나돌았다. 하지만 그 위기설은 과장된 것이었다. 오히려 4월 이후 아파트값이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급등했다. 최근의 PF 부실사태는 고금리와 경기 부진,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사업성 악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기서 촉발된 PF의 위기는 바로 시행사나 시공사, 일부 금융기관 등 주택 공급자의 위기다. 다시 말해 공급자가 집을 짓다가 ‘사고’가 터진 것이다. 주택을 구매하려는 소비자의 위기는 아니다. 소비자가 사고파는 매매 시장의 집은 이미 다 지어진 것이고 소유권도 공급자가 아닌 소비자의 것이다. 공급자의 위기가 소비자에게 이전되려면 ‘극단적인 이벤트’가 동반되어야 한다. 가령 대형 주택업체의 무더기 부도나 대량실업, 금리 급등 등이 나타나야 한다. 경제 전반의 위기로 번질 때만 공급자의 위기가 소비자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또 하나. 만약 대형건설업체가 다 지어진 집을 수십만 채 보유하다가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을 때 매매 시장에 내놓으면 집값이 급락할 수 있다. 물량 충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그럴 일은 없다. 일부 업체들이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지만 대부분 장기간 묶여있는 임대주택이다. 이처럼 공급자 중심의 건설경기와 소비자 중심의 주택매매 경기는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과거의 사례를 살펴보는 것도 분석에 도움이 된다. 2011년 연초부터 부산저축은행 등 여러 상호저축은행이 PF 부실 문제로 무더기 영업 정지됐다. 그해 한 해 동안 영업 정지된 저축은행은 16곳으로 이중 지방에 본점을 둔 곳은 부산저축은행을 비롯한 8곳이다.
그렇다면 아파트 매매가격은 어떻게 되었을까?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2011년 전국 아파트 실거래가는 전년 말 대비 6.4% 올랐다. 부산저축은행이 있는 부산지역은 같은 기간 16.5%나 상승했다. 이처럼 부산 아파트값이 많이 오른 것은 혁신도시에 각종 공기업이 이전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PF 부실사태의 악재를 압도할 만큼 강력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분석적 사고를 최고의 인식능력이라고 했다. 이는 주어진 문제를 해부해 원인을 치밀하게 확인하고 해답을 찾아가는 사고 과정을 뜻한다. 위기설이 나돌 때 기우 인지, 아니면 진짜 현실이 될지는 알 수 없다. 위기설은 가짜와 진짜 신호와 정보가 뒤섞여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럴수록 진위를 잘 따지는 팩트체크 능력이 필요하다. 요컨대 위기설이 나돌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감정적 반응보다 그 실체를 파악하는 냉철한 분석적 사고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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