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 '인니 분담금' 봉합 수순…KF-21 개발 과정서 여진 전망

9년 동안 4000억 원만 납부한 인니, 2000억 원만 더 내면 된다
인니 또 안내면 어쩌나…부족한 재원은 국민 세금·KAI 자본 충당

한국형 초음속 전투기 KF-21 '보라매'. 2023.10.17/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서울=뉴스1) 박응진 기자 = 한국형 초음속 전투기 KF-21 '보라매'(인도네시아명 IF-X)의 공동 개발을 위한 인니 측 분담금 문제가 5년 만에 봉합 수순을 밟고 있다. 우리 정부가 분담금을 덜 내고 기술 이전도 덜 받겠단 인니 측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하면서다.

그러나 분담금 미납으로 여러 차례 신뢰를 저버린 인니 측이 앞으로 분담금을 제때 납부할지 미지수인데다, 인니 기술진의 KF-21 기술 유출 시도 사건의 실체도 아직 밝혀지지 않아 KF-21 개발 과정에서 여진이 계속될 걸로 전망된다.

◇9년 동안 4000억 원만 납부한 인니, 2000억 원만 더 내면 된다

8일 방위사업청에 따르면 인니 측은 KF-21 총 체계개발비 8조 1000억 원 중 20%인 약 1조 6000억 원을 사업 종료시점인 오는 2026년 6월까지 부담하는 대신 시제기 1대와 각종 기술 자료를 이전받는 조건으로 2016년 1월 공동 개발에 참여했다.

하지만 인니 측은 사업 첫해인 2016년에 분담금 500억 원을 납부한 것을 제외하면 이후 당해연도 분담금을 계획대로 납부한 적이 없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 등을 이유로 우리 측에 건넨 분담금은 지난달 말까지 약 4000억 원에 그친다.

인니 측이 분담금 납부 계획 수정을 처음 요청한 건 2018년이다. 인니 측의 분담금 납부 계획 수정을 위해 2022년부터 시작된 비용분담합의서 개정 협의가 진행된 가운데 우리 정부는 지속적으로 고위급 면담 및 서한 발송을 통해 분담금 납부를 독촉하고 인니 측의 연도별 납부계획 제시를 요구했다.

이에 지난해 말 인니 측은 2034년까지 매년 약 1000억 원을 분담하겠단 납부계획을 통보해 왔다. 이후 우리 정부는 2026년까지의 분담금 납부기간 준수가 필요하다고 통보, 인니 측은 다시 2026년까지 분담금 총 6000억 원으로의 조정을 제안했다.

방사청은 체계개발 시기 및 전력화 임박 시점에 인니 측의 분담금 미납 지속으로 인해 KF-21 개발과 전력화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해 인니 측 제안을 수용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다만 인니 측이 2034년까지 매년 약 1000억 원을 분담하기로 한 게, 어떻게 보면 올해부터 2026년까지 매년 1000억 원씩 납부하기로 한 수정안보다 우리 정부에 유리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와 관련 방사청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그 제안을) 수용하면 인니가 주겠단 걸 믿어야 하지 않느냐"라면서 "2034년까지 (분담금을) 받겠단 건 인니의 불확실성을 안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부, 인니 제안 왜 수용하나…적기 개발·외교 관계·수출 등 고려

방사청은 KF-21의 적기 개발뿐만 아니라 국방재원 부담 완화, 방산 수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인니 측 제안을 수용하는 게 국익에 부합한다고 보고 있다. 현시점에서 인니와의 공동 개발을 중단하면 우리 측 재정부담이 크게 증가할 수밖에 없다.

방사청 관계자는 "공동 개발 중단이 가장 쉽고 깔끔한 일이지만, 양산, 수출 파급효과를 봤을 때 (인니와의 관계를) 끊는 게 도움이 안 된다. 저희가 선택하지 말아야 할 선택"이라고 언급했다.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이자 방산·경제 주요 협력국인 인니와의 사이가 틀어지면 우리가 잃을 게 더 많다는 얘기다. KT-1, T-50, 잠수함 등 한국산 무기체계를 사들인 바 있는 인니 측은 자국에서 IF-X를 양산할 계획이다.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 당선인은 IF-X 공동 개발 사업에 긍정적이며, 분담금 문제가 정리되면 KF-21 수출 때 양국이 협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란 게 방사청의 설명이다. 현재 유럽과 중동 등에 있는 몇군데 국가가 KF-21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정부 관계자는 "(KF-21이) 국제공동개발이 아니면 국내용으로 전락할 위험도 있다. 우리가 금전적으로 좀 손해를 보더라도 인니를 계속 참여시켜 국제공동개발이란 큰 명분을 유지, 다른 나라에 수출할 기회를 찾아야 한다"라며 "마음에 안 든다고 잘라버리면 나중에 더 큰 걸 잃을 수도 있다"라고 강조했다.

한국형 초음속 전투기 KF-21 '보라매'. (방위사업청 제공) 2023.5.16/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프랑스산 전투기 사고 기밀 자료 유출 적발…여론 악화 부른 인니

인니 측은 분담금 납부를 차일피일 미루면서도 지난 2022년 2월 프랑스산 '라팔' 전투기 42대 구입 계약을 맺고, 지난해 6월엔 카타르로부터 중고 프랑스산 '미라주2000-5' 전투기 12대를 구입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는 인니 측이 고성능·저성능 무기체계를 혼용하는 '하이-로우 믹스'(High-Low Mix)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간섭할 수 없는 고유의 부분"이라고 방사청 관계자는 전했다. 인니 측이 고성능 무기체계로서 라팔과 KF-21을 도입하려고 하는데, 구매사업인 라팔과 관련한 재원은 80~90% 대출로 충당할 수 있지만, 연구개발사업인 KF-21 관련 재원에 대한 대출은 어렵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러나 한국에 파견된 인니 기술진 2명이 올해 초 KF-21의 기밀 자료를 USB에 담아서 유출하다가 적발되는 등의 사건도 발생해 국내 여론은 더욱 악화됐다. 일각에선 인니 측이 이번에 기술 이전을 덜 받아 가겠다고 한 것도 이미 기밀 자료를 빼돌려간 상황과 무관치 않을 것이란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방사청 관계자는 "기술 유출 사건과 분담금 이슈는 완전히 별개라고 생각한다"라며 "분담금은 길게는 6년, 짧게는 2년 전부터 협의해 왔다. 올해 발생한 USB 건을 연결시키는 건 너무 붙여서 (생각)하시는 것 같다"라고 선을 그었다.

◇인니 또 안내면 어쩌나…부족한 재원은 국민 세금·KAI 자본 충당

인니 측이 지금까지 납부한 4000억 원에 더해 앞으로 2000억 원만 더 내게 되면 인니 측의 체계개발비 부담 비중은 당초 20%에서 10% 이하로 줄어드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인니 측이 최종적으로 미납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 분담금은 1조 원에서 5000억 원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추정된다고 방사청은 설명했다. 당초 추정 이후 경쟁계약에 따라 잔액이 발생하고 공정 개선 및 인력관리 효율화 등이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방사청은 조정된 분담금 규모에 맞춰 인니로의 이전 가치 규모도 조정한다는 방침이다. 관건은 인니 측이 낼 분담금에 상당한 기술 이전 수준을 어떻게 산정할지다. 앞서 우리 정부는 인니 측 참여 인력에 들어간 비용의 2.8배의 가치를 계상하기로 합의했으며, 현재까지 누적 200여 명의 인니 기술진이 한국에서 KF-21 개발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인 건 오는 7월부터 2026년까진 이전 가치 조정에 관한 협의가 이뤄질 예정이다.

인니 측이 분담금 조정 이후에도 나머지 2000억 원을 제때 납부하지 않으면 인니 측과의 협력 중단 등도 고려할 수 있다고 방사청 관계자는 강조했다. 그는 "(인니 측이) 시제기를 원해도 참여대금과 비용을 생각했을 때 (충분하지 않다면 시제기를) 안 줄 수도 있다"라고 엄포를 놨다.

문제는 인니 측이 분담금을 덜 냄으로써 부족해진 재원 약 5000억 원을 국민 세금과 체계개발업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자본으로 충당해야 한다는 점이다. 정부 예산은 국방 예산 안에서 충당할 수 있을 것으로 방사청은 보고 있다. 또 일부 재원을 추가로 마련해야 하는 KAI는 고스란히 부담을 떠안게 됐다.

pej86@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