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도 안 나온 90분 만찬…삐걱대는 당정, 여야의정 회의론

용산 "25년 논의 불가…협의체 당정협의로 될 문제 아냐"
국힘 "열어 놓고 논의해야"…의정 갈등 장기화·공전 우려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용산 대통령실 앞 분수정원에서 국민의힘 지도부와의 만찬을 마치고 한동훈 대표, 추경호 원내대표 등과 산책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2024.9.24/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서울=뉴스1) 한상희 기자 =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를 비롯한 국민의힘 지도부 간 만찬 회동에서 의정 갈등 등 민감한 현안은 대화 테이블에 오르지 못했다. 회동이 현안 논의 없이 빈손으로 끝나면서 당정 협의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사회적 갈등을 조정·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국정운영 부담을 키운다는 비판이 높아진다.

25일 복수의 참석자들에 따르면, 전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분수정원에서 약 90분간 진행된 만찬에서는 윤 대통령의 체코 방문 성과 관련 이야기가 주로 오갔고 국정감사, 저출생 법안, 수해 등 이견이 적은 사안만 논의됐다. 의대 정원 확대 등 시급한 현안은 의제로 다뤄지지 않았다.

당초 이번 만찬에서 2025, 2026학년도 의대 증원 문제에 대한 당정 간 이견이 조율되고, 여야의정 협의체의 윤곽이 드러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상견례 성격의 의례적 만남으로 끝나면서 협의체 출범도 기약 없이 미뤄지게 됐다.

일각에서는 협의체 출범이 더 지체되면 그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2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여야의정 협의체를 제안하고, 6일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화답하면서 협의체를 꾸리기로 한 지 3주가 지났지만 실질적인 진전은 없는 상황이다.

여당 내에서는 "대통령이 계속 원전 얘기만 하는데 무슨 얘기를 하겠나.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해보라는 얘기도 없었다"는 불만이 나왔다. 한 대표는 만찬 후 정무수석에게 다른 자리를 조속한 시일 내에 만들어달라고 요청했으나, 대통령실은 아직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한 대표가 요청했던 윤 대통령과의 독대도 성사되지 않으면서 의대 정원을 포함한 중요한 의제는 논의되지 못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독대는 사실 별도로 합의할 사안"이라며 "만찬은 신임 지도부를 격려하는 자리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실은 한 대표가 당정 갈등 때마다 언론을 통해 여론전을 펼친다고 의심하고 있다.

'빈손' 만찬은 사실상 예고된 수순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윤 대통령은 전날 만찬을 앞두고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정부는 의사 증원과 함께 의료개혁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 국민들이 언제, 어디서든 걱정하지 않고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모든 힘을 쏟겠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대통령실의 입장은 확고하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뉴스1과 통화에서 "2025학년도 정원은 검토 여부를 떠나서 현실적으로 (조정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미 입시가 시작된 만큼 법령을 위반하면서까지 되돌릴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한 대표는 의료계를 설득하려면 내년 정원도 '열어 놓고 논의하겠다'는 유연한 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신지호 국민의힘 전략기획부총장은 YTN라디오에서 "의료계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내년 폭도) 논의는 가능하다고 해야 한다"며 "논의 절대 불가라고 해버리면 대화 테이블이 만들어지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여야의정 협의체는 당정이 합의해서 될 문제가 아니다"라며 "현재 의료계 내부에 전공의 복귀를 설득할 수 있는 집단이 없다"고 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증원 백지화를 요구하며 협의체 참여를 거부하는 상황이다. 그는 "의협이 협의체에 안 들어올 명분을 만드는 것"이라며 "의협 회장의 리더십이 흔들리는 등 협의체에 들어올 만한 상황이 되지 않으면서 정부 탓을 하고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이번 주 안에 여야의정 협의체 출범 시점과 의료계 단체의 참여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하지만 정부와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을 경우 협의체 출범 자체 불투명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 경우 8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전공의 이탈 사태로 인한 의료진 부족과 응급실 위기가 더 장기화될 우려가 있다.

angela0204@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