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고지 사수 목숨 바친 이성덕 중위…12월의 6·25전쟁영웅

 고(故) 이성덕 육군 중위 흉상. (국가보훈부 제공)
고(故) 이성덕 육군 중위 흉상. (국가보훈부 제공)

(서울=뉴스1) 박응진 기자 = 국가보훈부는 한국전쟁(6·25전쟁) 당시 강원도 철원군 백마고지에서 수차례 적의 공격을 막아낸 고(故) 이성덕 육군 중위(당시 소위)를 '2024년 12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고 29일 밝혔다.

보훈부에 따르면 1929년 1월 출생한 이 중위는 육군갑종사관후보생 제9기로 1952년 1월 5일 육군소위로 임관, 국군 제9사단 제30연대 제3대대에 배속돼 제11중대 소대장으로 복무했다.

1952년 10월 6일 백마고지(395고지)를 지키던 제30연대는 다음날까지 중공군의 공격을 4차례나 막아냈다. 395고지는 전략적 요충지이자 물자 보급로였다.

이 중위는 중공군이 395고지로 남하하기 위해 반드시 건너야 하는 395고지의 북쪽 전초진지인 화랑고지를 지키고 있었다. 중공군은 화랑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대규모 병력을 집중시켰으나, 이 중위가 소속된 11중대는 중공군의 거듭된 공격을 막아냈다.

중공군은 후퇴하던 일부 병력을 화랑고지 공격에 투입하며 10월 7일부터 다시 공격에 나섰다. 이에 11중대는 포위됐고, 이 중위는 소대원들을 독려하며 적의 공격을 막던 중 머리에 포탄 파편을 맞아 전사했다.

이후로도 일진일퇴의 치열한 전투가 이어지면서 한때 화랑고지를 포함해 395고지를 적에게 내주기도 했으나, 제28연대가 10월 15일 395고지를 되찾은 데 이어 제29연대가 화랑고지 선상의 전초진지를 확보하면서 백마고지 전투에서 승리했다.

백마고지 전투는 열흘 동안 12번에 걸친 공방전이 벌어지고, 고지 주인이 7번이나 바뀔 만큼 6·25전쟁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 중 하나로 기록돼 있다.

전투 후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없이 돌가루와 흙더미만 남아있는 모습이 마치 백마가 누워있는 모습과 흡사해 백마고지로 불리게 됐다.

정부는 이 전투에서 활약한 이 중위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계급 특진을 비롯해 을지무공훈장(1952년)과 화랑무공훈장(1954년)을 추서했다.

pej86@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