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지휘부 공백·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유사시 '결심' 어렵다
여야 합의로 한 총리 권한 '확대 행사'·국방장관 임명 거론
- 허고운 기자
(서울=뉴스1) 허고운 기자 = 12·3 비상계엄 사태의 여파로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은 물론 국방부 장관과 군 주요 보직이 '대행(대리)'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군 통수권은 법적으로 정상 행사가 가능하지만 유사시 '책임 있는 결정'이 신속하게 내려지기 어렵다는 우려는 지속되고 있다.
우리 군은 합동참모본부 의장이 계엄 사태에 연루되지 않아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데다 직무대리들이 각자의 역할에 충실히 임하고 있어 군 본연의 임무 수행엔 지장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문제는 '특수한 상황'이 전개됐을 때도 정상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할지 여부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19일 정례브리핑에서 "직무대리자들이 해당 부대에서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라며 "해당 부대들이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있는 것은 사실이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국방부 또는 군 차원의 검토나 조치도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군 통수권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14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됨에 따라 한덕수 국무총리가 넘겨받아 공백은 발생하지 않은 상태다. 모든 국방·안보 관련 보고도 대상이 한 총리로 바뀌어 기존처럼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국무총리의 군 통수권 행사 대행은 2004년과 2016년에도 있었기에 정부와 군 차원의 경험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번에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물러나면서 김선호 차관이 장관 직무대행을 맡고 있다.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 모두 '대행 체제'로 운영되는 건 초유의 일이다. 여기에 계엄사령관을 맡았던 박안수 육군참모총장,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 곽종근 특수전사령관,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도 직무가 정지돼 있다.
전문가들은 직선제로 선출돼 민주적 정당성을 갖는 대통령이 아닌 임명직인 한 총리가 국군 통수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기에는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다고 평가하고 있다. 한 총리는 본인이 야당으로부터 탄핵 압박을 받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합참 공보실장을 지낸 엄효식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총장은 "통수권자인 대통령과 위임권자인 장관이 모두 대행체제라서 정책 결정과 명령이 한시적으로 유지는 되나, 권위와 무게감은 차이가 있다"라며 "기존의 상태를 유지하는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높고 새로운 지시나 정책은 제한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엄 사무총장은 이어 "대행체제가 기존 상황을 유지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지만,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일사불란한 지휘체계 유지가 제한될 가능성이 있다"라며 "'큰일'이 발생했을 경우 권한대행이 대통령과 같은 수준의 책임을 질 수 있는 결정을 내리는 건 사전적으로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론 쉽지 않아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는 △신속한 헌법재판소 판결을 통한 상황정리 또는 조기 대선 △국가안보실과 국방부 등 인사 정상화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에 대한 여야 합의 구축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러면서 "대행체제는 최단기화하는 게 바람직하고, 공석 직위에 대한 신속한 인사가 필요하다"라며 "군심이 흔들리지 않도록 세심한 정책 배려·관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다만 군 내부에선 '대행 체제'가 장기화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차기 국방부 장관으로 지명된 최병혁 주사우디아라비아대사가 장관직을 고사한 뒤 새로운 후보자를 찾는 작업이 사실상 중단된 데다, 직무정지된 사령관들의 정식 인사 조치가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군의 한 관계자는 "판결이 나오지 않더라도 기소 단계에서 공소장에서 사유가 나와야 보직 해임을 금방 할 수 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라며 "장관은 물론 육군참모총장을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 임명하는 건 문제가 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여야가 동의할 수 있는 인물을 합의해 국방부 장관을 단기간에 '원포인트 인사'로 임명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군 출신이 아닌 민간인을 발탁하고, 국방부 장관의 역할을 축소해야 한다는 여론도 형성 중이다. 국방부 장관은 예산·행정 등을 주로 담당하고, 군사 작전 사안은 합참의장과 각 군 총장이 이끌자는 것이다.
현행법상 국방부 장관은 대통령의 군정권과 군령권을 모두 보좌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합참의장은 군령권을, 각 군 참모총장은 군정권을 위임받아 행사한다. 군정권은 군사 조직관리를 위한 행정 업무를 지휘하는 권한, 군령권은 실제 병력을 움직여 작전을 지휘하는 권한을 가리킨다.
김대영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연구위원은 "장관의 군령권을 이제 없애고 합참의장이 갖고 있는 게 견제와 균형의 논리에선 맞는 것 같다"라며 "이번에 문제가 된 정보사, 방첩사, 수방사 등의 체계를 개편하는 등 '제2의 건군' 수준의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또 "연평도 포격, 강릉 무장공비 침투 등 북한의 주요 도발 때도 우리가 계엄을 발동한 적이 없다"라며 "계엄 제도를 없앨 순 없겠지만 발동 요건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육군사관학교 중심의 군 조직 문화를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번 비상계엄과 연관된 국방부 장관, 육군총장, 사령관들은 물론 계엄 모의의 핵심 인물로 의심받는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도 육사 출신이다.
군의 한 소식통은 "사조직은 없다는 게 국방부 공식 입장이지만 '특정 보직엔 어디 출신을 앉히고, 같은 출신은 갈라놓아야 하느냐'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라며 "다만 장관 직무대리가 업무를 정상 수행하고 있고 합참의장과 전후방 군단 등은 모두 평소처럼 있기 때문에 유사시 대비태세엔 문제가 전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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