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은 집주인, 반은 은행"…에스크로 제도 '전세사기' 해법 될까

전세 사기 급증에 에스크로 제도 대안으로 떠올라
시장 정상화 기대…실효성 없다는 지적도

2024.6.11/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서울=뉴스1) 유수연 기자 = #사회초년생 A 씨는 집주인으로부터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일명 '전세 사기'를 당한 A 씨의 바람은 보증금을 조금이라도 돌려받는 것. 하지만 집주인에게 자산이 없어서 민사 소송을 해도 돈을 돌려받긴 힘들다. 만약 A 씨가 보증금의 반만 집주인에게 주고, 나머지 반을 은행에 이체했다면 보증금의 반이라도 변제받을 수 있었을까.

27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전세금을 반환하지 않은 전세 보증사고 건수는 2021년부터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21년 2799건 △2022년 5443건 △2023년 1만 9350건을 기록했고, 올해는 상반기에 집계된 건수만 1만 2254건이다.

전세 사기 규모 역시 증가하고 있는데, 피해 금액은 △2021년 5790억 원 △2022년 1조 1726억 원 △2023년 4조 3347억 원 △2024년 1~6월 누적 기준 2조 6592억 원이다.

전세에 대한 신뢰가 깨지면서 일각에선 에스크로(escrow)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에스크로 제도를 도입하면 전세 사기를 방지하고 침체기를 맞은 빌라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월 18일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에스크로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국토연구원 역시 전세 보증금의 10%를 제3기관에 예치하는 제도를 제안했다.

◇전세 사기 예방하고 시장 정상화 효과까지

에스크로 제도는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보증금을 직접 지급하지 않고, 제3자가 중간에서 보증금 일부를 보관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보증금이 1억 원이라면 5000만 원은 임대인에게 직접 주고, 나머지 5000만 원은 은행 예금 계좌에 보관하며 임대인은 예금 이자만 받는다.

에스크로 제도는 이해관계 없는 금융사나 은행이 임차인과 임대인 사이를 중개하기 때문에 전세 사기를 방지할 수 있다. 또,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줄 능력이 없다 해도 임차인은 은행에 예치된 보증금 일부를 반환받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에스크로 제도로 전세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면 전세 시장도 정상화될 수 있다고 봤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에스크로 제도를 도입하면 일단 역전세를 예방할 수 있으니까 믿음이 간다"며 "전세 계약 체결을 꺼리지 않으면 많은 사람이 계약하게 되고 시장 정상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광수 광수네복덕방 대표는 "과도한 전세금 인상의 인센티브가 없어질 것"이라며 에스크로 제도가 보증금의 과한 인상을 방지할 수 있다고 봤다.

◇"본연의 취지 회복" vs "실효성 없을 것"

다만 전문가들은 에스크로 제도 도입을 놓고 엇갈린 의견을 드러냈다. 도입을 환영하는 입장에서는 "전세 제도 본연의 취지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했지만, 실효성 없는 방안이라는 목소리도 있었다.

김 소장은 "원래 전세금은 안전하게 보관했다가 돌려줘야 할 돈인데 어느 순간 그 돈을 사용하는 상황"이라며 "갚을 돈이 있으면 예치를 안 해도 되지만, 돈을 갚을 능력이 없으니까 빌린 돈의 일부를 예치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제도의 취지를 설명했다.

다만 김 소장은 점진적인 시행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는 "(에스크로 제도를) 갑자기 시행하면 전세를 끼고 집 사는데 한도가 줄어들어 문제가 되니까 시행 방법과 시기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한국부동산경영학회장)는 "자금을 돌리면서 이자 이익을 얻거나 활용하는 것이 전세 제도"라며 "에스크로 제도로 (자금을) 계좌에 묶어 놓으면 활용을 못 하기 때문에 아무도 제도를 이용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 교수는 "빌라나 오피스텔의 신뢰성 있는 가격을 구축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또, 임대인 체납 정보·주민등록 전입 현황 등 중개 의뢰 받은 물건을 공인중개사가 분석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고 다른 방안을 제안했다.

shushu@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