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해·공역 갈등 예방 '메커니즘' 마련해야 [한중일 글로벌 삼국지]
EEZ 경계 획정 끝내지 못한 한중일…ADIZ '충돌' 요소도 여전
제주도에 한중일 협력사무국(TCS) 소속 특별사무소 설치 필요
(서울=뉴스1) 백범흠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초빙교수 = 한중일 3국은 2024년 9월 현재까지도 상호 간 배타적경제수역(EEZ) 경계 획정을 끝내지 못하고 있다. 3국이 각기 주장하는 해역 경계가 중첩되며, 이해관계도 상충하기 때문이다. 한편, 한국은 1953년 7월 6.25 정전협정 체결 후 북한군의 침투를 막기 위해 서해 북방한계선(NLL) 남쪽과 동경 123도선 동쪽 해역을 해상작전구역(AO)으로 선포했다. 한국은 1953년 8월 유엔군 사령관의 NLL 설정과 함께, 유엔군의 압도적 해·공군력에 힘입어 장악하고 있던 38도선 이북과 이남 소재 북한 측 육지에 인접한 대화도, 초도, 무도, 함박도, 신도 등 다수 도서를 포기해야 했다.
2013년 7월 최윤희 해군참모총장이 방중, 우성리 중국 해군사령관을 면담했다. 우성리는 "한국 해군은 (백령도에서 불과 40km 서쪽에 위치한) 동경 124도 이서 해역에서 작전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중국이 서해 '내해화'(內海化)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발언이었다. 중국의 공세에 위기를 느낀 한국은 2015년 중국 소속 선박도 해상작전 대상에 포함시켜 AO를 해상통제구역(MCA)으로 확대·개편했다.
중국은 공세를 더 강화했다. 2018년 동경 124도를 경계로 지름 10m 관측 부이(booi)를 설치했다. 2020년에는 서해 중심부, 2022년에는 제주도 서남방 해수면 아래 암초인 이어도 인근 해상에서 인공위성을 발사했다. 2021년에는 시추용 해상플랫폼도 설치했다. 중국은 한국 해역에 거의 매일 순시선과 잠수함을 보내고, 해상 초계기를 띄우고 있다.
한일 두 나라는 1974년 유효 기간 50년의 협정을 체결해, 제주 남방 해역과 그 이남 7광구를 공동개발구역(JDZ)으로 지정했다. 1978년 발효된 이 협정은 일본의 소극성으로 인해 제대로 된 공동개발 한 번 못 해본 채 2025년 6월부로 효력 연장 또는 폐지 기로에 놓이게 된다.
문제는 협정 체결 당시와 달리 해양 경계 기준이 '(한국에 유리한) 대륙붕 연장'이 아닌 '거리'가 세를 얻고 있다는 데 있다. 게다가 중국은 7광구 일부가 중국에서 뻗어나간 대륙붕이라는 주장을 계속해 왔다.
7광구 바다는 중국 해군의 태평양 진출을 위한 항로로도 중요하다. 일본이 바라는 대로 2028년 상기 협정이 종료되면, 중국은 신해양법을 근거로 7광구 해역 일부에 대한 권리를 요구할 것이다. 중국은 이어도 해역 역시 중국에서 뻗어나간 대륙붕 해역이라고 주장한다. 중국은 중간선 기준 한국 해역 내에 위치한 이어도 일대가 한국 관할권에 속한다는 한국 논리를 배척한다.
EEZ 경계 획정과 관련, 한국은 눈앞의 이해관계 때문에 독도 해역을 한일 중간수역화 했던 신한일어업협정 체결의 오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일본은 한국이 IMF 외환위기 상황이던 1998년 1월 한일어업협정을 전격 파기했다. 일본은 자국 측 해역에서 더 이상 조업하지 못하게 될 한국 어민들의 목소리를 이용해 위기에 처해있던 한국 정부를 압박했다. 그 결과 1999년 한국에 불리한 '신한일어업협정'이 체결됐다. 독도가 한일중간수역 안에 포함됨으로써 독도 영유권마저 침해받게 됐다.
한중일 3국은 동중국해 상공 방공식별구역(ADIZ)과 관련해서도 갈등·대립하고 있다. ADIZ는 각국이 영공 방위를 위해 설정한 완충 공역이다. ADIZ는 영공이 아니기 때문에 외국 군용기의 비행이 금지되는 것은 아니지만, 해당 국가에 사전 통보하거나 진입 후 교신을 통해 갈등 발생을 예방해야 한다. 한국은 2013년 12월 자체 ADIZ 법령에 근거해 마라도와 홍도 남쪽 및 이어도 상공으로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확대·개편했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은 확장된 KADIZ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KADIZ와 CADIZ, JADIZ는 특히 동중국해 상공에서 상당 부분 중첩된다. 한중일 3국 공군기 간 충돌도 일어날 수 있다.
최근 중국 관련 해양 활동이 급증함에 따라 서해와 동중국해 등에서 원유 유출과 잠수함 사고 등 해난사고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3국 간 제도화된 협력 메커니즘 미비로 인해 해난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2018년 1월 파나마 선적 유조선 1척과 홍콩 선적 벌크선 1척이 상하이 동쪽 160해리(257km) 해상에서 충돌, 여러 명의 인명 피해와 함께 인근 해역이 배에서 흘러나온 원유로 심하게 오염됐다. 지난해 8월 중국 핵잠수함이 산둥반도 앞바다에서 침몰해, 승조원 55명이 산소공급 시스템 고장으로 인한 산소 결핍으로 사망했다.
중국은 상당한 해난구조 수요에도 구조 능력은 미약하지만, 한국은 수준급 해난구조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한국 해군의 해난구조전대는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9월 창설된 특수부대로, 해난 사고 시 최우선 투입되며 최근까지 300여 건의 작전을 성공리에 완수했다. 한국 해군은 또한 3200톤급 잠수함구조함 '청해진함'을 운용 중이며, 5600톤급 '강화도함'을 배치할 예정으로 있는 등 상당한 수준의 잠수함 구조 능력도 갖고 있다. 한편, 일본은 동중국해 등 동아시아 해저 상황에 대해 가장 정확하고 풍부한 정보를 갖고 있다.
제주도는 동중국해와 서해, 동해로 향하는 해로와 공로 모두를 통제할 수 있는 요충 중의 요충이다. 그리고 중국 상하이 지역과 일본 규슈 지역을 바닷길과 하늘길을 통해 최단거리로 연결하는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일본군은 중일 전쟁 때 모슬포(알뜨르) 비행장을 이용해 상하이와 난징을 공습했다. 태평양전쟁 말기 상하이 인근 비행장에서 이륙한 미국 B29 폭격기가 제주도 상공을 거쳐 규슈섬 키타큐슈 소재 야하타(八幡) 제철소를 폭격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무렵 미국과 소련 모두 제주도의 지정학적 가치에 주목, 제주도 점령을 계획했다.
미국 주도 단극체제가 저물고,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EU), 인도, 러시아 등이 이합집산하는 춘추전국 다극체제의 문이 열리는 등 세계가 요동치고 있다. 이러한 국제상황 아래에서 한중일 3국은 상호 간 해·공역에서의 갈등과 대립, 충돌을 막기 위해서라도 △EEZ 경계 문제 △해난 구조 문제 △ADIZ 관련 문제 등을 예방 또는 해결하고, 상호 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안정된 국제 메커니즘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한중일의 중간 제주도에 기존 한중일 3국협력사무국(TCS) 소속 특별사무소를 설치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한중일 3국으로부터 실무급 외교관 포함, 분야별로 2~3명의 전문가를 파견받아 현장 종사자간 공동 주파수 설정 등 여러 가지 중요한 문제들을 상시 협의해 나간다면, 한중일 해·공역 관련 3국 간 갈등과 대립은 줄이고 협력은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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