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 54년' 한 총리, 마지막 장 남기고 탄핵소추 직면

헌정사상 초유 '대통령 권한대행 총리' 직무정지
"민생 잘 챙겨 달라" 당부 남기고 청사 빠져나가

탄핵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27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를 나서고 있다. 2024.12.27/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서울=뉴스1) 정지형 기자 = 대통령에 이어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수행하는 국무총리까지 국회 탄핵소추로 직무가 정지되는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부터 대통령이 10번 바뀌는 동안 공직에 몸을 담으며 산전수전을 모두 치른 한덕수 국무총리는 공직생활 마지막 페이지를 남기고 자신이 탄핵소추되는 사태까지 겪게 됐다.

27일 오후 5시 19분 한 총리 탄핵소추 의결서 등본이 정부서울청사에 도착하면서 한 총리는 직무가 정지됐다.

지난 1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로 한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맡게 된 지 13일 만이다.

앞서 오후 4시 36분쯤 우원식 국회의장이 총리 탄핵소추안 가결을 알린 후 의결서 등본이 한 총리가 있는 정부서울청사에서 총리실 직원에게 건네지기까지는 43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윤 대통령 탄핵소추 당시 탄핵소추안 가결부터 의결서 전달까지 2시간 24분이 걸렸던 것보다 빨랐다.

한 총리는 오후 4시 42분 약 1700자(공백 포함) 분량의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국회 결정을 존중한다"며 "혼란과 불확실성을 보태지 않기 위해 직무를 정지하고 헌법재판소의 신속하고 현명한 결정을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1970년부터 지금까지 54년간 이어졌던 공직생활을 회상하며 "1인당 국민소득이 250달러일 때 공직에 입문해 우리나라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자랑스러운 정부의 공복으로 일했다"고 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탄핵안이 가결된 27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 탄핵소추의결서 등본이 도착하고 있다. 2024.12.27/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총리 탄핵소추까지 나서게 된 결정적 원인이 된 국회 몫 헌법재판관 3명 임명 문제를 두고도 한 총리는 여야 합의가 우선이었다는 입장을 재차 나타냈다.

그는 "야당이 합리적 반론 대신 이번 정부 들어 29번째 탄핵안으로 답하신 것을 개인 거취를 떠나 이 나라 다음 세대를 위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총리님은 항상 이번이 마지막 공직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업무에 임했다"며 "헌법재판관 임명을 보류한 것도 국가 미래만을 놓고 내린 결정"이라고 했다.

한 총리는 의결서 등본이 도착하고 약 20분 뒤인 오후 5시 39분 곧바로 청사를 빠져나갔다.

무거운 표정을 한 채 청사를 나온 한 총리는 방기선 국무조정실장, 김종문 국조실 1차장, 남형기 국조실 2차장, 손영택 총리비서실장 등 간부들의 배웅을 받으며 삼청동 공관으로 향했다.

한 총리는 퇴청 전 기자들과 만나 "저는 직무가 정지되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굳건하게 작동할 것으로 믿는다"고 짤막한 소회를 남겼다.

한 총리는 간부와 직원들에게도 "굳게 마음먹고 자기 소임을 정확히 열심히 수행하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청사에서 국회 상황을 지켜본 한 총리는 오찬 등을 계기로 간부들에게 여러 차례 "규제 개혁이나 민생을 잘 챙겨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권성동 국민의힘 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0회국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을 향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탄핵소추안 의결 관련 항의하고 있다. 2024.12.27/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한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직에서 내려오면서 다음 순번인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정을 이끌게 됐다.

윤석열 정부 초대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을 지낸 최 부총리는 경제부총리에 이어 대통령 권한을 행사해야 하는 자리에 오르게 된 셈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국조실은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수행하는 부총리를 보좌하는 업무를 해나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kingkong@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