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건 "역류·외풍 막으려 힘썼지만 역부족"… '외압' 시사(종합)
감사원장 이임사 "직무 독립성 저버리면 영혼 파는 일" 지적
"객관적 사실 덮거나 부당한 지시 내리지 않아 다행" 언급도
돌연 사퇴의사를 밝힌 양건 감사원장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 감사원에서 열린 감사원장 이임식에 참석해 이임사를 마친 뒤 자리에 앉고 있다. 2013.8.26/뉴스1 © News1 한재호 기자
</figure>양건 감사원장은 26일 "재임 동안 (감사원) 안팎의 역류와 외풍을 막고 직무의 독립성을 한 단계 끌어올리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역부족을 절감한다"고 말했다.
양 원장은 이날 오전 삼청동 감사원 대강당에서 열린 이임식 이임사를 통해 이 같이 밝혔다.
양 원장의 이 언급은 그동안 감사원장 직무를 수행해오는 과정에서 주요 감사 업무나 원내 인사 문제 등에 대한 외부의 압력이 있었고 이것이 사퇴의 한 배경임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돼 주목된다.
양 원장은 특히 "감사 업무의 최상위 가치는 뭐니 해도 직무의 독립성, 정치적 중립성이다. 현실적 여건을 구실로 독립성을 저버린다면 감사원의 영혼을 파는 일"이라고 강조하면서 감사원 직원들을 향해 "소임을 다하지 못한 채 여러분께 맡기고 떠나게 돼 마음이 무겁다"고 말하기도 했다.
감사원은 현 정부 출범 이후 전임 이명박 정부의 핵심 국책사업이었던 4대강 살리기 사업과 관련해 전(前) 정부 때 발표됐던 것과 상반된 내용의 감사 결과를 내놔 '새 정부 눈치 보기', '정치 감사' 등의 논란을 휘말렸던 상황.
특히 지난달엔 4대강 사업의 마스터 플랜(종합계획)이 반대 여론에 밀려 폐기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선공약 사항 '한반도 대운하'의 재추진을 염두에 두고 수립됐다는 내용의 감사 결과를 발표해 야당은 물론, 여당 내부로부터도 강한 질타를 받았었다.
그러나 양 원장은 이임사에서 "그동안 어떤 경우에도 국민들께 부끄러운 일은 하지 않으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며 "특히 감사 업무 처리 과정에서 객관적으로 드러난 사실을 덮어버리거나 부당한 지시를 내리지 않았음을 스스로 다행스럽게 여긴다"고 밝혔다. 적어도 '4대강 사업 등에 대한 감사 결과를 감사원이 주도해 특정 방향으로 몰고 간 건 아니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피력한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그는 자신이 정권 교체 이후에도 사퇴하지 않고 그동안 '직(職)'을 유지해왔던 데에 대해선 "정부 교체와 상관없이 헌법이 보장한 임기 동안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그 자체가 헌법상 책무이자 중요한 가치라고 믿어왔다"며 "이 책무와 가치를 위해 여러 힘든 것들을 감내해야 한다고 다짐해왔고, 헌법학자 출신이었기에 더 그랬다"고 설명했다.
양 원장은 이명박 정부 당시인 지난 2011년 3월 4년 임기의 감사원장에 취임했다.
현 정부 출범 초 청와대를 비롯한 여권 내에선 한때 양 원장에 대한 '교체론(論)'이 불거진 바 있으나, 감사원장 임기는 헌법이 정하고 있어 본인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 한 다른 교체 수단이 없는데다, 당시 정부 고위 공직에 내정 또는 임명됐던 일부 인사들이 도덕성과 자질 시비 등을 이유로 잇달아 낙마하면서 청와대는 양 원장을 '유임'시키기로 결정했었다.
따라서 양 원장이 지난 23일 전격적으로 박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하자, 정치권 안팎에선 '청와대 등 여권 핵심부에서 양 원장의 사퇴를 종용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양 원장은 이날 이임사에서 "원장 직무의 계속적 수행에 더 이상 큰 의미를 두지 않기에 이르렀다. 이는 개인적 결단"이라며 사의 표명은 본인이 직접 결정한 것임을 밝혔다.
다만 그는 이임사 곳곳에서 자신의 직무 수행과 관련한 외압 가능성을 내비쳐 결국 그런 외압이 자신의 정상적인 감사원장 직무 수행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점을 나타낸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양 원장은 "공직을 처음 맡았을 때 품었던 푸른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떠나지만 후회는 없다"며 "이제 사사로운 삶의 세계로 가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이임식은 양 원장이 준비해온 이임사를 낭독하는 것을 끝으로 약 10분 만에 종료됐으며, 이후 양 원장은 직원들과 기념사진을 찍은 뒤 박수와 함께 꽃다발을 받고 승용차를 이용해 곧장 감사원을 떠났다.
이 과정에서 양 원장은 기자들로부터 '역부족을 절감한 부분이 구체적으로 뭐냐'는 등의 질문을 연거푸 받았지만, 일체 답변하지 않았다.
ys417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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