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곽 드러나는 '민감국가' 전말…첩보·정보전 산물일 가능성
美, 원자로 소프트웨어 韓 유출 시도 적발…외교부 '보안 문제'
원전 기술 확보 '첩보전' 과정서 문제 불거졌을 가능성
- 노민호 기자, 류정민 특파원

(서울·워싱턴=뉴스1) 노민호 기자 류정민 특파원 = 미국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국가' 명단에 올린 이유가 보안 문제인 것으로 공식 확인되며 이번 사안이 첨단 기술을 놓고 한미가 물밑에서 진행하는 치열한 첩보전의 산물일 가능성이 18일 제기된다.
외교부는 전날 미국 측과 소통한 결과 미국의 민감국가 지정은 한국의 외교 정책의 문제가 아닌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에 대한 보안 관련 문제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한국에서 제기된 '핵 무장론'이나 비상계엄 사태가 이번 사건의 핵심 원인이 아니라는 취지다.
한미 양국 모두 '보안 문제'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에너지부 감사관실이 미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었다. 이 보고서에 에너지부 산하의 아이다호 국립연구소(INL)의 도급업체 직원이 '특허 정보'에 해당하는 원자로 설계 소프트웨어를 한국으로 가져가려다 적발돼 해고된 사례가 담긴 것이다.
감사관실의 조사 결과 이 직원은 유출을 시도한 정보가 미국의 수출 통제 대상임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특히 유출 과정에서 이 직원과 '외국 정부'와의 소통이 있었다고 밝힌 점이 눈에 띈다. 보고서는 '한국'을 명시하진 않았지만 문제가 된 직원이 한국행 비행기에 타려다 적발됐다고 명시하며 '외국 정부'가 사실상 한국임을 시사했다.

감사관실의 보고서로 인해 지난해 7월 발생한 수미 테리 사건도 재조명됐다. 이는 미 중앙정보국(CIA) 대북 정보분석관 출신인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이 외국인대리인법을 위반하고 한국 정부를 위해 활동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테리 연구원은 지난 2013년부터 약 10년간 미국에 외교관 신분으로 파견된 한국 국가정보원 요원들을 만나 '비공개 정보'를 건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은 당시 국정원 요원들의 신원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사진들을 공개하며 한국 측에 불쾌감을 표출했고, 이를 통해 핵심 동맹인 한미 간에도 활발한 '첩보전'이 이뤄지고 있음이 확인되기도 했다. 이 사건 후 미국이 한국의 정보 활동을 예민하게 주시했다는 전언도 있다.
미 에너지부는 원자력·에너지·첨단기술 등을 다루는데 일부 특허 정보에는 보안을 넘어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방어·방첩'의 개념이 적용된다고 한다. 도급업체 직원의 원자로 자료 유출 시도 사건이 이번 민감국가 지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큰 이유다.
일각에선 이 사건과 유사한 다른 사건이 중첩돼 미국의 종합적인 판단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한미 양국이 지난 10일 민감국가 지정 사안이 불거진 뒤, 언론 대응을 자제하며 사건의 확대·재생산을 막으려 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을 두고도 비슷한 해석이 나온다. 한미의 '첩보전' 과정에서 상호 잘잘못을 따지기 어려운 문제가 연관돼 있거나, 서로의 첩보 능력이 공개되는 것을 우려해 암묵적으로 '쉬쉬'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민감국가 지정과 관련해 이번 주 미국을 방문하는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추가 설명을 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안 장관은 크리스 라이트 미 에너지부 장관 등을 만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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