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도 못 찾는 '아파트 작명' 서울시-조합 머리 맞댄다
4월 '알기 쉽고 부르기 쉬운 아파트 이름' 공청회 열기로
외국어 뒤섞이고 지역 파악도 어려워…연내 권고안 마련
- 전준우 기자
(서울=뉴스1) 전준우 기자 = 우리말과 외국어가 뒤섞인 길고 복잡한 아파트 이름을 개선하기 위해 서울시와 재건축·재개발 조합이 머리를 맞댄다.
2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는 이달 중 조합 관계자들과 공청회를 열고 알기 쉽고 부르기 쉬운 아파트 이름을 만들기 위한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지난 1월 전문가 토론회에 이어 이번에는 아파트 이름을 정하는 조합 관계자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아파트의 이름은 과거 '압구정현대', '잠실주공5단지', '여의도시범' 등 지역명과 건설사 이름이 결합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아파트 재건축이 본격화되던 2000년대 들어 '캐슬', '래미안', 'e편한세상', '자이' 등 아파트 상표가 생겨났고 단지 이름에도 브랜드명이 붙기 시작하면서 이름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아크로', '디에이치', '써밋' 등 하이엔드(최고급) 브랜드까지 생겨나 아파트 이름은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영어뿐 아니라 이탈리아어, 독일어 등 여러 나라말을 조합한 아파트 이름도 있다. 이탈리아어 루체(luce·빛)와 독일어 하임(heim·집)을 합친 '루체하임', 영어 그레이스(grace·우아함)와 라틴어 움(um·공간)을 결합한 '그라시움' 등이다.
전국에 있는 아파트 중 가장 이름이 긴 곳 전남 나주에 있는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 빛가람 대방엘리움 로얄카운티 1차(2차)'로 총 25자에 달한다.
동탄의 '동탄시범 다은마을 월드메르디앙 반도 유보라'도 19자의 긴 아파트 이름이 붙여졌다.
서울에서도 옛 개포주공1단지의 새 이름이 12자의 '디에이치 퍼스티어 아이파크'로 붙여졌다. 현대산업개발과 현대건설이 공동으로 짓다 보니 두 건설사의 브랜드(현대산업개발 아이파크, 현대건설 디에이치)가 같이 들어가면서 이름이 길어졌다.
공원 근처이면 '파크뷰', 숲이 있으면 '포레', 학군이 좋거나 학원이 많으면 '에듀', 주변에 4차로 이상 대로가 있으면 '센트럴'을 붙이는 아파트 작명 공식도 있다.
부르기도, 외우기도 어려운 아파트 이름에 "시어머니가 헷갈려서 못 찾아온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집값 상승에 유리하도록 지역의 랜드마크를 아파트명에 붙이면서 아파트 이름만으로 지역이나 위치를 구분하기도 점점 어려워진다.
'목동센트럴아이파크위브', '신목동파라곤'의 행정동은 신월동이고 '래미안목동아델리체, '목동 힐스테이트'의 행정동은 신정동으로 아파트 이름만으로는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다.
성동구에서는 행당·금호·성수·응봉·송정동까지 광범한 지역에 걸쳐 아파트 이름에 '서울숲'이 등장하는가 하면, 마포·은평·서대문구에서는 'DMC'가 붙은 아파트가 줄을 잇는다.
마포구 아현뉴타운 일대도 아파트 이름에 아현동을 빼고 '마포'를 넣는게 한 때 유행하기도 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아파트 이름을 짓는데 특별한 기준은 없다"며 "어떻게 하면 집값 상승에 유리할지가 주된 고민일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들도 복잡한 아파트 이름을 개선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해 말 시민 100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아파트 이름이 어렵고 비슷해서 방문 시 헷갈렸다'는 응답이 74%에 달했다.
시는 '알기 쉬운 아파트 이름 짓기'를 연중 캠페인으로 진행한 뒤 연말쯤 권고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재건축·재개발을 추진 중인 서울 아파트 600여 곳에 적용할 수 있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아파트 이름을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쉽고 간결하게 짓자고 안내·권유하는 차원"이라며 "공청회 등 연중 캠페인을 통해 시민 공감대를 형성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junoo568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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