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특별법' 출발도 못했는데…김진표 회고록 '정쟁' 속으로

野 "사실이라면 매우 충격적" 대통령실 "멋대로 왜곡"
해병대원 특검 등 극한 대치 속 정치권 '화약고'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4년 신년인사회에서 김진표 국회의장과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2024.1.3/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서울=뉴스1) 한상희 기자 = 여야가 연일 극한 대립을 이어가는 와중에 총선 이후 여야 협치의 유일무이한 성과물인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이 다시 정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김진표 전 국회의장이 최근 발간한 회고록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에 대해 "특정 세력에 의해 유도되고 조작된 사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밝히면서다.

여야가 해병대원 특검법으로 가파르게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김 전 의장의 발언으로 이태원 참사 문제까지 다시 쟁점으로 부상하는 모양새다.

이태원 특별법은 지난 4월29일 윤 대통령과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수회담 이후 이틀 만인 5월 1일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서로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며 전격 합의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합의는 여야 간 협치와 정치의 복원의 구체적인 첫 성과"라며 환영했고, 다음날 법안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지난 1월 민주당이 주도해 처리했으나 윤 대통령이 재의요구권을 행사해 국회로 돌려보낸지 3개월 만에 여야 합의로 재의결된 것인다.

회고록 내용이 알려지자 정치권에선 큰 파장이 일었다. 야권은 윤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했다. 박찬대 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전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전 의장의 회고록 내용이 사실이라면 매우 충격적"이라고 밝혔다.

이태원 참사 발생 시기에 민주당 원내대표였던 박홍근 의원도 가세하며 공세 수위를 끌어올렸다. 박 의원은 전날 페이스북을 통해 대통령과 김 전 의장이 나눴다는 문제의 대화 역시 생생히 전해 들어 자신의 메모장에 그대로 남아있다고 했다.

야권에선 윤 대통령과 김 전 의장의 대화 6일 뒤 국회에선 야당 주도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이 통과됐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이에 대통령실은 "국회의장을 지내신 분이 대통령에게 독대를 요청해 나눴던 이야기를 멋대로 왜곡해 세상에 알리는 것은 개탄스러운 일"이라고 정면 반박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도 전날 회고록 파문과 관련, "그런 말을 대통령이 했을 것으로 전혀 믿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여아가 정면 충돌하는 상황에서 김 전 의장이 정쟁거리를 던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미 여야 합의로 특별조사위원회를 꾸려 진상 규명을 하기로 한 상황에서 사건 초기 독대 과정에서 나온 비공개 발언을 흘리는 건 소모적인 정쟁만 유발한다는 것이다.

특조위가 159명이 숨진 참사의 진상을 차분하게 규명해야 하는데, 정치적 논리로 접근하면 필요한 논의가 실종되고 여야의 공방으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원 구성을 둘러싼 갈등, 해병대원 특검법, 전당대회 등 당 안팎 현안으로 인해 국민의힘은 아직 여당 몫 특별조사위원 추천도 마무리하지 못한 상황이다. 민주당은 특조위원을 이미 추천했고 특조위원장도 내정됐다.

결과적으로 특조위 구성이 이미 법정시한(대통령이 법안을 공포한 뒤 30일 이내, 6월 20일)을 넘긴 상황에서 이태원 특별법이 정치적 화약고에 불을 붙인다면, 국회의 강대강 대치 국면이 한층 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angela0204@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