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그만]④공정마다 다른 건설현장 '일률규제'…업체·근로자 타성도 '한몫'
올해 9월까지 건설업 사망자 253명…중대재해법 시행 후 '하루 1명꼴'
처벌 위주 적용·관행 등도 영향…"법이 오히려 사고 유발" 지적도
- 김진 기자
(서울=뉴스1) 김진 기자 = ·
# 지난달 말 경기도의 한 고속도로 공사현장에서 A건설사의 하청업체 소속 50대 노동자가 크레인 작업을 하던 중 추락해 목숨을 잃었다. 산업안전보건 기준 규칙에 따르면 높이 2m 이상의 작업 장소에는 작업발판을 설치해야 하는데, 현장에 발판은 없었다. 안전관리자와 관리 감독관도 당시 현장에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 올해 3월 말 대구시 달성군에서는 B건설사의 공장 신축공사 현장에서 하청업체 노동자가 11m 높이 지붕층 철골보 볼트체결 작업을 하던 중 추락해 사망했다. 고소작업대를 상승시킨 다음 안전대를 걸지도 않은 채 고소작업대를 벗어나 작업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확보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되면서 사건은 재판에 넘겨졌다.
건설현장에서 작업 도중 목숨을 잃는 비극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올해 1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지만 오히려 하루에 1명꼴로 사망자 수가 늘면서 실효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산업계와 노동계, 정치권의 진통 끝에 제정된 법이 정작 비극을 예방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3분기까지 전국 산업현장에서 총 483건의 사고가 발생해 510명이 숨졌다. 사고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9건(1.8%) 감소한 반면, 사망 인원은 8명(1.6%) 늘어났다.
이 가운데 건설업은 전체의 절반을 차지하는 243건(253명)의 압도적인 피해를 기록했다. 2위인 제조업(136건·143명)의 2배에 달하는 수치로, 1월27일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247일 동안 하루 1명꼴로 목숨을 잃은 셈이다.
근로자 수와 공사금액에 따라 사업장을 분류한 수치에서도 건설업이 가장 많은 피해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 50인(억) 이상 사업장의 경우 180건의 사고가 발생해 202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건설업에서만 82명(40.5%)이 사망했다. 50인(억) 미만에서도 건설업이 169명으로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냈다.
건설업계에서 작업 중 사망사고가 반복되는 원인 중 하나로는 안전을 '비용'으로 인식하는 뿌리깊은 관행이 꼽힌다.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안전의식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공기를 맞추기 위해 인허가를 받지 않고 설계변경을 강행하는 등 이윤이 안전에 우선하는 관행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현장마다 1~2명뿐인 관리자급 인력의 부족도 비용이 얽힌 고질적인 문제로 거론된다.
실제 올해 1월 6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화정동 아파트 신축공사 붕괴 사고를 정부가 조사한 결과 '무단 공법 변경' 등에 따른 구조물 안전성 결여, 감리 부실 등이 사고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에 정부는 3월 부실시공으로 사망사고가 발생 시 조건에 따라 시공사에 등록말소 처분을 내리는 '원·투 스트라이크아웃제' 도입을 발표하기도 했다.
한편에서는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처벌에 초점을 맞춘 중대재해법의 본질적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발주→시공→설계→감리→근로자'로 이어지는 복잡한 건설현장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 채 경영책임자의 광범위한 의무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데다, 사후 조사 과정이 '처벌 요건' 부합 여부에 집중되는 만큼 반복적인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박상진 중앙N남부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건설현장에서는 하청이나 도급 등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나타나는 문제점이 있는데, 중대재해법에은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안전조치 의무를 다했느냐가 핵심"이라며 "과실 책임을 너무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어 위헌이라는 지적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법 시행 이후 건설현장 안전조치를 증명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업무가 누적됐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서류상으로 안전조치 실시 여부를 증명해야 하는 만큼 실제 현장점검보다 서류작업에 더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 상황"이라며 "법이 오히려 사고를 유발시키는 환경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도 "처벌을 피하기 위해 건설사별로 과도한 안전관리 비용과 재원이 투입되고, 이로 인해 정작 공사품질이나 인력관리 등 다른 부분에 소홀해지는 경향이 없지 않다"고 토로했다.
시행 10개월을 맞은 중대재해법의 한계가 조명되는 만큼 정치권의 법 개정 논의가 처벌 강화 대신 '실효성 재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최 교수는 "근본적인 사고 예방을 위해서는 경영책임자에 대한 신체의 구속이 아닌, 징벌적 손해배상 등을 통해 그들이 (공사현장에서) 얻을 수 있는 이윤을 제한시키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안전조치를 하지 않으면 손해'라는 인식이 생겨야 현장의 문화부터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추가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또 다른 건설업계 관계자는 "현행법 취지가 처벌에 집중돼 실질적으로 근로자 안전 개선에 도움이 되었는지는 의문"이라며 "처벌 강화보다는 공사기한 연장 등 실질적 개선방안을 포함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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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1월27일 발효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0개월째, 안전 관리를 철저히 하기 위해 사업주에게 더 큰 책임을 묻고 처벌을 강화했지만 노동 현장의 사정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일터에서 죽음이 끊이질 않는다. 중대법 시행 후 9월말까지 433건의 중대재해로 446명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시행 전과 매한가지다. 중대법 그물망도 빠져나가는 구멍이 여전히 큰 까닭일까. 현행 중대법 만으로 막을 수 없는 사각지대를 조명하기 위해 노동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정책적 한계를 6차례에 걸쳐 진단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