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철수 갈등·김일성 면담…현대사 관통한 카터와 한국의 인연
박정희 전 대통령과는 갈등…첫 북핵 위기 때 전격 방북
- 노민호 기자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향년 100세를 일기로 별세한 가운데 그의 한국과의 인연이 재조명되고 있다.
카터 전 대통령은 1977년 39대 미국 대통령으로 집권했다. 취임 초기에 그는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꺼내 들면서 박정희 정권과 '불협화음'을 냈다.
카터 전 대통령은 군사 정권에서의 인권 문제를 제기하며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3만여 명에 달했던 주한미군을 5년에 걸쳐 3단계로 철군하고 전술핵무기까지 철수한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박 전 대통령은 "내정간섭"이라며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고, 베트남 전쟁에 파병하며 한미동맹에 기여한 것에 대한 정당한 대우가 아니라며 배신감을 표출하기도 했다.
추후 공개된 백악관 외교 문서에 따르면 1979년 6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군 철수와 인권 문제를 가지고 두 정상 간 거친 설전이 오가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북한의 '대남 적화 통일' 정책이 변하지 않았음을 지적하며 철수 반대 의견을 냈다.
이에 카터 전 대통령은 "주한미군 병력 규모를 동결하겠다고 약속할 수는 없다"라며 주한미군 철수 공약을 철회해달라는 박 전 대통령의 요청을 수용하지 않았다.
카터 전 대통령은 존 싱글러브 유엔사 참모장(소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주한미군 철수 결정은 '오판'이라며 노골적으로 반대하자 이를 항명으로 받아들여 그를 좌천시키기까지 하는 등 이 문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유지했다.
싱글러브 전 참모장은 미 육군 산하 대북정보담당관이었던 존 암스트롱이 위성사진을 판독해 제작한 보고서(암스트롱 보고서)를 근거로 주한미군 철수에 반대했다.
이후 미 국방부는 암스트롱 등으로 구성된 대북 정보전문가 팀을 꾸려 '업그레이드판' 암스트롱 보고서를 재차 발간하고 북한군의 규모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다는 등의 사실을 적시한다. 이를 통해 민주당 내에서도 주한미군 철수 반대론이 제기됐고 카터는 철군 계획을 보류하게 된다.
방위비 분담금 이슈도 불거졌다. 카터 전 대통령이 북한은 국민총생산(GNP)의 20%를 군사비에 쓰는 것에 비해 한국의 방위비 기여도가 낮다고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박 전 대통령은 "북한은 그렇게 할 수 있지만 우리는 할 수 없다. 그렇게 하면 한국에선 폭동이 난다"라고 받아쳤고, 설전이 오간 끝에 가까스로 봉합됐다고 한다.
카터 전 대통령 퇴임 후 한국과의 인연은 집권 때와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그는 '평화의 전도사'를 자처하면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김일성 주석과 만나는 등 한반도 긴장 국면 때마다 '해결사'로 나섰다.
카터 전 대통령의 첫 방북은 1994년 6월에 이뤄졌다. 그는 1993년 3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1차 북핵 위기가 극에 달하자 그해 6월 김일성 주석과 담판을 짓겠다며 빌 클린턴 행정부에 방북을 요청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3박 4일간 평양을 방문해 김 주석과 두 차례 면담해 긴장이 조성된 한반도 분위기를 완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클린턴 행정부는 처음에는 북한에 대한 제재가 답이라는 판단하에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카터 전 대통령이 김 주석과 △3단계 북미회담을 재개한 뒤 영변 핵시설에서 무단 인출한 핵연료봉의 재처리를 유보하고 △경수로를 제공할 경우 흑연감속로를 포기한다는 합의에 도달하면서 당시로선 협상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의 첫 사례를 남긴 셈이 됐다.
카터 전 대통령은 2010년 8월 다시 평양을 방문했다. 당시 미국인 아이잘론 말론 곰즈가 불법 입북 협의로 8년의 노동교화형을 받고 북한에서 복역 중이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석방 교섭을 통해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겠다며 방북해 곰즈의 사면까지 이끌어냈지만 당시 북한의 지도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별도로 만나지 못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2011년 세 번째로 방북한다. 그는 북핵문제 해결과 북한이 직면하고 있는 식량난 해결 등을 방북 목적으로 들었다. 당시 방북은 북측의 요청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세 번째 방북에서도 그는 김 위원장을 대면하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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