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쿠바 수교] 2년의 노력, 막판까지 극비…"극소수만 정보 공유"(종합)

국·과장 실무진부터 장관까지 전방위 노력 펼쳐
외교 공한 교환 뒤 5분 후 공표…설 연휴에 확정

쿠바 아바나 산 판 콘 광장에서 청년들이 K-팝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2023.11.03 ⓒ AFP=뉴스1 ⓒ News1 정지윤 기자

(서울=뉴스1) 정지형 노민호 기자 = 윤 대통령이 쿠바와 외교관계 수립 성과를 올릴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지난 2년간 극비리에 진행된 물밑 작업과 외교적 노력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15일 대통령실과 외교부 등에 따르면 현지시간으로 전날 미국 뉴욕에서 양국 주유엔대표부가 외교 공한(公翰)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대통령실은 정부 출범 이후 국가안보실과 외교부, 유관부처가 긴밀히 협업하며 다각적으로 노력한 결실이라고 했다.

지난해 한 해만 해도 외교부 장관이 쿠바 측 인사와 3차례 접촉했다고 한다. 박진 전 외교부 장관은 지난해 5월 과테말라에서 열린 카리브국가연합(ACS) 정상회의와 각료회의에 참석해 쿠바 외교차관을 만나 수교를 제안했다.

또 윤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한·카리브 고위급 포럼' 참석차 방한한 카리브 6개국 장관급 인사를 만나기도 했다. 동시에 주멕시코대사가 쿠바를 방문해 당국자와 수교 협의를 진행했으며, 국·과장급 실무진도 여러 차례 쿠바 측과 접촉하며 논의를 진전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쿠바가 북한과 '형제국'으로 긴밀한 관계인 점을 고려해 수교 작업은 마지막까지 극비리에 이뤄졌다.

양국은 뉴욕 현지시간으로 전날 오전 8시(한국시간 14일 오후 10시) 외교 공한을 교환한 뒤 정확히 5분 뒤에 공표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쿠바로서는 수교 사실이 북한에 알려지면 반발을 살 수 있는 외교적 부담을 고려해 신속한 발표가 필요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다른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뉴스1에 "합의한 시각에 같이 공지하고 언론에 공개하는 것은 다른 나라와도 같다"면서도 "이번에는 정부 내 극소수만 사전에 정보를 공유하고 보안을 지켰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국무회의에서 수교안이 비공개 안건으로 상정될 때도 외교부 장관을 제외한 국무위원 대부분이 회의에 참석하고 나서야 수교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최종적으로 수교가 결정된 것은 지난 설 연휴 기간이었고 윤 대통령은 유선으로 참모에게 해당 사실을 보고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쿠바 수교에는 인도적 지원과 문화 교류 등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난 2022년 8월 연료저장시설 폭발, 지난해 6월 폭우, 올해 초 식량난 등 쿠바에 국가적 위기가 닥쳤을 때 한국은 인도적 지원에 나서며 수교 분위기를 조성했다.

지난해 12월 쿠바에서 아바나 영화제가 열렸을 당시에는 한국영화 특별전을 여는 등 문화적 교류를 이어갔다.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가 결합한 외교 전략이 수교 수립을 낳은 동력으로 작용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성과는 단기간에 추진된 결과물이 아닌 '장기 외교전'의 성과물이라고 분석한다. 양국은 1959년 쿠바가 사회주의혁명을 성공한 이후 교류를 끊었으며 한국은 국제무대에서 쿠바와 접촉을 삼갔다.

한국이 본격적으로 수교 구상에 드라이브를 건 것은 2000년대 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수교 제안을 했고 이어 2008년 이명박 정부도 영사관계 수립을 제안한 바 있다. 박근혜 정부 때인 지난 2016년에는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이 한국 외교부 수장으로서는 처음으로 쿠바를 방문해 양국 간 외교장관회의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을 의식한 쿠바가 미온적 태도를 보이며 양국 관계는 좀처럼 진전을 보지 못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쿠바가 수교에 선뜻 응하지 못한 이유는 북한 관계 때문"이라며 "이번 수교가 역사적 흐름 속에서 대세가 누구에게 있는지 분명히 보여준다"고 했다.

kingkong@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