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의회, '한국전 영웅' 故 퍼켓 대령 추모행사…한국계 미군 찬송가 불러

한국전 참전용사로 명예훈장 받은 마지막 생존자…美의회, 최고 예우

한국전 참전용사인 고(故) 랠프 퍼켓 육군 예비역 대령의 유해가 29일(현지시간) 미 워싱턴DC 의사당 로툰다에 안치된 가운데, 추모행사가 열리고 있다.

(워싱턴=뉴스1) 김현 특파원 = 한미 양국의 정상으로부터 "한국 전쟁의 진정한 영웅"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고(故) 랠프 퍼켓 미 육군 예비역 대령의 유해가 29일(현지시간) 오후 추모행사를 위해 미국 의사당에 안치됐다.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 등 미국 여야의 지도자들이 퍼켓 대령의 자유 수호를 위한 영웅적 행위와 헌신, 미국 내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공헌을 기리기 위해 고인에 대한 최고의 예우로 마지막 여정을 함께 한 것이다.

지난 8일 조지아주(州) 콜럼버스 자택에서 97세의 일기로 별세한 고인의 유해는 유골함에 담긴 채 이날 오후 2시께 의사당 동쪽 계단에 도착한 뒤 2층 중앙의 원형 홀(로툰다)로 이동했다.

추모행사장엔 존슨 하원의장, 하킴 제프리스 하원 민주당 원내대표, 미치 매코널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 에이미 클로부셔(민주·미네소타) 상원의원, 한국계인 매릴린 스트리클런드(민주·워싱턴) 하원의원 등이 참석해 퍼켓 대령의 유해를 기다렸다.

이 자리엔 로이드 오스틴 국방부 장관과 마크 밀리 전 합참의장도 함께했다.

고인의 유골함과 삼각형으로 접힌 성조기를 나란히 든 의장대는 로툰다에 입장한 뒤 의회 지도부 인사들 앞을 지나 중앙에 마련된 영구대에 고인의 유해와 성조기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오후 2시30분께부터 미 하원의 마거릿 키번 목사의 기도로 추모행사가 시작됐다.

매코널 원내대표와 존슨 하원의장이 추도사를 통해 고인을 기렸다.

매코널 원내대표는 퍼켓 대령이 한국전쟁 당시 제8 레인저 중대의 지휘관으로 싸웠던 205고지 전투를 거론, "그들은 10대 1로 수적으로 열세였다. (그런 상황에서) '레인저가 길을 이끈다'는 모토를 완전히 구현하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다"라며 "퍼켓 대령은 '좋은 사람들이 죽도록 하지 말라'는 간단한 기도를 반복했다"고 소개했다.

매코널 원내대표는 "그는 아마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 부하들을 명예롭게 이끌기 위한 힘과 용기, 결의를 기도했을 것"이라면서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우리는 모두 그 기도가 이뤄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의 용기와 자기희생은 후대 군인들의 마음에 영원한 유산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전 참전용사인 고(故) 랠프 퍼켓 육군 예비역 대령의 유해가 29일(현지시간) 미 워싱턴DC 의사당에 안치된 가운데,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이 추모행사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다. 2024.4.29. ⓒ 로이터=뉴스1 ⓒ News1 김현 특파원

존슨 의장도 추모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우리의 큰 영광"이라고 말문을 연 뒤 "퍼켓 대령의 좌우명은 '거기에 있어라(Be there).'였다. 상황이 어렵거나 춥고 비가 오는 날씨라도, 누군가 당신의 심장에 총을 쏘고 있어도, 음식이 없어도, 어떤 상황에서든 거기에 있으라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1950년 11월 그 추운 날, 퍼켓 대령은 조국과 그의 부하들을 위해 거기에 있었다"라고 했다.

그는 "한국 전쟁에서 많은 군인들이 궁극적인 희생을 치렀다. 7000명은 아직도 행방이 묘연하다"라면서 "한국 전쟁의 군인들은 자신들의 큰 희생을 치르면서도 옳은 일을 했다. 우리가 존경하고 열망해야 할 본보기"라고 강조했다.

존슨 의장은 다른 명예훈장 수훈자 등을 언급하면서 "그들은 보통 사람들이지만, 그들 대부분은 깊은 사명감과 자기 희생, 그들의 대의가 정당하고 우리의 가치와 조국을 수호할 의미가 있다는 믿음에 이끌려 비범한 일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기 장남이 조만간 해군 사관학교에 입학한다고 밝힌 뒤 "제 아들과 다음 세대 군인 및 전사들이 퍼켓 대령의 모범을 보고 용기와 용맹, 명예라는 위대한 가치를 열망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추도사에 이어 미 상·하원 지도부와 오스틴 국방장관 등이 유해가 놓인 곳을 중심으로 3곳의 방향에서 각각 헌화와 조문을 했다.

주요 인사들이 헌화와 조문을 마친 뒤 미 육군 '퍼싱즈 오운'의 에스더 강 하사가 찬송가 '저 장미꽃 위에 이슬(In the Garden)'을 부르며 고인의 넋을 기렸다. 강 하사는 한국계 미국인이다.

키번 목사의 축도로 추모행사는 마무리됐다.

한국전 참전용사인 고(故) 랠프 퍼켓 미 육군 예비역 대령의 유해가 29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의사당에 안치된 가운데, 군복을 입은 한 여성이 유골함에 경례를 하며 조문을 하고 있다. 2024.4.29. ⓒ 로이터=뉴스1 ⓒ News1 김현 특파원

미 의회에 유해를 안치하고 조문하는 행사(Lying in State)는 미국 전·현직 대통령, 상·하원의원 등 국가에 큰 공을 세운 사람이 사망했을 때 예외적으로 진행되는 최고의 예우다.

존슨 의장과 척 슈머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16일 퍼켓 대령 유해의 의회 안치와 조문 행사 개최를 발표했고, 이튿날 관련 결의를 채택했다.

미 의회 기록에 따르면 1958년 3월 한국전쟁과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무명용사를 위한 의회 조문 행사가 진행됐다. 한국전쟁 참전 용사 가운데 미 의사당에서 조문 행사가 거행된 것은 고인이 유일한 것으로 전해졌다.

의회 추모행사에 앞서 한국전쟁참전용사기념회와 의회명예훈장협회는 공동으로 이날 오전 10시부터 워싱턴DC 한국전 참전기념비에서 헌화식을 개최했다.

조니 언스트(공화·아이오와) 상원의원, 샌포드 비숍(민주·조지아) 하원의원, 조지프 라이언 미 육군 소장 등이 참석해 고인을 추모했다. 언스트 의원은 퍼켓 대령의 의회 안치를 위한 결의안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퍼켓 대령은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로, 22년간 군 복무 기간 수훈십자훈장과 2개의 은성무공훈장, 2개의 동성무공훈장, 5개의 퍼플하트훈장 등을 받아 미 육군 역사상 가장 많은 훈장을 받은 군인 중 한 명으로 기록돼 있다.

한국전 참전으로 명예훈장을 받은 마지막 생존자이기도 했다.

고인은 2021년 조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최고 훈격인 명예훈장을 받았다. 당시 수훈식에는 미국을 방문 중이었던 문재인 전 대통령도 참석했다.

고인은 지난해 4월에는 국빈 방미한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최고 무공 훈장인 태극무공훈장도 받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지난 2021년 5월21일(현지시간)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한국전쟁 명예 훈장 수여식에서 랠프 퍼켓 예비역 대령 가족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 로이터=뉴스1 ⓒ News1 포토공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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