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24시간 NLL 지키는 '유령' 함대…'군집 무인수상정' 첫 시연

'군집 자율운항 알고리즘' 활용…北 공기부양상륙정 대응해 감시·정찰·전투 업무
국과연 "'자폭형 무인수상정' 활용 가능성도"

"육상원격통제소에서 사격을 승인하겠습니다. 사격 지시!"

(진해=뉴스1) 임여익 기자 = 지난 7일 오후 2시 30분쯤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 해군사관학교 앞바다. 오전에 비가 잠깐 내린 탓에 하늘은 흐렸지만 바다는 파도 하나 없이 잔잔했다. 지휘관의 명령이 떨어지고 30초가 지나자 우리 군 무인수상정에서 가상의 적군 함정에 대한 사격이 시작됐다. 약 15분간의 사격 끝에 적 함정 5대는 모두 침몰했다.

이날 국방과학연구소(ADD)는 진해에서 '군집 무인수상정' 운용기술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우리 군 무인수상정 10척이 북한의 공기부양상륙정 5척을 상대로 방호 전투를 수행하는 상황을 가정한 실해역 시연이 약 40분간 진행됐다.

무인수상정(Unmanned Surface Vehicle·USV)이란 해상에서의 감시·정찰·전투 등 다양한 임무를 사람 없이 수행하는 함정을 말한다. 2022년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크림반도 공습 당시 큰 활약을 보이며 미래 전장의 '게임체인저'로 불리고 있다.

지난 7일 진해 해군사관학교 앞바다에서 '군집 무인수상정' 운용 시연이 열렸다. (국방과학연구소 제공)

시연이 시작되자 길이 6.5m 폭 2m의 무인수상정 10대가 20노트의 속도(시속 37km)로 진해 해군기지사령부에서 서도 쪽으로 움직였다. '리더' 함정 1대가 선두에 서고 '멤버' 함정 9대가 3열 종대로 그 뒤를 따르는 형태였다. 모든 함정 후미에서는 태극기가 바닷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무인수상정 10대는 기동 3분 만에 서도 섬에 도착해 '군집 자율운항 알고리즘' 기술을 바탕으로 정찰을 시작했다. 군집 자율운항 알고리즘은 레이다(RADAR), 라이다(LIDAR), 전자광학장치(EOTS) 등의 센서를 활용해 주변을 탐지하고 이를 바탕으로 전장 상황을 인식하는 기술이다.

우리 군집 무인수상정의 사격에 적 군함이 붉은 연기를 내며 침몰하고 있다. (국방과학연구소 제공)

그러던 중 적군 함정 5대가 기습적으로 나타나 서도 섬으로 침투를 시도했다. 이에 우리 무인수상정은 '군집 임무계획 알고리즘' 기술을 발동해 방호전투 임무 모듈에 돌입하고 적군을 사격할 수 있는 위치로 이동했다. 무인수상정에서 사격 승인을 요청하면 육상원격통제소에 있는 지휘관이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육상원격통제소에는 무인수상정 10대를 기동할 때 기준으로 2명의 지휘관이 있다. 이들은 '군집 통제용' 콘솔 모니터 4대로 전장 상황 전체를 파악하고, '개별 통제용' 콘솔 모니터 6대로 각 수상정의 상태를 확인한다.

이날 시연에서 실제 사격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사격 승인 이후 무인수상정에서 가동된 레이저 거리 측정기(LRF)의 명중률을 기준으로 적함의 침몰 여부가 판단됐다. 침몰로 판단된 적함에는 붉은 연기가 피어올랐고, 시연은 적함 5대가 모두 격침된 뒤 우리 군의 승리로 끝났다.

18일 충남 계룡대에서 개최된 '해양 유·무인 복합체계 종합발전 대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해양 유·무인 복합체계 발전 방향에 대해 토의하고 있다. 해군은 국방혁신 4.0과 연계해 해양에서의 전투력 우위 확보를 위한 해양 유·무인 복합체계 구축을 전향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해군 제공) 2022.11.18/뉴스1

해군은 지난 2022년 '네이비 씨 고스트(Navy Sea GHOST)' 구상을 발표하며 유·무인 복합전투체계를 구축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군 병력이 급감하는 상황에 대응하고, 공기부양상륙정 등 북한의 비대칭 전력에 대비해 인명피해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이에 국방과학연구소는 2019년 12월부터 약 190억 원의 예산을 들여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한화시스템 등과 협업해 '군집 무인수상정 운용기술 개발' 사업을 수행해 왔다.

이번 시연을 총괄한 서주노 국과연 수석연구원은 "무인수상정은 유인수상정에 비해 크기가 작은 동시에 24시간 정찰 임무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며 "특히 단수가 아닌 군집으로 운용할 때 데이터가 많아져 임무 정확도가 올라간다"라고 설명했다.

최근 북한의 '북방한계선(NLL) 무력화' 시도로 서해5도 인근에서 군사적 충돌 위험이 커진 상황에서도 효과적인 대응책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서 연구원은 "지금은 전방에 참수리 고속정(PKM)이 있는데 이걸 후방으로 내리고 군집 무인수상정을 전방에 올린다면 위협에 24시간 즉각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나아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군함을 상대로 효과를 본 '자폭형 무인수상정'처럼 활용될 가능성도 있다. 무인수상정은 한 대당 3~4억으로 가격이 저렴하고 속도가 빠른 것이 장점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5일 서해 접경지 일대에서 포사격 도발을 단행한 가운데 이날 오후 대구 동구 동대구역에서 시민들이 텔레비전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우리 군은 이에 상응한 맞대응 방침을 밝혔고, 서해5도 주민들은 안전을 고려해 대피하고 있다. 2024.1.5/뉴스1 ⓒ News1 공정식 기자

다만 무기를 상용화하기까지 아직 남은 과제도 많다. 우선, 알고리즘 시스템에 대한 북한의 해킹 위험성이 있다. 국과연 관계자는 "이는 과제 초기 과정부터 제기된 문제로 향후 보완 연구를 통해 해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현재 무인수상정에 적용된 센서들의 신뢰도와 정밀함을 높일 필요도 있다. 유인수상정에 탑재된 EOTS는 5억 정도인 반면, 무인수상정에 탑재된 건 그 10분의 1도 안 되는 4000만 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국과연 관계자는 "무인수상정이 아직 개발 초기 단계라 저가용 센서들을 쓰고 있다"면서 "오늘처럼 바다 환경이 좋은 날은 괜찮지만 파도가 높은 날에는 기술 정확도가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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