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 장군' 김홍일의 생애와 업적…13일 서울서 국제학술회의

김홍일장군기념사업회 주최…미국 거주 유족도 초청

2023년 9월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이북5도청에서 열린 제43주기 고 김홍일 장군 추도식. (국가보훈부 제공) 2023.9.22/뉴스1

(서울=뉴스1) 허고운 기자 = 독립유공자이자 한국전쟁(6·25전쟁) 영웅인 김홍일 장군의 업적을 조명하기 위한 국제학술회의가 오는 13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다.

7일 김홍일장군기념사업회에 따르면 '오성 장군 김홍일의 생애와 업적'을 주제로 한 이번 학술회의에는 독립기념관,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육군사관학교 등의 연구자 및 전문가들이 참석한다.

특히 이번 회의에는 김홍일장군기념사업회 설립을 주도하고 제반 비용을 모두 후원한 백범 김구 선생의 손녀 사위인 빙그레 김호연 회장의 초청으로, 현재 미국에 거주 중인 김 장군의 3남 김덕재 씨와 그의 자녀들도 참석한다.

사업회는 "오성 장군의 연원은 일제강점기 당시 중국군의 2성과 해방 이후 한국군의 3성을 합한 별의 수에도 있지만, 국가가 가장 어려운 시기 구국의 투혼을 발휘한 김홍일 장군의 공이 원수(元帥)로 임하기에도 부족함이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회의는 1부 '독립운동과 세계대전의 현장에서'와 2부 '6·25전쟁 위기의 극복과 민주화를 위한 여정'으로 나눠 진행한다.

김 장군은 1898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였던 1918년 9월 황해도 경신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 학생비밀결사 사건 이후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폈다.

특히 그는 김구 선생과 함께 활동하며 1932년 1월 이봉창 의사의 일본 도쿄 '일왕 폭탄 투척' 의거, 1932년 4월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의거 등에 사용할 폭탄을 제조·지원했다.

김 장군은 1944년 민족혁명당 집행위원에 이어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부 차장 겸 광복군 총사령부 참모장으로 부임, 한미 합작으로 국내 상륙작전을 준비하던 중 1945년 8월 광복을 맞았다.

이후 김 장군은 우리 국군 창설 과정에 참여했으며, 육군사관학교장, 육군종합학교 총장 등을 지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 뒤엔 시흥지구 전투사령관으로서 6일 간에 걸친 한강방어선 전투를 통해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했고, 육군 제1군단장으로서 기계·안정전투를 비롯해 낙동강 방어선 사수에 공을 세웠다.

1951년 중장으로 예편한 그는 주대만대사, 외무부 장관, 국회의원, 광복회장 등으로 활동했으며, 특히 국회의원 시절엔 박정희 정부의 '3선 개헌' 반대 등 민주주의 확립에도 힘썼다. 김 장군은 1980년 8월8일 향년 83세의 일기로 서거했다.

김홍일장군기념사업회는 올해 2월 정식 발족했고, 8월에 첫 추모식을 거행한 데 이어 이번에 첫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하는 등 김 장군의 업적과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활동을 지속 전개하고 있다.

hgo@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