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정원' 출발선 '삐걱'…"26년 제로베이스" "전면 백지화"

대통령실 '통일된 안'→'여야의정 협의체 참여' 조건 완화
의료계 "25년 증원 조정이 참여 조건"…용산, 백지화엔 선 그어

윤석열 대통령이 4일 경기 의정부 권역응급의료센터인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을 방문, 응급의료 상황을 점검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2024.9.4/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서울=뉴스1) 한상희 정지형 기자 = 대통령실이 "이제 마무리됐다"고 못 박았던 2026학년도 의대 정원 문제를 놓고 "제로베이스에서 논의하겠다"며 '강경 기조'를 완화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의대 증원 유예안을 내놓은 가운데 대통령실에서도 긍정적인 분위기가 형성됐다.

여기에 여야와 정부가 주도적으로 협의체를 구성해 증원 폭을 논의하기로 하면서 8개월째에 접어든 의료 공백 사태가 해법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다만 의료계는 협의체 참여에 부정적인 반응이어서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7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의대 정원 증원에 관해 완강한 입장을 고수하던 대통령실에서 변화 기류가 감지된다. 한 대표의 제안을 수용하는 모양새로, 당정은 추석 연휴 응급실 위기에 대한 우려로 여론이 악화하는 상황에서 의정 갈등이 파국으로 가는 걸 막아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은 전날 "의대 정원 문제는 의료계가 합리적 안을 제시하면 언제든 제로베이스에서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제로베이스' 의미에 대해 고위 관계자는 "어떤 안이든 숫자에 구애받지 않고 의료계 안을 놓고 논의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실이 사실상 원점 재검토를 뜻하는 '제로베이스' 표현을 쓴 것은 처음이다. 의료계를 대화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해 전향적 태도를 보였다는 평가다.

큰 틀에선 "의료계가 과학적 근거를 갖고 통일된 안을 제시하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논의할 수 있다"는 기존 입장과 결을 같이 하지만, 의료계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것으로 분석된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전공의나 의대생, 의협 등 의료계에서 대표성이 인정된 그룹이 여야의정 협의체에 들어온다면 (통일된 안이 아니더라도) 합리적인 안을 제시했다고 보고 논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고위 관계자도 "의료계에서 무슨 안이라도 가져오면 같이 논의해보자는 게 제로베이스"라고 했다.

의대 정원 조정의 전제 조건을 '의료계가 통일된 안을 제시한다'에서 '의료계가 여야의정 협의체에 들어온다'로 완화하고, 2026학년도 증원 폭에 '전향적 입장'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정 브리핑에서 "과학적 근거에 의해서 합리적 수요 추계를 제시하고, 의사 증원 문제에 대해서 답을 내놓으면 저희들은 열린 마음으로 검토하겠다고 여러 번 이야기 해 왔다"고 언급한 바 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의료계가 여야의정 협의체에 참여하기로 결정만 한다면, 자신들이 선택한 전문가가 주도해서 의대 정원 증원 규모를 계산해볼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이 기존 입장에서 한 발 물러선 것은 한 대표와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비서관이 지난 5일 국회에서 비공개로 만난 것이 영향을 미쳤다. 이 자리에서 당정은 협의체를 구성하는 방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6학년도 의대 정원 증원 유예가 당정 갈등으로 비화하는 걸 차단하고 당정이 보폭을 맞춘 셈이다.

의사 부족에 따른 응급실 의료대란에 정부가 군의관을 파견하기로 한 4일 서울 양천구 목동 이대목동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 앞에서 환자가 구급차로 이송되고 있다. . 2024.9.4/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에 여야정이 모처럼 일치된 목소리를 내면서 의정 갈등 해법의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평가다. 하지만 의료 공백 사태의 완전 해결 찾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대통령실은 2025학년도 정원 전면 재검토나 백지화엔 선을 긋고 있다. 고위 관계자는 "의료계가 여야의정 협의체에 참여하지 않고, 의대 정원 증원을 0명으로 돌려야 한다는 건 논의 자체를 거부한다는 얘기"라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증원 0명은 국민들을 생각해서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대 입장을 밝혔다.

야당은 협의체 구성에는 동의하면서도 2025학년도 정원까지 열어놓고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더불어민주당 의료대란대책특위(특위)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26년 정원에만 국한하지 않고 전공의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모든 방안을 열어두고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의료계는 '2025학년도 의대 증원 백지화·원점 재검토'가 아닌 이상, 협의체에 참가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의대 교수 단체인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관계자는 "대통령실의 입장 변화는 전향적으로 평가한다"면서도 "2025학년도 의대 정원 조정이 현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어 "정부가 기준 없이 2025학년도 정원을 늘렸으니, 정부에서 그 해결책을 갖고 와야 우리도 얘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angela0204@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