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살만의 '오일 머니'에 엑스포 좌절…그래도 최선을 다했다

천문학적인 투자 앞세운 사우디에 '부산 이니셔티브' 고전
치열한 유치전으로 글로벌 네트워크 자산 확보

한덕수 국무총리가 28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르 팔레 데 콩크레 디시(Le Palais des Congrés d’Issy)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BIE) 제173차 총회에서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의 부산 유치 실패가 결정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국무총리실 제공) 2023.11.29/뉴스1 ⓒ News1 이준성 기자

(파리=뉴스1) 윤수희 기자 = 2030 부산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가 '중동 오일 머니'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하고 끝내 좌절됐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접전 끝에 1차에 이어 2차 투표까지 갈 수 있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사우디 리야드는 총 165표 중 119표를 획득, 3분의 2 득표로 1차 투표에서 승리를 확정지었다. 대한민국은 단 29표만 얻었고, 이탈리아 로마는 17표에 그쳤다.

그동안 3개국 이상 후보가 있을 때 2차 투표에 가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사실상의 완패라 볼 수 있다. 정부와 민간이 힘을 합쳐 사우디를 많이 따라잡아 경합을 벌일 것이란 판세 분석 역시 빗나갔다.

이번 승패를 좌우한 가장 큰 요인은 단연 사우디의 천문학적인 '오일 머니'가 꼽힌다.

'미스터 에브리싱(Mr. Everything)'이라 불리는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는 '비전 2030' 계획에 따라 사우디의 석유 의존도를 줄이고 투자를 통해 관광 등으로 경제를 일으키는 정책을 펴왔다. 대외적으로는 왕권 강화의 반작용으로 생긴 부정적인 이미지를 쇄신하고 내부적으로는 국민의 충성심을 확보한다는 밑바탕도 깔려있다.

사우디는 2030 월드엑스포 유치를 위해 리야드에 △세계 최대 도시공원 △복합문화지구 △최첨단 도심철도망 등을 구축하고 엑스포 개최에 10조원 이상을 쓰겠다고 선언한 데 이어 저개발 국가엔 천문학적 개발 차관과 원조기금 지원을 약속했다.

그러면서 국제박람회기구(BIE) 회원국 중 상당 비중을 차지하면서 저개발 국가가 포진해있는 아프리카, 중동, 남미 등 국가 대다수가 사우디에 표를 행사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경제난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후보국의 역량이 아닌 자국의 이익을 좇았다는 것이다.

반면 전쟁 후 참혹했던 상황을 극복하고 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경험을 살려 공적개발원조(ODA) 예산을 늘리고 저개발 국가의 성장을 돕겠다는 대한민국의 제안은 막대한 오일머니라는 현실에 부딪혀 결과적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 '오일 머니'의 높은 장벽을 뼈저리게 실감했지만 정부는 엑스포 유치 과정에서 182개국을 접촉하며 형성한 글로벌 네트워크가 향후 정부와 기업의 큰 자산이 될 것이라 보고 있다.

유치위원회에 따르면 정·재계 인사가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해 세계를 누빈 거리는 지구 495바퀴에 달하고, 교섭 대상은 3472명에 이른다. 윤석열 대통령은 1년6개월 동안 총 150개국에 지지를 호소하는 강행군을 펼쳤고, 한덕수 국무총리도 덴마크, 크로아티아, 그리스 등 25개국을 돌아다니며 각국 정상 74명 등 총 203명을 만났다.

이를 통해 정부는 수많은 정상 혹은 정상급 인사들과 양자회담을 하며 친분을 쌓았고 내년으로 예정된 '한-아프리카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 가능성을 높였다. 기업의 경우 평소 비즈니스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았던 아프리카 등 저개발 국가를 상대하며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유치위 관계자는 "투표 결과 엑스포 유치가 무산된 것은 가슴 아프지만, 과거에도 주요 국제 대회와 행사는 여러차례 재도전 끝에 성사된 경우가 많고, 장기적으로 보면 그러한 시도과정 자체가 외교의 지평을 넓혀왔다"고 했다.

부산시는 2035년 부산세계박람회 유치에 대해 재도전 검토 의사를 밝힌 만큼, 그동안 축적된 외교적 자산과 유치 경험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ys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