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도 당황한 '워싱턴 셈법 vs.뉴욕 셈법'

[윤석민의 팩토리]

ⓒ AFP=뉴스1

(서울=뉴스1) 윤석민 대기자 = 미국 워싱턴DC와 뉴욕 두 도시에서 살아보니 다름을 알았다. 한쪽이 행정 수도다운 차분한 장중함이 있다면 다른 한쪽은 세계 경제의 중심다운 활기찬 화려함으로 치장돼 있다.

사용 언어도 달랐다. 단적 예가 ‘IR’이다. 워싱턴서 IR은 ‘국제관계(International Relations)’를 의미하지만 뉴욕서 IR은 ‘투자 또는 사업설명회(Investor Relations)’를 뜻한다. 예전 갓 부임했던 뉴욕에서 ‘IMF’를 맞아 인터뷰했던 한 신용평가사 인사에게 위의 말을 했더니 자신도 보스턴에서 공부해 많이 헷갈렸다고 한다. 그 인사가 지금은 코리아소사이어티 회장을 맡고 있는 토머스 번이다. IR의 양쪽 의미를 다 아는 그가 미국서 우리를 대변하니 적이 다행이다. 협상을 지칭하는 용어도 다르다. 워싱턴에서 사전적 사용 그대로 ‘네고(negotiation)’ 라 한다면 뉴욕서는 ‘바겐(bargain)’, ‘딜(deal)’이 보다 일상적이다.

그 차이는 두 도시가 수행하는 기능의 차이에서 오리라 본다. 우선 워싱턴을 주 무대로 하는 정치와 외교는 서로 접점을 찾는 기술이다. 적당한 타협(compromise)이 필요하다. 언어에 뼈가 돋쳤더라도 품격과 예의를 갖춘다.

이에 반해 국제 금융·상업의 중심 뉴욕에서 이뤄지는 협상은 제로섬(zero-sum)이 원칙이다. 내가 얻는 만큼 상대방의 몫은 줄어든다. 언어는 보다 직설적이고 공격적이다. 그쪽의 대표 주민인 월스트리트 사람들은 종종 자신들을 ‘피 냄새에 몰려드는 상어떼‘로 비유한다. 이익을 위해 상대의 약점을 파고드는 정글의 법칙이다.

그들 위쪽 어딘가 언저리에 뉴욕의 스카이라인을 뒤바꿔놓는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있다. 개발업은 세계 공통적으로 거친 일이다. 자연 업자들의 입도 우악스럽다. 월가 뱅커들은 그래도 체면치레는 따진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그 세계에서도 아주 난 인물이다. 여기에 미국 프로레슬링 WWE, 영화 카메오, 리얼리티쇼 등을 통해 연기와 쇼맨십도 다졌다. 상대를 제압하는 화술과 지략을 모두 갖춘 황금의 언변술사이다. 그의 저서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은 그러한 트럼프의 자부를 보여준다.

뉴욕 트럼프의 워싱턴 백악관 입성은 ‘두 세계의 충돌’로 이어진다. 재임 20여개월 내내 잡음의 연속이다. 야당은 물론 자당 공화당내에서도 실랑이가 일고 언론과는 사사건건 부딪힌다. 이제까지 워싱턴서 접하지 못했던 대통령의 다른 어법과 지향점이 반목을 더 부추긴다.

초기 각광받던 군과의 관계를 예 들어보자. 1기 트럼프 행정부에는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많은 군 출신이 포진해 눈길을 끌었다. ‘미국을 다시 강하고 위대하게’라는 트럼프의 슬로건과도 맞아떨어졌다. 군사학교(고교과정) 생도대장을 지낸 트럼프 대통령은 배우 출신인 로널드 레이건 다음으로 경례를 멋들어지게 잘하는 대통령이다. 하지만 그의 군인관(觀)은 자유민주주의 수호자를 자처해온 미군의 가치관과는 동 떨어진 듯하다. 이전 아프가니스탄 철군 문제를 결정하는 군 수뇌부와의 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아프간서 정작 중국이 희토류로 재미를 본다”는 말로 장성들을 경악하게 했다. 최근에는 동맹국들에 미군 주둔비용 분담금 150% 인상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 ‘우리가 용병’이냐는 군내 자조적 한탄을 자아낸다. 2년을 넘긴 현재 그의 주위에서 군출신은 거의 찾기 힘들다.

국내가 이 지경이면 국제관계는 더 나아간다. 국익을 우선시하는 외교정책에 수익성을 더하면 과거 제국주의와 진배없다. 미국 중심의 트럼프 ‘패권주의’가 설치며 이전 행정부가 쌓아온 국제질서는 흔들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손해 보지 않는 ‘공평한’ 새 질서를 만들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의 건재가 유지되는 것은 다수 열성 국민들의 지지 덕분이다. 기성 제도권을 까뭉개는 그의 화법은 시원 시원하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결과로 말한다. 과정은 중요치 않고 실적만 보는 뉴욕식 성과주의이다. 실제 미국 경제는 순항이고 일자리·실업률은 사실상 완전고용에 가까운 수준이다. 미국 민생의 척도인 휘발유가격만 보더라도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향한 그의 일침에 안정세를 보인다. 상대에 대한 윽박질이든, 포용이든 어쨌든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공약을 현실로 만들어 낸다. 여러 가지 의혹, 불만이 터져도 2020년 재선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러한 트럼프 대통령과 협상 테이블서 마주한 북한이 당혹감을 느끼는 것은 어쩜 당연하다. 하노이 2차 북미회담 결렬후 북한은 ‘워싱턴 계산법’이 이상하다고 불만을 표했다. 엄밀히 말하면 뉴욕서 잔뼈가 굵은 트럼프의 계산법이다. 한 북한 매체(조총련 조선신보)는 급기야 ‘부동산업자 출신’이라고 비아냥대기도 했다. 그렇다고 북한의 화법도 정상은 아니다. 걸핏하면 회담장을 박차고 나가는 벼랑 끝 전술이 몸에 배어있다. 서로 인내가 필요하다.

그래서 두 ‘비이성적’ 국가간의 협상은 여타 만남보다 보는 흥미가 진진하다. 공통점도 있다. 두 최고지도자 모두 회담서 ‘톱다운’ 방식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이들의 ‘통 큰 결단’에 의해 꼬인 매듭이 의외로 쉽게 풀릴 개연성이 있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진행 과정을 보면 타결은 시간의 문제로 보인다. 단 조급한 쪽이 더 많이 내놓아야 한다. 지켜보는 우리도 좀 더 느긋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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