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치 깬 건 민주당"…대통령실, 이례적 신속 입장

채상병 특검법 단독처리 뒤 정진석 직접 브리핑
'거부권' 행사 정치적 부담 사전 차단 목적도 작용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2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채상병 특검법' 본회의 통과와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4.5.2/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서울=뉴스1) 정지형 기자 =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2일 '채상병 특검법'이 야당 단독으로 처리된 뒤 빠르게 브리핑을 열고 이를 강하게 비판한 것은 협치를 깬 책임이 더불어민주당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재의요구권(법률안 거부권) 행사에 따른 정치적 부담이 커질 수 있는 상황을 사전에 막기 위한 목적도 있다.

정 실장은 이날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특검법이 민주당 주도로 강행 처리되고 약 1시간 30분 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열었다. 비서실장이 야당 주도 법안 처리 후 곧장 브리핑룸으로 내려와 입장을 표명한 것은 이례적이다.

지난해 12월 28일 국회에서 이른바 '쌍특검법'(김건희 여사·대장동 특검법)이 강행 처리된 날에는 이도운 홍보수석이 곧바로 브리핑을 열고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방침을 밝혔다. 이후 올해 1월 5일 윤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재의요구안을 재가 한 뒤 당시 이관섭 비서실장이 브리핑을 통해 거부권 행사 이유를 설명했다.

채상병 특검법은 법안 통과 직후 비서실장이 대통령 재의요구 행사 전에 입장을 밝혔다는 점에서 이전과 달랐다.

정 실장이 신속하게 나선 것은 전날만 해도 여야가 이태원 참사 특별법 수정안에 합의를 이루며 영수회담 첫 성과가 도출되는 등 협치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대통령실은 전날 여야 합의에 "환영" 뜻을 표하며 협치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기를 희망한다고 했으나 채상병 특검법으로 하루 만에 '협치 무드'가 깨지게 됐다.

정 실장이 브리핑에서 "영수회담에 이은 이태원 특별법 합의 처리로 여야 협치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높은 시점"이라거나 "협치 첫 장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이라는 대목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윤 대통령이 총선 참패 후 민심을 받들어 야당과 대화에 나섰으나 민주당이 채상병 특검법을 강행 처리해 어렵게 만든 협치 분위기를 다 깨버렸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4회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채상병특검법'(순직 해병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 추가상정 되자 본회의장을 나가고 있다. 2024.5.2/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특히 채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이 대통령실 참모로도 번지고 있는 데다 최종적으로 윤 대통령을 향할 수 있다는 점도 대통령실이 민감하게 반응한 요인으로 꼽힌다.

윤 대통령이 특검법에 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경우 민주당은 대통령이 본인을 지키기 위해 특검을 거부했다고 비판할 가능성이 크다. 당장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법안 통과 뒤 "거부권을 행사하기보다 겸허한 자세로 법을 수용하고 잘 집행되도록 하는 게 민심을 받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민주당이 채 상병의 죽음을 정쟁에 이용하고 있다는 판단도 대통령실이 사안을 심각하게 바라본 이유로 해석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법안 자체가 제대로 수사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정쟁을 하겠다는 목적성이 너무 명백해 수용이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비서실장이 직접 브리핑한 것은 채 상병의 죽음을 정쟁에 이용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의 표시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에서 만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서 수사하고 있는데 특검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것은 자기 부정"이라고 밝혔다.

kingkong@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