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선구제 후구상' 실현될까…전문가들 "형평성 문제 있어"

야당-피해자들 국가보상 요구…원희룡 "국가 보호 시스템 넘어서"

서울 강서구 빌라밀집지역. 2023.7.20/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서울=뉴스1) 김동규 기자 = 전세사기 피해자 결정 인원이 9100여명에 도달했지만 피해자 측과 야당에서는 여전히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며 '선(先)구제 후(後) 구상(회수)'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한국의 여러 권리보호장치를 뛰어넘은 것이라 난색을 표하고 있다. 전문가들도 선 구제 후 구상(회수) 방식은 다른 사기 사건과도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세금이 들어간다는 이유에서 정부가 실행하기에는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6일 국회와 국토부 등에 따르면 현재 전세사기 피해자와 야당은 선구제 후구상 방식을 요구 중이다. 이 방식은 피해자들에게 정부가 임대인을 대신해 먼저 전세보증금을 돌려주고, 그 금액만큼을 나중에 임대인으로부터 받아내는 것이다.

전날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도 대위변제를 하면서 선 구제 후 회수 방식으로 하고 있다면서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도 정부가 이같은 방식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 의원은 "피해주택 전세보증금 규모가 평균 1억3000만원인데, 2조원 정도 규모면 최대 3만명의 피해자를 구제할 수 있다"며 "돈이 문제라면 은행에 있다"고 말했다.

선구제 후구상 방식을 두고 전문가들은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는 "학계에서 외적형평성이라는 말이 있는데 전세사기에만 이 방식을 적용하면 다른 사기사건 피해자들은 어떻게 할 것이냐라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변호사도 "이 방식이 전세사기에만 적용되면 주식사기나 보이스피싱 피해 등에서도 이 방식을 왜 적용 안 하냐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며 "여러 유형의 금전 사기피해가 많아서 특정 사기에만 적용하면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고 밝혔다.

국민 세금이 투입되고 구상이 실제로 잘 안 이뤄질 가능성도 언급됐다. 서 교수는 "구상채권은 대위변제에 의한 채권청구권인데 이건 대부분 부실채권이다"라며 "주 채무자가 경제적 파탄상태인 경우가 많아서 구상채권 회수율이 평균적으로 10%밖에 안 되는데 이러면 나중에 국민 세금으로 다 메워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이 방식에 여러 번 난색을 표하고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4일 열린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이 방식은 우리 사회에서의 국민적 합의와 한국의 여러 권리보호장치를 뛰어넘은 것이어서 안타깝지만 이 선을 넘지 않는 원칙 하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원 장관은 5일 열린 국토위 전체회의에서도 심상정 의원의 선구제 후구상 주장에 대해 "제안하는 마음이나 아이디어는 충분히 고민할 지점이 있는 거 같은데 좀 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은행의 돈에 대해도 말씀하셨는데 그런 부분은 사회적 공헌이라든가 국민적 합의나 자발성이 있어야 하는데 은행 돈과 관련해서는 복잡한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국토부는 지속적인 보완책을 통해 피해자들을 지원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지난 5일 국회 보고에서 국토부는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기존 주택 매입임대-전세임대-대체 공공임대'로 이어지는 3단계 지원체계를 구축한다고 밝혔다. 또 통매입이 불가피한 다가구는 전체 임차인의 동의가 아닌 전체 피해자의 동의만으로도 매입할 수 있도록 매입요건 완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근생빌라·신탁사기·외국인 등의 경우 기존 주택 매입이 곤란해 지원에 차질이 있었지만 이들에게도 전세임대와 대체 공공임대를 지원한다.

dk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