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관계 어렵다면…'한중일 다자채널' 활용해야[한중일 글로벌 삼국지]
한중일 정상회의, 중러 이해관계 차이 활용 '대러 지렛대' 확보
북한·몽골 TCS에 가입시켜 TCS를 동북아협력기구로 확대·발전을
(서울=뉴스1) 백범흠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초빙교수 = 지난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 T-72 탱크의 굉음(轟音)이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질러 한반도의 서울과 평양에까지 울려 퍼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한국에게는 외교적 딜레마를 동반한 소음(騷音)이, 북한에게는 핵과 미사일 능력을 배가함은 물론, 러시아와 중국 두 나라로부터 더 많은 원조를 확보할 수 있는 복음(福音)이 됐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을 이웃으로 둔 한국으로서는 국가안보를 위해서라도 한미동맹을 중시할 수밖에 없다. 한국이 미국의 희망과 요구를 무시하고 우크라이나에 탄약 등 군사적·비군사적 지원을 하지 않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데 한국은 동해 바다로 이어져 있으며, 북한과는 국경을 직접 맞댄 군사강국 러시아와의 관계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이에 반해 북한에게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위기에 처한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가 지정학적 여건상 무조건 도움이 된다. 북한은 탄약을 포함한 군수물자를 러시아에 제공하고, 반대급부로 군사기술과 물자를 제공받았다.
러시아의 대(對)북한 군사기술과 물자 지원은 '일대일로'(一帶一路)를 통해 중앙아시아와 중동 등으로 팽창을 추구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헤징(hedging·위험회피)의 성격도 갖고 있다. 지난달 28일 뉴욕 유엔 본부에서 개최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러시아는 '대북(對北) 유엔 감시기구 활동 갱신 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반면, 중국은 기권했다.
북한 핵과 미사일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은 바뀌었지만, 중국의 입장은 이전과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베이징을 포함한 중국의 핵심지역은 북한과 가까운 반면, 모스크바를 포함한 러시아의 핵심지역은 북한과 멀다. 북핵 문제를 보는 중국과 러시아의 시각이 다를 수밖에 없는 한 가지 이유다. 이에 더해 러시아는 긴 국경을 접한 라이벌 중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러시아의 일대 위기를 틈타 중앙아시아와 중동 등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잠식하는 것을 우려한다.
1960~80년대 중소분쟁 시기와 같이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할 수 있는 국제환경이 조성됐다. 이미 북한의 줄타기 외교가 시작됐다. 지난 3월 말 거의 같은 시기에 북한 노동당 김성남 국제부장이 중국을, 윤정호 대외경제상은 러시아를 방문했다.
중국 공산당 서열 3위인 자오러지(趙樂際) 전국인민대표자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국회의장 격)이 4월 11일부터 13일까지 북한을 방문했다. 이러한 국제상황이 조성된 것은 한국이 주로 안보이익을 위해 미국과 일본에 '다 걸기(all-in)'한 것도 한 가지 원인이다.
북한은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시도해 오다가 최근 갑자기 소극적으로 바뀌었다. 이는 북한이 중·러 간 미묘한 경쟁관계를 이용해 필요한 것을 이미 확보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그런데 미·중 관계는 더 이상 크게 악화하고는 있지 않다. 한국과 중국이 지금까지와 같은 '데면데면한' 관계를 벗어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 가고 있다. 한·중 우호의 상징 '푸바오'(판다)가 중국으로 반송되는 과정에서 중국은 한국민의 감정을 헤아린다는 제스처를 보여줬다. 이는 한국과 중국 두 나라 모두 상호 관계를 개선할 준비가 됐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한·중 두 나라 스스로가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쉽지 않다면, 한중일 3국 정상회의라는 다자채널을 활용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한중일 3국은 유럽연합(EU)과 같이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 번영을 촉진하기 위해 2011년 9월 한중일 3국 협력사무국(TCS)을 설립했다. TCS는 오래 전 공동시장 단계에 진입한 EU나 관세동맹 수준에 도달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에 비해 조직화 정도가 미약하다. EU의 두 축인 독일과 프랑스는 지난해 말, EU를 탈퇴한 영국에게 신형 멤버십 'EU 라이트(lite)'를 제의했다. 각국의 상황에 맞게 참여 범위 및 수준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특히 군사안보 측면에서의 이해관계가 상이한 TCS 회원국 간에도 이 방식을 적용해 볼 수 있다.
한중일 3국은 △기후변화와 환경 △저출산과 노령화 △과학기술협력 등 연성 분야에 초점을 두고 3국 간 협력을 증진해 나가되, 합의하는 두 나라만이라도 특정 분야에서의 협력을 시작한다면 TCS의 발전과 조직화가 한층 더 촉진될 것이다.
한중일 3국 정상회의 의장국인 한국은 지난해 말이나 올해 초 3국 정상회의를 개최하려 했으나, 중국이 한·일 두 나라의 정치 상황을 지켜보고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하는 바람에 아직 개최하지 못하고 있다. 3국 정상회의는 2019년 12월 중국 청두에서 개최된 것이 마지막이다.
오는 5월 재개가 회자(膾炙)되는 한중일 3국 정상회의는 미국의 핵심 이익은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북한을 포함한 동북아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이해관계 차이를 활용, 북한은 물론 러시아에 대한 대항력(지렛대)도 확보할 수 있는 좋은 방안으로 보인다. 이것이 한·중 관계의 근본적 개선과 증진으로 이어져야 함은 물론이다.
한국은 동북아 지역에서의 갈등 해소와 긴장 완화를 위해서라도 북한과 몽골을 TCS에 가입시켜 TCS를 동북아협력기구(NEACO: Northeast Asia Cooperation Organization)로 확대·발전시켜 나가는 데 있어서 선도적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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