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한대행 "여야 합의 전까지 헌법재판관 임명 보류"(종합)

"권한대행의 대통령 고유 권한 행사 자제가 헌법·법률 정신"
"불가피한 권한 행사, 여야 합의가 헌정사 깨진 적 없는 관례"

시민들이 26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대국민 담화를 시청하고 있다. 2024.12.26/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서울=뉴스1) 이기림 한상희 정지형 기자 =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26일 "여야가 합의해 안을 제출할 때까지 헌법재판관 임명을 보류하겠다"고 밝혔다.

한 대행은 이날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대국민담화를 통해 "여야가 합의해 안을 제출하면 즉시 헌법재판관을 임명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 대행은 "지금 대한민국은 전에 없던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로서 우리가 이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동안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일상에 한치 흔들림이 없도록 안정된 국정 운영에 전력을 다하는 것을 제 마지막 소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러기 위해 오로지 국민만 바라보고 헌법과 법률에 따라 나라 전체의 미래를 위해 모든 사안을 판단할 방침"이라며 "오늘 국민 여러분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헌법재판관 임명 문제에 대해 제가 가진 고민을 가감 없이 말씀드리고자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한 대행은 "그동안 우리나라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이보다 큰 일이 닥쳐도 우리는 늘 넘어서고 또 넘어섰고, 그것을 가능케 한 힘 중 하나가 바로 정치의 힘이었다"며 "이념 대립으로 많은 비극을 겪은 우리나라지만 그래도 언제나 우리 곁에는 진영의 유불리를 넘어 나라 전체를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정치로 풀어야 할 일을 정치로 풀어주시는 큰 어른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만큼 왔다고 생각한다"며 "오늘 우리가 많은 갈등을 겪고 있지만 우원식 국회의장,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지명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포함한 여야 정치인들이 반드시 그런 리더십을 보여줄 것이고 또 보여줘야 한다고 저는 굳게 믿고 있다"고 말했다.

한 대행은 "대통령 권한대행은 나라가 위기를 넘길 수 있도록 안정적인 국정 운영에 전념하되, 헌법기관 임명을 포함한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 권한 행사는 자제하라는 것이 우리 헌법과 법률에 담긴 일관된 정신"이라며 "만약 불가피하게 이런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면 국민의 대표인 국회에서 여야 합의가 먼저 이뤄지는 것이 지금까지 우리 헌정사에서 단 한 번도 깨진 적 없는 관례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역시 헌재의 탄핵심판 결정에 영향을 주는 임명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헌재 결정 전에는 헌법재판관 임명을 하지 않았고 헌재 결정이 나온 뒤 임명했다"며 "이처럼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 권한을 행사하기에 앞서 여야가 합의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는 법리 해석이 엇갈리고 분열과 갈등이 극심하지만 시간을 들여 사법적 판단을 기다릴만한 여유가 없을 때 국민의 대표인 여야의 합의야말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국민의 통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 마지막 둑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 대행은 "사태의 조속한 수습과 안정된 국정 운영을 위해 시급히 해결돼야 할 중대한 사안 중 하나가 헌법재판소 재판관 충원이라는 데 이견을 가질 분은 거의 안 계실 것으로 생각한다"며 "국민이 분노하고 있는데 그냥 임명하면 되지 뭐가 문제냐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이 문제는 안타깝게도 그렇게 쉽게 답을 정할 수 없다는 것이 저의 고민"이라고 밝혔다.

이어 "헌법재판관은 헌법에 명시된 헌법기관으로서 그 역할과 책임이 막중하고, 우리 역사를 돌아볼 때 여야 합의 없이 임명된 헌법재판관은 단 한 분도 안 계셨다는 점이 그 자리의 무게를 방증한다"며 "특히나 지금은 국가의 운명과 역사를 결정하는 공정한 재판이 헌법재판관에 달려 있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헌법재판소의 구성과 헌법재판관 임명에 대해 합리적인 국민이 이견 없이 수용할 수 있는 현명한 해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 대행은 "헌법재판관 충원에 대해 여야는 불과 한 달 전까지 지금과 다른 입장을 취했고 이 순간에도 정 반대로 대립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야당은 여야 합의 없이 헌법기관 임명이라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을 행사하라고 대통령 권한대행을 압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상황이 계속되다가는 자칫 불가피한 비상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 한 대통령 권한대행은 대통령의 고유권한 행사를 자제하고 안정된 국정운영에만 전념하라는 우리 헌정 질서의 또 다른 기본 원칙마저 훼손될 우려가 있다"며 "저는 오로지 국민을 바라보며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가 미래를 위해 판단할 뿐, 개인의 거취나 영역은 하등 중요하지 않다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그동안 헌법재판관 임명 문제에 대해 여야 정치인은 물론, 좌우 언론인, 헌법학자, 정치학자 여러분의 말씀을 폭넓게 들으며 깊이 숙고해 왔다"며 "무엇보다 무겁게 느끼는 의무는 대통령 권한대행이 여야의 정치적 합의 없는 정치적 결단을 내리는 것이 과연 우리 헌정 질서에 부합하는가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런 고민에 제대로 답을 찾지 않고 결론을 내라는 말씀에 동의하기가 어렵다"며 "또한 제대로 답을 찾는 것이 반드시 오랜 시간을 요하는 일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lgir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