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개혁적' 공기업 인사 원한다

'실기론·관치인사' 논란 속 '신중모드'
하반기 원활한 국정운영 위해 서두를 듯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 제공) /뉴스1 © News1 박철중 기자

</figure>"최근에 공기업·공공기관 등에 전문성 없는 인사들을 '낙하산'으로 선임을 해서 보낸다는 얘기가 많이 들리고 있다. 국민들께도 큰 부담이 되는 것이고 다음 정부에도 부담이 되는 잘못된 일이라 생각한다"(지난해 12월 당선인 시절 창신동 쪽방촌 방문 당시)

"새 정부가 막중한 과제들을 잘 해내려면 인사가 중요하다. 각 부처 산하기관과 공공기관에 대해 앞으로 인사가 많을텐데 새 정부의 국정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3월11일 취임 후 첫 국무회의)

"관련 인사에 대한 존안(存案) 자료도 없고, 이전처럼 '측근·코드 인사'가 아닌 해당 분야의 새로운 전문가를 찾다보니 전문성은 (충족)됐는데, 사적인 일은 미처 챙기지 못한 일이 생겼다. 앞으로 인사시스템을 정비해 자료도 상시 보완하고, 시스템도 좀 더 철저히 정비해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4월24일 국내 중앙언론사 편집·보도국장단 오찬)

공기업 및 공공기관 인사가 늦어지면서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정부 출범 6개월이 다 된 현 시점에서 서둘러 인사를 매듭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청와대도 인선의 속도를 내는 듯한 분위기다.

◇ 인사 왜 늦어졌나 = 청와대 내에서도 계속 늦어지고 있는 공기업 및 공공기관장 인사와 관련해 여러가지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일각에서는 실기(失期)론을 거론한다.

취임 초 정부조직법 개편과 초대 내각 구성, 새 정부 정책 기조 및 로드맵 수립 등 시급을 다투는 의제에 공기업 등 공공기관장 인선은 현실적으로 뒤로 밀릴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공기업 인사에 대한 박 대통령의 지나친 원칙주의가 인사 지연을 가져왔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앞서 언급한 대로 박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부터 공기업 인사와 관련해 확고한 원칙을 제시했었다.

과거 정권의 전유물처럼 여겼던 공기업 등 공공기관장 인사에 '낙하산 인사', '보은 인사'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은 새 정부의 국정철학에 정통하고 전문성을 갖춰야한다는 가이드라인까지 정했다.

이같은 가이드라인은 그러나 인력풀을 제한하고 '막상 찾으려 하니 마땅한 사람이 없더라'는 얘기로 이어졌다.

초대 내각 구성 과정에서 나타난 잇단 인사실패도 족쇄가 됐다. 더 이상의 실패는 용납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확산되면서 사람을 쓰는 일에 더욱 신중을 기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대통령 비서실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청와대 인사위원회가 공기업 등 공공기관장 후보군을 3배수에서 6배수로 확대해 들여다 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볼 수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후보군이 늘면서 인사검증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 관치인사 논란 = 박 대통령의 원칙이 실전에 통했느냐 하는 질문에는 또다른 평가가 나온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만큼이나 박근혜 정부에서도 공기업 등 공공기관장 인사와 관련 잡음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치금융으로의 회귀' 논란을 불러 일으킨 금융권 인사가 대표적인 경우다.

KB금융지주 사장과 농협 금융지주 회장 자리에 전문 관료를 지낸 모피아(옛 재무부와 마피아의 합성어) 출신들이 차지하면서 '관치금융' 논란이 불거졌다.

이 와중에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은 "나쁜 관치만 있는 게 아니다. 좋은 관치도 있다"며 '관치금융'을 두둔하는 발언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엘리트 관료들의 중용은 박근혜 정부 인사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로 꼽힌다.

공공기관장 인선에서도 전문 관료들은 약진을 거듭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 에너지관리공단 이사장 등이 해당 부처에서 잔뼈가 굵은 관료들의 차지가 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에 대해 "고위 공직자 정도되면 전문성도 높게 평가되지만 사실 그 자리까지 오르려면 자기관리도 철저해야 한다"며 "인사검증에 큰 하자가 없기 때문에 고위 관료 출신들이 우대를 받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관료 중시는 '관치 인사' 논란을 확대 재생산하는 결과를 낳았다. 여기에 청와대 내 '보이지 않는 손'이 전체 인사판을 흔들고 있다는 주장까지 제기되면서 청와대를 더욱 난처한 상황에 빠트렸다.

박 대통령은 공기업 등 공공기관장 인사에 관치 논란이 일자 지난 6월 초 공기업과 공공기관에서 진행 중인 인선 절차를 잠정 중단시켰다. 그리고 2개월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재개하라는 지시를 내리지 않고 있다.

지난 8·5 청와대 비서실 개편을 통해 사실상 경질된 허태열 전 비서실장과 곽상도 민정수석의 경우 공기업 등 공공기관장 인사에서의 잡음과 부작용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 공기업 인사 속도내나 = 박 대통령은 지난 6월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공기업 및 공공기관을 바라보는 속내를 드러낸 적이 있다.

이날 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공공기관은 차라리 없는 게 낫다"며 "공공기관 합리화 방안은 국민의 큰 관심사인 재정 건전성 문제와 방만한 경영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공기업 등 공공기관장에게 바라는 것도 국민의 신뢰를 얻는 공적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는 것 아니겠냐"며 "그러다 보니 사람 고르는 일에 더 공을 들이는 것 같다"고 했다.

MB(이명박 전대통령 영문표기) 정부 당시 공기업 인사에 깊이 관여했던 한 관계자는 "그때는 (인사를) 후다닥 해치웠다. 후보군이 3배수로 압축되면 삼청동 안가(안전가옥)로 불러다가 면접을 봤다. 인사검증에서 걸린 문제들에 대해 소명을 듣고 그 자리에서 사실상 결정을 내렸다"며 "그런데 이 정부에서는 도대체 누가 인사에 관여하는지, 또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조차 알수가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허태열 전 비서실장 때부터 축적된 공기업 인사파일이 박 대통령에게 보고돼 최종 낙점만 남겨두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하지만 또다른 한편에서는 김기춘 비서실장이 새로 임명되면서 공기업 및 공공기관장 인선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한다고도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비서실장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등 장기간 공석인데다 시급을 다투는 공공기관장은 인선을 서두르지 않겠냐"고 내다봤다.

또 다른 관계자도 "우선 급한 곳부터 순차적으로 인사가 날 것으로 보인다"면서 "시간에 쫓겨서 인사를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시한을 못박을 수는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하반기 경제살리기와 민생챙기기에 전념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매진하기 위해 공기업 등 공공기관장 인선을 서둘러 매조지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통상 공기업 등 공공기관장 인선은 기관장 공모 등의 절차를 거쳐 대통령의 최종 임명까지 빨라야 한달에서 한달 보름이 걸린다.

nyhu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