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한영, 인류미래 위해 기여할 때"…영국 의회서 영어 연설

한국 정상 2번째 영국 의회 연설…"수교 140주년…양국 관계 새롭게 도약"
FTA 개선 협상…"공급망, 디지털, 무역 협력 기반 다져 나갈 것"

윤석열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오후 국빈 방문 중인 영국 런던에서 의회를 방문해 영어 연설을 하고 있다. 2023.11.22/뉴스1 ⓒ 로이터=뉴스1 ⓒ News1 정지형 기자

(런던=뉴스1) 나연준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영국 의회에서 한국과 영국이 "인류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기여할 때"라고 강조하고, 양국의 협력 지평을 다방면에서 대폭 확장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영국 런던의 영국의회에서 '도전을 기회로 바꿔줄 양국의 우정'(A friendship to turn our challenges to pure opportunity)이라는 제목으로 영어 연설에 나섰다. 이는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구절을 응용해 인용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약 15분간 진행된 이날 연설을 통해 한영 관계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습을 압축적으로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영국이 근현대 세계사의 개척자로서 자유민주주의의 주춧돌을 놓고, 시장경제 질서를 꽃 피웠다고 평가했다. 영국의 의회민주주의 확립이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고, 영국이 주도한 산업혁명을 통해 인류가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뤄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영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자본주의를 선도하고 전 세계에 전파함으로써, 인류의 자유와 인권 신장, 그리고 비약적인 성장과 번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며 "이러한 위대한 영국을 이끌어 온 핵심이 바로 영국 의회"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영국과 한국의 과거 관계도 되돌아봤다. 1883년 수호통상조약 체결, 어니스트 베델 기자가 1904년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고 한국 독립에 앞장섰던 점, 세브란스 병원 수의학자로 한국에 온 프랭크 스코필드 선교사가 독립운동을 하며 장학회를 설립하고 어려운 이들을 보살폈던 점 등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6·25 전쟁 당시 영국의 지원에 대한 고마움도 전했다. 영국은 한국전쟁 당시 세계에서 2번째로 많은 8만명의 군대를 파병했고, 1000명이 넘는 영국 청년들이 목숨을 바쳤다.

윤 대통령은 "1950년 영국은 대한민국의 자유를 수호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며 "영국군의 숭고한 희생은 한국인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현장을 찾은 6·25전쟁 참전용사이자 대한민국 명예 보훈장관인 콜린 태커리씨에게 감사와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한국전쟁 이후 한국 재건 과정에서 영국의 도움도 언급했다. 영국은 유엔한국재건단(UNKRA)에 2번째로 많은 2684만달러를 출연했고 울산 조선소, 고리원자력발전소, 울산공대 설립 등을 지원해 한국이 신흥공업 국가의 기틀을 다지는 데 기여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영국을 비롯한 자유세계의 도움에 힘입어 대한민국은 기적과도 같은 성공 신화를 써내려 왔다"며 "최빈국이었던 나라가 반도체, 디지털 기술, 문화 콘텐츠를 선도하는 경제강국, 문화강국이 됐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양국 수교 140주년을 맞이한 올해, 한영 관계는 새롭게 도약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양국 사이 정보 공유, 사이버 안보 체계가 새롭게 구축되고 있고,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위협, 가상화폐 탈취, 기술 해킹 등에 대해 공조를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이번 국빈 방문을 계기로 한국과 영국의 FTA 개선 협상을 개시, 공급망과 디지털, 무역의 협력 기반을 다져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양국의 협력 지평은 디지털·AI·사이버 안보·원전·방산·바이오·우주·반도체·해상풍력·청정에너지·해양 분야 등으로 크게 확장돼 나갈 것"이라며 영국 의회 차원의 관심과 지원을 당부했다.

윤 대통령은 한국과 영국이 지정학적 리스크, 공급망, 기후 대응, 디지털 분야 격차 등 새로운 도전과제에 긴밀히 연대해 함께 응전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평화는 혼자 지켜낼 수 없다"며 "한국은 영국, 그리고 국제사회와 연대해 불법적인 침략과 도발에 맞서 싸우며 국제규범과 국제질서를 수호해 나갈 것이다. 한국과 영국은 함께 인도·태평양 지역의 정치적 안보와 경제안보를 튼튼히 하는 데 함께 힘을 모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양국은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AI 질서 정립을 위해서도 함께 국제사회와 소통과 협력을 견인해 나가자고 했다.

윤 대통령은 문화예술 분야에서의 협력도 강조하며 "영국이 비틀스, 퀸, 해리포터, 데이비드 베컴의 오른발을 가지고 있다면 한국엔 BTS, 블랙핑크, 오징어 게임, 그리고 손흥민의 오른발이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해리포터, 베컴과 손흥민 오른발 얘기를 할때 좌중에서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양국이 창조적 동반자로서 인류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기여할 때"라며 "국제사회의 자유, 평화, 번영을 증진하는 데 함께 힘을 모아나갈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구절을 인용해 "우리의 우정이 행복을 불러오고, 우리가 마주한 도전을 기회로 바꿔주리라"라며 연설을 마무리했다.

윤 대통령이 연설을 종료하자 참석자 전원이 기립, 약 30초간 박수를 이어갔다. 존 맥폴 영국 의회 상원의장은 윤 대통령에게 감사 인사를 한 뒤, 윤 대통령이 지난 4월 미국에서 '아메리칸 파이'를 불렀던 것을 언급하며 이날 노래를 듣지 못해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편 우리나라 정상이 영국 의회에서 영어 연설에 나선 것은 윤 대통령이 2번째다. 앞서 2013년 11월 영국을 국빈방문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영국 의회에서 영어로 연설한바 있다.

yjra@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