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성기 방송' 北 다음 행동은?…'준전시 선언' '조준사격' 전례

北 확성기 방송에 반발하며 총까지 쏴
해병대·육군 사격훈련도 조만간 실시

경기 파주시 접경지역에 기존 대북 확성기가 있었던 군사 시설물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24.6.9/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서울=뉴스1) 허고운 기자 = 우리 정부가 북한의 거듭된 대남 오물풍선 살포에 대응해 최전방 지역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결정했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과거 북한이 총기 사격으로 대응했을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했다. 9·19 남북군사합의 효력 정지 이후 첫 남북 '강 대 강' 대치 상황이 우려되고 있다.

대통령실은 9일 오전 장호진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의를 개최해 이날 중 대북 확성기를 설치하고 방송을 실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우리가 취하는 조치들은 북한 정권에게는 감내하기 힘들지라도, 북한의 군과 주민들에게는 빛과 희망의 소식을 전해 줄 것"이라며 "앞으로 남북 간 긴장 고조의 책임은 전적으로 북한 측에 달려있을 것임을 분명히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북한은 지난 8일부터 이날까지 330여개의 오물풍선을 남쪽으로 날려보냈다. 북한은 남한 내 탈북민 단체들의 대북전단 살포에 '맞대응'을 이유로 지난달 28~29일과 이달 1일~2일에도 총 1000여개의 대남 오물풍선을 살포했다.

정부는 지난 4일 북한의 오물풍선 도발 대응 차원에서 남북 간 적대적 행위를 금지하는 9·19 군사합의 효력정지를 결정했고, 고정식·이동식 확성기 모두 언제든 재가동할 준비를 마친 상태다. 북한은 이미 지난해 11월 9·19 군사합의 전면 파기를 선언했다.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는 우리 정부가 '마지막 카드'로 남겨둘 것이란 전망도 있었지만, 북한이 세 차례나 오물풍선을 대규모로 살포해 우리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자 전격 실행하게 됐다. 우리 정부는 접경지에서의 군사훈련 재개도 예고한 상황이어서 북한이 이에 반발해 추가 도발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부가 북한이 오물 풍선 살포를 재개한데 대한 대응 조치로 대북 확성기를 설치하고 방송을 실시하기로 한 9일 파주 접경지역에 기존 대북 방송 확성기가 있었던 군사 시설물이 자리하고 있다. 2024.6.9/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실제로 2015년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에 대응해 우리 정부가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을 때 북한은 '준전시 상태'를 선언하며 우리 군에 강한 압박을 가했다. 당시 북한은 비무장지대(DMZ) 남방한계선 이남에서 대북 확성기를 향해 14.5㎜ 고사총과 76.2㎜ 평곡사포 3발을 발사하기도 했다.

우리 군도 북한과의 우발적인 충돌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휴일인 이날 전군에 '정상근무'를 명령한 후,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를 주관해 "북한이 직접적 도발시에는 '즉·강·끝(즉각·강력히·끝까지) 원칙'에 따라 단호하게 응징할 것"을 주문했다.

우리 군은 백령도와 연평도 등 서북도서에 배치된 해병대의 K-9 자주포 해상사격과 군사분계선 5㎞ 이내에 있는 사격장에서의 육군 포병 사격 훈련을 조만간 시행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이들 훈련은 과거엔 9·19 군사합의로 금지됐으나, 최근 9·19 군사합의 효력정지 이후 재개 준비가 진행되고 있다.

합참 관계자는 "대북 확성기 방송 준비가 다 됐다"라면서도 "군사 작전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라디오 방송 '자유의 소리'를 재송출하는 방식이 될 예정이다. 이 방송은 서울 이북 지역에서 FM 라디오로 들을 수 있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1963년 5월 1일 서해 쪽 군사분계선(MDL)에서 처음 시작됐는데, 당시 1962년 북한의 대남 확성기 방송에 대한 맞대응 조치로 이뤄졌다. 그러다 1972년 박정희 정부 당시 '7·4 남북공동성명'에 따라 중단됐으나, 1980년대 아웅산 테러 등으로 남북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확성기 방송도 재개됐다.

북한이 지난 8일부터 이틀 간 오물풍선 330여개를 살포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합동참모본부가 9일 밝혔다. 합참에 따르면, 북한은 전날부터 9일 오전 10시까지 330여개의 오물풍선을 띄웠다. 이 중 80여 개가 낙하했다. 다만 안전에 위해가 되는 물질은 없었으며, 현재 공중 떠 있는 풍선은 식별되지 않았다. 사진은 서울 중랑구 신내동 도로변에 떨어진 오물풍선 내용물. (합동참모본부 제공) 2024.6.9/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2004년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6·4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합의에 따라 남북은 확성기를 포함한 선전 수단 철거에 합의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시절 천안함 피격 도발(2010년), 목함지뢰 도발(2015년), 4차 핵실험(2016년) 등 북한의 도발에 대한 대응 조치로 일시적으로 제개된 적 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대북 방송은 지속됐다. 그러나 2018년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 개최 직전 우리 정부는 확성기 방송을 멈췄고, 4·27 판문점 선언에 따라 확성기 방송 시설 40여대에 대한 철거가 이뤄졌다.

그간 주로 방송된 내용들은 북한 체제를 비난하는 내용이나 K팝 아이돌의 노래, 기상정보, 국내외 뉴스 등으로 알려졌다.

체제 경쟁 시절에는 한국의 체제 우수성을 북한에 알리고 북한 체제의 오류를 전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고 한다. 아울러 1980~1990년대에는 건전가요나 국제 뉴스 정보도 방송됐다.

2000년대 들어서도 국내외 뉴스는 물론, 스포츠 소식, 일기예보 등 실생활과 관련된 정보들은 지속 방송됐다. 다만 주로 방송을 접하는 젊은 군인들의 '사상'을 흔들기 위한 전략으로 우리나라 아이돌들의 노래도 방송됐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번에 재개되는 대북 확성기 방송은 과거 송출 내용과 유사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확성기 방송은 설치 지점으로부터 북쪽으로 20㎞~30㎞ 지점까지 퍼진다고 전해지는데, 이 때문에 북한 주민들보다는 전방 지역 군인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

hgo@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