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규 전 통일부 장관 "김정은, 내년 트럼프 귀환하면 제일 먼저 축하할 것"
[인터뷰] "내년 북미 모두 대화 관심 없어…韓, 중러와도 관계 도모해야"
- 서재준 북한전문기자, 양은하 기자
(서울=뉴스1) 서재준 북한전문기자 양은하 기자 = 박재규 경남대 총장은 북한이 내년에도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를 상대로 대화의 모멘텀을 만들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대신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귀환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을 지낸 박 총장은 내년 11월에 있을 미국 대선을 국제 정세에 영향을 줄 중대 변수로 꼽으며 이같이 말했다. 박 총장은 김 총비서가 "트럼프의 당선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빠르게 발신하는 국가 지도자들 중의 한 명에 포함될 수도 있다"고 예상하기도 했다.
박 총장은 현 행정부와 정세하에서는 내년에도 미국과 북한은 대화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바이든 미 행정부는 대선을 준비하면서 한미 공조를 바탕으로 한반도 '관리 모드'를 유지하고, 북한 역시 한미의 대북 강경 기조에 '강 대 강' 맞대응 전략을 펴면서 중국, 러시아와의 3각 밀착에 공을 들일 것으로 예상했다.
박 총장은 다만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의 강화는 "한국의 대중, 대러, 대북 전략적 유연성 활용 공간 축소는 물론이고 남북관계 진전을 제약시킨다"면서 북한의 핵무력 고도화에 억지력 강화로 대응하면서 동시에 중국, 러시아와도 우호 관계를 도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에 따른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고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시스템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지난 18일 서울 삼청동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에서 진행된 박 총장과의 인터뷰 일문일답.
-올해 북한이 보인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
▶ 남북 관계, 미북 관계는 차단하고 신냉전 구조를 활용하는 전략으로 중러와 전방위적 협력을 강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지난 30년간의 비핵화 협상을 통한 대미 관계 개선이라는 방향 축을 전환한 것 같다. 특히 러시아와의 군사적 협력을 통해 제재와 핵무력 강화의 돌파구를 마련한 것은 북한 대외정책의 핵심이었던 미국 중심의 외교에서 변화 가능성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한다 .
-한반도 및 동북아 안보 지형 변화에 대한 윤 정부 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 한국은 올해 워싱턴 선언으로 핵협의그룹(NCG)을 출범시켰고, 한미일 안보협력 체제를 구축·강화했다. 한미동맹을 주축으로 대북 핵 억지력을 강화한 것은 성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는 소홀하게 돼 한반도 문제 해결에 있어 반작용이 야기되는 아쉬움이 있었다. 남북 관계도 악화됐다. 확장억제의 신뢰도가 안보 공약의 강화나 북한에 대한 위협을 통해서 무한히 강화될 수 없다는 점을 유의해야 할 것 같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사태로 한반도에 역량을 집중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사태가 한반도 안보 환경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미국이 러-우 전쟁에 대한 적극적 개입 의사가 없고, 중동에 대한 미국의 개입 역시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아시아 지역에서의 전략적 균형을 가장 중시하고 있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큰 변화를 초래할 움직임은 없을 것 같다. 내년 국제 질서에 가장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는 11월 미국 대선 결과다.
-대선을 앞둔 내년에는 북미가 상호 대화에 관심을 보일까.
▶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대선을 앞두고 북한과 대화를 시도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미국 유권자들에게 가장 큰 이슈는 경제 문제이고 외교 문제는 상대적으로 하위에 있다. 또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 분야 관심은 미중 전략적 경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에 집중돼 있어 북한 문제는, 7차 핵실험이 아니라면 미국 행정부 내 정책 결정자들의 주목을 끌지 못할 것이다. 북한 역시 바이든 행정부를 상대로 대화의 모멘텀을 시도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대신에 북한은 트럼프의 귀환을 기대할 수도 있다.
-만일 트럼프가 재집권한다면 북한은 어떻게 움직일까.
▶김정은이 트럼프의 당선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빠르게 발신하는 국가 지도자들 중의 한명에 포함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과거의 만남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김정은은 트럼프에게 북미대화 재개를 희망한다는 제2의 '연서'(love letter)를 보낼 수 있고 여기에는 트럼프를 평양으로 초대하는 내용이 포함될 수도 있다. 트럼프 역시 김정은을 미국으로 초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회담이 성사되면 북한은 북미 하노이 회담 실패를 복기하면서 트럼프와의 목표 달성을 위한 시도를 다시 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우리 정부는 한반도 정세 포함 국제질서에서의 많은 변화에 대응해야 할 것이다. 평양과 워싱턴을 직접 연결하는 상황이 전개될 때,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 정교한 국가전략이 필요하다.
-대화에 관심이 없다면 내년도 북한의 대외 전략과 미국의 대북 스탠스는 어떻게 전망하나.
▶윤석열 정부와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관련 한미 공조가 견고하다. 이는 북한이 한미관계에 균열을 시도할 경우 성공할 가능성이 낮다는 의미다. 따라서 북한은 한미의 대북 강경 기조에 '강(强) 대 강(强)' 맞대응 전략을 지속·유지하면서, 자신의 이익과 필요에 의해 중국, 러시아와의 협력을 선택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도 내년 11월 대선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테니 북한을 상대로 의도적으로 긴장 국면을 조성하거나 적극적인 대화를 추진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 문제에 있어서는 한국과 철저하게 공조 체제를 유지하면서 '관리 모드'를 견고하게 유지할 것으로 예상한다.
-올해 북러 밀착이 두드러졌다. 내년에도 북중러 3각 밀착이 더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본적으로 한미일 협력의 대응 차원에서 북중러 연대는 추진될 것이다. 하지만 북중러 사이에는 누적된 불신이 있고 현실적인 필요에 의한 연대이기 때문에 나름 한계를 갖고 있다. 특히 북한, 러시아와 달리 중국은 지금도 북러와의 군사적 협력에 소극적이다. 북러와의 군사 협력 강화는 서방의 제재를 받는 국가 대열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라 여기는 것이다. 중국은 미국을 중심으로 서방 국가들과의 관계를 발전, 유지하는 데에 3각 밀착이 실익이 없다고 보고 중재 역할 정도를 희망하는 것 같다. 3자보다는 북중, 북러와 같이 양자 관계를 통해 한반도에서 영향력을 확보하려 들 것이다. 북한에 대해서는 중국의 영향력 하에 두기 위해 대북 경제 원조와 협력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북일 접촉설도 나온다. 일본이 북한을 움직이는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일본이 주변국의 위협을 구실로 방위력을 강화하고 확고한 한미일 안보협력 체제를 구축하면 할수록 북한의 반발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또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한 획기적인 해결 방안이 없는 한 북일 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북한이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기대하는 것은 과거 청산을 통한 일본의 경제협력인데 유엔의 대북 경제제재가 계속되는 한 일본의 대규모 대북 경제협력도 기대할 수 없다.
-내년 정부의 대북정책에 제언한다면.
▶한미일 안보협력을 유지·강화하되 실질적이고 실효적인 북핵 억제력을 구축하면서 북중러와도 호혜적 관계를 도모하여 국가안보 위험을 더욱 안정적으로 관리하도록 해야 한다. 한미일 대 북중러 갈등 구조 강화는 한국의 대중, 대러, 대북 전략적 유연성 활용 공간 축소는 물론이고, 남북관계 진전을 제약시킨다. 북중러 밀착을 통한 냉전적 대립 구조가 심화해 군사적 긴장이 초래되지 않도록 대응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군사분계선에서의 우발적 충돌 방지 등 한반도 상황을 관리하기 위한 위기 예방·관리 시스템도 마련해야 한다. 남북 직통전화와 군사 통신선 가동이 시급하다. 동시에 국제질서 변화에 따른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마련하고 미중 등과 긴밀한 협력으로 변화의 동력을 만들어 내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탈북민 강제북송 문제로 중국에 대한 접근성이 더 낮아졌다는 평가가 있다. 한중관계의 해법은 무엇인가.
▶한중 문제에 대해서는 한국의 입장을 분명하게 전달해 국익 우선의 원칙론 입장을 유지해야 한다. 한국이 조급하게 미중러 사이에서 어느 한쪽만을 선택하는 것은 위험 부담이 크다. '국익'에 기초한 일관된 메시지와 행동을 통해 미중러와의 '전략적 동반자로서 공존 가능한 국가'로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
-내년 북한의 국경 봉쇄가 더 완화될 전망이다. 북한은 경제성장과 국방력 강화 중 어디에 더 집중할 것 같나.
▶내년에도 북한이 핵무력 고도화와 군비 증강에 더욱 몰두할 수밖에 없는 대내외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예측된다. 물론 나름대로 경제발전과 민생 개선에도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제한적인 수준에서 단계적으로는 중국, 러시아와의 국경을 개방해 관광사업 재개와 경제협력의 확대도 추진할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경제난 해결은 어려울 것이다.
-올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과 정찰위성 발사에 성공했다. 내년에 주력할 무기체계는 무엇일까.
▶지난 8차 당 대회 시 제시한 국방력 강화 사업에 미진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진전시켜 나갈 것이다. 고래급(구소련 G급) 신형 잠수함과 핵잠수함 개발 관련 사항을 공개하고 잠수함에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극성 3형 실발사, 극초음속미사일 추가 개발, ICBM 정상각도 발사 및 대기권 재진입 기술 확인 등 첨단무기 분야의 기술적 진전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의 '대한민국' 표현 의도는 무엇이라고 보나.
▶'대한민국' 호칭 사용은 남한에 대한 대립각 세우기라고 본다. 김정은 체제는 '민족제일주의'에서 '국가제일주의'로 전환하고, 남북 관계를 '두 개 국가론'으로 구체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남북 관계가 악화화면서 북한은 조평통 같은 대남기구도 무력화시켰다. 하지만 남북 관계는 국가 간 외교로는 접근이 어렵다. 민족 내부 관계가 갖는 특수성 때문이다. 이를 부정하면 남북 관계에서 자기 결정권을 갖기 어려워진다. 이번 북한의 '대한민국' 호칭 사용도 남북 관계를 포괄적 '외교'의 범주에 넣으려는 항구적 전략 변화는 아닐 것이다. 그렇게 되기도 어려울 것이다.
-북한이 딸 김주애를 지속 노출하고 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주애가 중요한 군 관련 행사에 김정은과 함께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지만 아직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부족하다.
지금까지의 현상을 보면 김정은은 주애를 내세워 미래세대의 안전을 보장하고, 책임지는 지도자상을 각인시키려 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4대 세습 의지를 과시하는 측면도 엿보인다. 딸을 내세워 대내적으로는 백두혈통의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주애의 등장을 단순히 전공업무를 가진 당국자 역할을 시키기 위한 목적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현재와 같이 공개적인 행사에 동행하며 단독 사진을 찍고 최고지도자들에게만 사용하는 극존칭을 사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주애가 상징적 백두혈통으로 남을지, 그렇지 않을지 여부는 앞으로 그가 보여줄 능력과 자질, 그리고 아버지 김정은의 전략적 판단에 달려 있을 것이다.
-주애가 만일 후계자 후보군에 속해 있다면 앞으로 어떤 절차가 필요한가.
▶김정일과 김정은의 후계 구축 과정을 미뤄보면 후계자가 밟아야 하는 몇 가지 절차가 있다. 수령의 영도 계승성이 이루어지도록 당의 영도절차(후계자 공식 내정)를 밟아야 하고 당·군 지도부를 후계자 중심으로 결속하기 위한 체제 정비가 필요하다. 또 주애에 대한 대대적인 우상화 작업이 진행되어야 한다. 또 북한의 통치 이념인 주체사상을 비롯한 국가전략 노선에 대한 해설권을 가져야 하고, 대남사업에 대한 지도권도 가져야 한다.
yeh25@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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