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대사관에 되살아난 김중업 손길…건축과 건설 사이[부동산백서]

충정로 도심 고층 빌딩 사이 꿋꿋이 지키는 '푸른, 빈 공간'의 힘

신축 주한 프랑스대사관 전경. 오른쪽이 복원된 김중업관, 뒤편 왼쪽이 관저(주한프랑스대사관 제공). ⓒ 매스스터디스

(서울=뉴스1) 최서윤 기자 = 서울지하철 2·5선 충정로역 일대는 중구와 서대문구가 교차하고 용산구와 종로구가 밀접한, 그야말로 강북의 '노른자위' 땅입니다. 뒤편엔 재개발구역, 대로변엔 오피스빌딩과 아파트, 역세권청년주택 등 좁고 비싼 땅을 최대로 사용하기 위해 고층건물이 즐비하죠.

그 빌딩 숲 사이에 우리 전통건축의 처마를 재해석한 지붕과 2층 높이의 낮은 건물, 초록과 연둣빛으로 정성스럽게 꾸민 조경 그리고 텅빈 공간을 조화롭게 배치한 장소가 있습니다. 서대문구 학익동에 약 130년을 터 잡고 뿌리내려 온 주한프랑스대사관 건물 얘깁니다.

지난 7월 14일 주한프랑스대사관에서는 혁명기념일인 바스티유 데이를 맞아 신축 대사관 건물을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현 학익동 주한프랑스대사관은 프랑스 건축 '거장' 르 코르뷔지에의 한국 제자인 고(故) 김중업 건축가 설계로 1962년 완공된 바 있는데요. 지난 2015년부터 건물 복원 작업을 시작해 올봄 신축개관한 겁니다.

김중업은 김종성 서울건축 명예대표, 고 김수근과 함께 전후 대한민국 1세대 건축가로 칭송받습니다. 1922년 평양 출생으로, 서울대 교수를 지내다 1952년 무작정 르코르뷔지에를 만나 파리에 정착, 1952년 10월부터 1955년 12월까지 그의 제자로 일하며 한국 건축 현대화에 많은 고민을 하고 그 결과물인 한국적 모더니즘을 귀중한 유산으로 남긴 예술인이죠.

건축가 김중업이 남긴 작품 중 한 곳이 바로 주한프랑스대사관입니다. 프랑스는 조선 후기인 1886년 한·불 우호통상조약을 통해 우리나라와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한 뒤 1896년 서울 중구에 정식 공관을 개설, 1905년부터 현 학익동에서 줄곧 대사관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주한 프랑스 대사관 김중업관 계단에 걸린 고(故) 김중업 건축가 사진. 2023. 7. 14/뉴스1 ⓒ News1 최서윤 기자
주한 프랑스 대사관 김중업관 계단에 걸린 고(故) 김중업 건축가 사진. 손잡이 재료마저 과거 설계와 동일한 질감의 재료를 찾기 위해 애썼다고 한다. 2023. 7. 14/뉴스1 ⓒ News1 최서윤 기자

◇한국적 모더니즘 건축 창시자…공모서 프랑스 건축가 제치고 설계자로

1959~1969년 주한프랑스대사를 지낸 로제르 샹바르(Roger Chambard) 대사는 사후 유해를 합천 해인사 자락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이를 실현했을 만큼 한국에 큰 애착을 가졌다고 합니다. 학익동 자리에 공관 신축을 결정하고, 공모를 열어 다른 프랑스 건축가들을 제치고 김중업을 설계자로 선정한 장본인이죠.

건축가 김중업은 그렇게 1959년 주한공관 건축 사업에 참여하게 됩니다.

"한국 전통의 미와 프랑스 특유의 우아함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물로 이 프로젝트를 설계할 특별한 기회를 얻었다. 이것은 건축가로서의 내 삶에서 진실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고 '김중업의 기록'에 전해지는데요.

대지 높이 차이가 12m인 언덕의 특징을 건축과 연결하는 법을 깊이 고민한 끝에 대사관저와 집무실, 영사과, 숙소를 설계한 최종 마스터플랜을 1962년 완성합니다.

다만 그 시기 한국 정치가 혼란스러웠던 만큼 설계는 온전히 구현되진 못했다고 합니다. 설계에 맞는 재료를 제대로 구하기조차 힘들었던 애로도 있을 테죠.

이후 60년이란 시간이 흐르는 사이 어느새 서울 인구는 당시의 4배가 되고 '한강의 기적'과 함께 충정로의 풍경은 완전히 달라지게 됩니다. 60년 전 주한대사관에선 한강이 내려다보였다고 하는데, 이제는 빌딩 숲에 가려져 어림도 없는 일이 됐죠.

프랑스대사관은 2015년부터 조민석 매스스터디스 대표, 프랑스 건축사무소 사티 윤태훈 대표 등과 새롭게 거듭나기 위한 '공동의 여정'을 시작하게 된 겁니다.

그 결과 영빈관 개념의 김중업관(PAVILLON KIM CHUNG-UP)과 관저(RESIDENCE), 영사·대민 업무를 보는 장-루이관(JETEE JEAN-LOUIS), 대사 집무실과 각 과 직원들이 근무하는 몽클라르 타워(TOUR MONCLAR)가 과거의 설계를 계승해 지금의 모습으로 새롭게 거듭났습니다.

포물선 곡선으로 날아갈듯한 지붕을 얹은 김중업관 뒤로 고층 아파트와 빌딩이 보인다. 2023. 7. 14/뉴스1 ⓒ News1 최서윤 기자
외부에서 바라본 주한프랑스대사관. 지금은 고층빌딩 사이에 파묻혀 있지만 60년 전엔 대사 집무실에서 한강과 인왕산이 내려다보였다고 한다. 2023. 7. 14/뉴스1 ⓒ News1 최서윤 기자

◇"높아진 땅값…팔지 않고 자리 지켜주고, 빈 공간 남겨줘서 감사"

필립 르포르 대사는 "주한프랑스대사관은 한국건축 걸작일 뿐만 아니라 한국의 얼이 살아 숨쉬는 곳"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1962년 완공 때만 해도 공관이 지금처럼 주변 빌딩숲에 가려져 있진 않았는데 어느새 김중업의 작품이 오롯이 드러나지 못하고 감춰지게 됐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당시 공관에서 보이던 인왕산과 한강도 고층건물에 가려졌죠. 르포르 대사는 "그런 이유로 우리 정원의 중요성이 커졌다"고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신축 대사관 경내에는 푸릇푸릇한 잔디와 나무로 조경이 잘 가꿔진 모습이었습니다. 쉼과 여유를 떠오르게 하는 벤치와 흙길은, 바깥 도심과는 색다른 풍경이었죠. 관저 앞 도보 양쪽으로는 한국의 식물과 프랑스 식물을 조화롭게 배치한 섬세함도 돋보였습니다. 대사관 건축에서부터 양국의 우호를 다지는 외교가 시작되는 겁니다.

이번 설계의 주인공 조민석 매스스터디스 대표는 "주한프랑스대사관은 도시 한복판에 철조망도 치지 않은 채 녹지를 만들고 건물 사이공간을 남겨 시원한 여백을 제공하고 있다"면서 "대사관의 역사만큼이나 주변 지역도 커졌는데 서울의 몇몇 대사관 건물을 보면 참 대단한 기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땅값이 높아졌는데 팔지 않고 (한국의 근대 건축 유산이 남아 있는) 그 자리를 지키고, 또 높게 짓지 않고 이렇게 빈공간을 만들어준 것도 감사하다"고 전했습니다.

주한프랑스대사관의 대사 집무실로 1962년 준공됐으나 현재는 영빈관 역할을 하는 김중업관(우측 앞)과 집무동 개념의 몽클라르 타워. 현재 대사 집무실은 타워 10층에 있다. 노출 콘크리트와 질감이 그대로 표현된 건축에 한국적 모더니즘이 반영됐다. 2023. 7. 14/뉴스1 ⓒ 김용관 작가
고(故) 김중업 건축가의 주한프랑스대사관 설계에는 대지 경사면을 살린 (4개 건물 간) 부드러운 통합, 중심축을 여러 번 꺾어 자연스레 건축물의 다양한 부분을 관찰할 수 있도록 한 특징이 있다. 르 코르뷔지에가 주창한 '건축적 산책'의 개념인데, 2층짜리 55m 길이 영사업무동인 라제띠(장-루이관)에서 몽클라르 타워를 바라보는 게 주한프랑스대사관 건축적 산책의 종착지다. 2023. 7. 14/뉴스1 ⓒ News1 최서윤 기자

◇개발이익 속 훼손 위기 처한 근대건축유산…개발 '붐' 위한 랜드마크 경쟁도

신축 주한프랑스대사관을 구경하는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보존'과 '재해석'입니다. 사티코리아의 정민주 건축가는 이번 리노베이션 과정에서 "김중업의 건축적 언어를 따라갈지, 대비시켜서 각각의 특징을 살릴지 고민이 많았다"고 회고했습니다. 당시 사용된 프리캐스트(PC) 콘크리트 패널을 재현하면서도, 당시 PC패널처럼 '핫'한 요즘 기술의 UHPC(Ultra-High Performance Concrete) 패널을 사용하는 식으로 재해석하기도 했습니다. 옛 모습 그대로를 재현하는 게 보존일 때도 있지만, 옛 느낌을 현대에 맞게 살려내는 게 보존이기도 하니까요.

앞으로 더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가기 위해 신축보존된 김중업관은, 한동안 쟁점이었던 남산 힐튼호텔 철거 논란과 대비됩니다.

남산 힐튼호텔은 생존 1세대 건축가인 김종성(88) 서울건축 명예대표 설계로 1983년 준공됐습니다. 대우그룹 부도 후 싱가포르 투자회사(CDL)에 매각됐다가 2021년 이지스자산운용과 현대건설에 팔렸는데요. 이지스와 현대건설이 건물을 모두 허물고 2027년까지 오피스와 상업시설을 건립할 것으로 알려지자 건축계가 발칵 뒤집힌 겁니다.

설계자인 김종성 대표가 직접 나서서 1층 메인 로비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살리면서도 이에 대한 반대급부 차원으로 서울시가 용적률 완화 등 혜택을 부여해 개발 이익을 실현할 방안을 제안·호소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호텔 부지는 기존보다 2배가량 높은 최고 38층 오피스·쇼핑몰·호텔 건물로 재개발될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개발처 측은 1층 메인 로비를 최대한 보전하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얼마큼 지켜질지는 두고 볼 일이긴 합니다.

전쟁 직후 폐허가 된 한국을 재건한 한강의 기적은 세계무대에서 여러 개발도상국의 본보기가 되고 있지만, 선진국 대열에 올라서도 문화적 자산으로서의 건축의 가치는 기적의 주역이었던 건설과 개발 이익에 가려질 때가 많습니다.

서울을 세계 5대 도시로 발전시키려는 정책적 열망으로 멋진 건축물을 지으려는 설계공모가 한창인 이면엔, '랜드마크' 따라 오르는 부동산 가격과 '제2벼락부자'를 꿈꾸는 투자(기)가 난무한 현실도 생각해볼 점입니다. 또 다른 60년 후 '부동산 백서'는 어떤 이야기로 채워질까요.

sabi@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