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강대강' 대치에도…준비해야 할 '군비통제' [박응진의 군필]

불현듯 대화 기회 생길수도, 트럼프-김정은 '브로맨스' 재점화 가능성
군비통제 대상·영역·국제활동 늘리고 군비통제정책기본법 제정해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3층의 상설전시 '북한의 군사도발실'을 찾은 관람객들이 북한의 도발 관련 유물을 살펴보고 있다. 2023.9.7/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서울=뉴스1) 박응진 기자 = 최근 중국이 미국과의 군비통제 협상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이 대만에 무기를 판매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11월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군축·비확산 대화에 나선 지 8개월 만의 일이다.

동시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전쟁 등으로 전 세계 여러 나라가 최첨단 무기를 개발하거나 수입하는 등 군 현대화 작업에 힘을 쏟고 있다.

한반도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북한은 날이 갈수록 핵·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하고 있고, 남한은 이에 맞서 한미일 3국의 안보협력 수준을 높이는 한편, 한국형 3축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최근엔 북한의 잇단 대남 오물·쓰레기 풍선 살포에 우리 군이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로 맞대응 하는 등 갈등 수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남북의 소통창구였던 군 통신선이 끊긴 지는 1년 3개월이 지났다.

그럼에도 북한 내부의 정치적 필요성 또는 북미관계의 변화로 인해 대화의 테이블은 불현듯 마련될 수 있다.

2015년 8월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로 우리 군의 대북 확성기 방송이 재개됐고, 북한은 대북 방송 중단을 이끌어내고자 남북 고위급 회담을 먼저 제의했다. 북한이 고사포를, 남한이 155㎜ 포탄을 서로를 향해 쏜 지 이틀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회담을 통해선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과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에 대한 유감 표명 등 6개 항이 합의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는 지난 18일(현지시간) 자신이 재집권할 경우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와 "잘 지낼 것"이라며 "많은 핵무기나 다른 것을 가진 누군가와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이후 트럼프 행정부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허버트 맥매스터 전 보좌관도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면 김 총비서와의 '브로맨스' 재점화를 시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 역시 관영 매체 논평을 통해 '공은 공이고 사는 사'라며 북미 관계는 전적으로 미국에 달려있다고 받아치면서도, 두 사람의 브로맨스는 부정하지 않았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중요군수공장을 현지지도하는 모습.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한반도의 대화 국면에서 주목을 받았던 군비통제가 '힘에 의한 평화'를 추구하는 윤석열 정부에선 좀처럼 관심을 못 받고 있다. 군비통제는 국가 간 군사력 전반 또는 특정 무기체계의 개발·배치·운용수준을 서로 협의해 줄이는 등 조절하는 것을 뜻한다.

싸워서 이겨야 하는 군의 특성상 군비통제 전략이 군내에서 큰 호응을 얻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남북 대치 상황이 지속되고, 이에 따라 국방예산이 늘면서 군비통제의 입지는 줄어들고 있다. 군비통제 업무 담당 인력을 봐도 독일검증단은 180여 명, 미국 국방위협감소청은 2000여 명인 데 반해 우리 국방부 직속 기관인 군비통제검증단은 30여 명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군비통제는 계속해서 준비하고 대비해야 할 과업이다. 남북한 군비통제 합의에 대비한 군사분야 사찰 관련 업무를 위해 1994년에 설립된 군비통제검증단은 군비통제 협상에 대비해 유럽 등 재래식무기 감축 조약과 사찰검증의 국제 절차를 이해·숙달하는 한편, 남북한 군비통제 절차를 마련하고 있다. 재래식무기 사찰검증 관련 현장 절차 숙달 및 사찰·피사찰 노하우 습득 목적으로 지난 2006년부터 연 2차례 연합사찰훈련도 시행 중이다.

미리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선진 사찰기법을 터득하고 여러 시나리오를 준비해놔야 실제 남북한 군비통제 협상 시 남한이 주도권을 쥘 수 있다. 이를 위해선 남북의 '강 대 강' 대치 국면 속에서도 군비통제 분야를 외면하지 말고 예산과 인력을 지원해야 한다.

나아가 군비통제의 대상과 영역을 확대하고,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위협이 되는 대량살상무기(WMD) 및 비인도적 무기를 규제하기 위한 국제적 군비통제 활동에 함께해야 한다. 오는 9월 군비통제검증단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군비통제 관련 외국군 고위 관계자들을 초청해 개최하는 국제 세미나가 주목되는 이유다.

국회에선 관련 입법을 통해 우리 정부의 전체적인 군비통제 계획을 더욱 체계적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한반도에서 전쟁 위험을 줄이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데 기여하기 위해 군비통제 정책의 수립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하는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

김태경 국회미래연구원 거버넌스그룹 부연구위원은 "향후 한반도에서 핵전쟁의 미래를 예방하기 위해서 국회가 중장기 한반도 미래전략의 관점에서 평화구축, 군비통제 의제에 대한 진지한 협의주의적 대화를 시작해야 할 시점"이라면서 "국회는 향후 기본법안과 같은 군비통제 입법 노력과 더불어 정책 심의, 감독 강화를 통해 한반도에서 안보위협을 감소하고 평화적 환경을 조성하는 중장기 미래비전을 위한 이니셔티브 확립에 나서야 한다"라고 제언했다.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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