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은 8할이 심리"…실수요자 '불안심리' 읽어야 [박원갑의 집과 삶]
박원갑 KB국민은행부동산수석전문위원 = 부동산 시장에서 수요(demand)는 가만히 있지 않는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움직인다. 수요는 쥐 죽은 듯이 잠잠하다가 어느 순간 폭발한다. 복잡계의 표현처럼 때로는 불시에 솟아나는 창발성 특성까지 띤다. 그런 점에서 수요는 조변석개(아침에 바꾸고 저녁에 고침)하듯 자주 변해서 가변적인 모습을 보인다. 아니, 때로는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변덕스럽기조차 하다. 이에 비해 시장 가격을 결정하는 또 하나의 축인 공급(supply)은 매우 비탄력적이다. 재건축으로 아파트가 다시 들어서기까지 10년이나 걸린다. 그래서 시장을 정확하게 진단하기 위해선 공급과 수요의 속성을 잘 알아야 한다.
많은 부동산전문가가 예측에 실패하는 것은 수요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다. 몇 가지의 변수로 들면서 수요가 안정적으로 움직일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을 하면 그 전망은 자주 빗나간다. 수요는 작은 자극만으로 치솟을 수도, 가라앉을 수 있어 예측을 어렵게 한다. 올해 초만 해도 아파트시장에서 수요는 안정적이었다. 경기 침체와 고금리에 누가 비싼 집을 사겠느냐는 수요부족 논리는 어느 정도 통했다. 하지만 3월부터 분위기가 갑자기 달라졌다. 서울과 경기도지역의 아파트 월간 거래량이 각각 4000건, 1만 건을 돌파하던 때다. 잠자고 있던 수요가 갑자기 폭발한 것이다. 대출금리 하락, 전셋값 상승에 분양가 인플레이션, 공급절벽론이 수요를 자극하지 않았나 싶다.
수요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실수요이고, 또 하나는 가수요(투기적 수요)다. 일반적으로 수요가 들쭉날쭉한 움직임이 나타나는 것은 가수요 때문이다. 지금 당장 필요 없지만, 더 오를 것 같아서 미리 사두거나, 하나 더 사려는 수요이다. 가수요가 많은 시장일수록 가격이 심하게 출렁인다. 일반적으로 실수요는 안정적이다. 하지만 불안 심리가 팽배해지면 실수요자들도 절박함과 초조감이 커지면서 불안정한 모습을 보인다.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불안감에 집 사기에 나서면 병목현상이 나타나 시장을 요동치게 만든다. 과열 초기국면으로 접어든 지금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시장이 딱 그렇다.
수요자의 흐름이 갑자기 달라지는 것은 인간 마음의 움직임, 즉 심리 영향 때문이다. 특히 단기적으로는 심리 영향이 절대적이다. 부동산 시장에서 말하는 심리는 대부분 불안 심리다. ‘부동산의 8할이 심리’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불안 심리가 커지면 집 없는 사람들은 평소 느끼던 무주택의 고통이 배가 된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비싼 집이라도 사려고 한다. 그래야 마음이 편해지고 고통도 덜 느끼기 때문이다.
이처럼 불안 심리가 커지면 시장 가격은 펀더멘털을 이탈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가격이 내재가치를 넘어 급등락하는 것은 다른 어떤 요인보다 심리의 문제가 크게 작용한다. 이성보다는 비이성, 그리고 합리성보다는 비합리성에 의해 움직이는 곳이 바로 심리의 세계다. 물론 중장기 부동산 가격은 심리보다는 시장 기본가치에 의해 결정된다.
지금 무주택자의 심리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존 주택시장으로 수요가 몰리는 쏠림현상을 분산하고 이연시키는 게 필요하다. 지금 불안 심리의 가장 큰 요인은 공급불안이다. 기다리면 집을 싸게 장만할 수 있다는 신호, 공급이 지속할 것이라는 신호를 시장에 확실히 보내야 한다. 그 신호가 믿음이 된다면 시장 안정 효과가 더욱 커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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